항목 ID | GC04206377 |
---|---|
한자 | 李相錄 |
영어음역 | Yi Sanglok |
이칭/별칭 | 늘푸른 |
분야 |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고호석 |
[정의]
현대 부산에서 활동한 학생 운동가이자 사회 운동가.
[가계]
본관은 경주(慶州). 아버지는 이양우이고, 어머니는 신말선이다. 2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늘푸른’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다.
[활동 사항]
이상록(李相錄)은 1956년 1월 4일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에서 태어났다. 1971년 3월 진주고등학교에 입학하였으나, 1973년 3월 거창고등학교로 전학하여 1974년 2월에 졸업하고 부산대학교 법학대학 법학과에 입학하였다. 1980년 2월 부산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부산대학교 재학 시절 사회 변혁 운동에 투신하기로 결심하고 중부교회와 양서협동조합 등을 통해 민주화 운동의 전국적 동향을 접하고 동지 규합에 노력하였다.
이를 위해 이상록은 1978년 부산대학교 내에 비공개 학생 운동 조직인 사랑공화국[일명 도깨비집]을 조직하였다. ‘사랑공화국’은 학년별 재생산 체제를 갖춘 부산 지역 최초의 비밀 결사였다. 1979년 부마 항쟁에 참여한 후 졸업을 즈음하여 노동 현장에 투신하여 노동 운동을 전개할 것을 결심하였다. 1980년 2월 대학을 졸업한 뒤 3월 부산광역시 북구 주례동에 있는 대유산업과 부산링구공업사에 취업하였다.
그러나 1981년 7월 부림 사건에 연루되어 부산시경찰청 소속의 대공분실로 강제 연행되었다. 이후 50일 가까이 불법 감금과 고문, 폭행에 시달리다가 「국가 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되어 1983년 12월까지 복역하다 형 집행 정지로 출소하였다. 출소 후 1984년 봄 서울로 가서 정세를 살피고 돌아온 이상록은 1985년 4월 부산 지역 노동 운동의 쟁점이던 ‘실임’[선도적 투쟁을 중시하는 그룹]과 ‘반실’[실임 그룹에 반대한다는 의미] 논쟁에서 ‘반실’을 조직하여 리더로 활동하며 노동 운동을 펼쳤으나 소기의 상과를 거두지 못하고 1987년 해체하였다.
1988년 이상록은 경찰의 추적을 피해 주민등록증을 위조한 일로 다시 구속되어 복역하던 중 정신병을 얻어 8년간 투병하였다. 2000년 이상록은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부설 민주주의사회연구소의 설립을 주도하면서 활동을 재개하였다. 7월 12일 민주주의사회연구소의 부소장으로, 2002~2006년 운영 위원을 맡아 정력적으로 일하면서 몰락한 현실 사회주의의 오류를 규명하고, 그 대안을 찾는 작업에 정진하였다. 이상록은 2006년 9월 18일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였다.
[묘소]
경상남도 통영시 미륵도 바닷가에 수목장으로 안장되었다.
[상훈과 추모]
2007년 ‘고이상록선생추모모임’이 만들어져 매년 기일에 추모제를 지내고, 인터넷 카페[http://cafe.daum.net/remevergreen]가 운영되고 있다. 2009년에는 고인의 글과 지인의 추모 글을 모아 『혁명가 이상록 추모집-사랑공화국에서 미륵공화국으로』를 출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