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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장길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6830
영어음역 Hong Jangkil
분야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사상구 감전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현정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노동 열사
성별
대표경력 연희교통노동조합 고문
출생 시기/일시 1939년 7월 8일연표보기 -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73년 - 연희교통[뒤에 국민캡] 입사
활동 시기/일시 1992년 - 연희교통노동조합 상임 위원에 선임
활동 시기/일시 1994년 - 연희교통노동조합 고문에 선임
몰년 시기/일시 1997년 5월 31일연표보기 - 사망
출생지 홍장길 출생지 - 경상남도 밀양군 하남읍 백산리
학교|수학지 동명중학교 - 경상남도 밀양시 하남읍 동명길 14
활동지 연희교통[국민캡] - 부산광역시 사상구 감전동

[정의]

현대 부산의 택시 회사 국민캡에서 활동한 노동 열사.

[활동 사항]

홍장길은 1939년 7월 8일 경상남도 밀양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밀양 수산 동명중학교를 졸업한 것이 학력의 전부였다.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고자 박정희(朴正熙) 정권의 인력 수출 정책의 하나였던 파월 장병으로 지원하여, 맹호 부대 제26연대에 배치되어 월남전에 참전하였다. 이후 1973년 35세의 나이로 연희교통에 입사하면서 택시 노동자가 되었다. 이 무렵 택시 회사의 노동조합은 대부분 어용 노동조합이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불어닥친 노동조합 민주화의 바람은 이윽고 연희교통까지 이르렀다. 이에 홍장길은 1992년 연희교통의 노동조합 상임 위원, 1994년 노동조합 고문에 추대되었다. 나이가 많은 그로서는 젊은 후배들이 전면에 나서서 하는 노동조합 활동을 지원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였다. 당시 오랜 어용의 역사를 가진 부산 지역 택시 노동조합에도 몇몇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민주 노동조합 건설이 논의되고 있었다. 홍장길의 연희교통노동조합은 그 중심에 있던 노동조합 가운데 하나였다.

이 무렵 국민캡으로 명칭을 바꾼 사장 허준도는 1997년 노동조합을 파괴하기 위해 회사의 분할 매각을 추진하였다. 차량 넘버 1호, 근속 연수 24년 8개월로, 당시 국민캡에서 가장 나이가 많던 60세의 홍장길은 분할 매각 철회를 위한 노동조합의 전면 투쟁이 시작된 그날부터 집에도 들어가지 않고, 궂은일을 마다않고 앞장서 싸웠다.

회사 측은 택시 163대를 4개 업체에 분할 매각한 후 회사 부지에 골프장을 지을 계획이었다. 국민캡 노동조합은 회사를 양도 양수할 때 노동조합과의 단체 협약을 어긴 채 매각 계약을 체결하고 시에 제출한 것은 명백한 부당 노동 행위임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부산광역시는 이를 승인하였고, 양도받은 회사 측이 공권력을 동원해 국민캡 택시를 모두 빼내 가고 말았다.

결국 분할 매각 철회 전면 투쟁 32일째인 5월 31일 국민캡 노동조합은 국민캡의 택시 기사를 완전 승계한다는 내용을 조건으로 양도받을 회사와 합의하였다. 다음 날 오전 10시 국민캡 노동조합은 조합원 앞에서 이 내용을 보고하였고, 11시 50분 부산광역시청에서 부산광역시장의 입회 아래 이춘근 위원장이 양도받을 회사와의 합의서에 도장을 찍었다.

하지만 분할 매각 철회를 일관되게 주장한 홍장길은 마지막 순간에도 노동조합의 합의에 반대하는 주장을 격하게 토해 냈다. 이에 부산광역시청에서 노동조합위원장이 합의서에 도장을 찍던 바로 그 시각, 국민캡 휴게실로 간 홍장길은 가슴속에 품고 있던 비닐봉지 속의 약물을 마시고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조합원에 의해 발견되어 삼선병원으로 이송 중에 사망하고 말았다.

[묘소]

부산 영락 공원에서 화장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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