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0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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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張在玩 |
영어음역 | Jang Jaewan |
분야 |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금정구 산성로 872[장전2동 산30]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차성환 |
[정의]
1987년 부산 지역에서 자결한 학생 운동가.
[가계]
본관은 인동(仁同). 1965년 7월 경상남도 진양군 대곡면 대곡리에서 아버지 장용환과 어머니 남종임의 4남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농사를 지었으나,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1970년 부산광역시 동래로 이사하였다.
[활동 사항]
장재완(張在玩)은 1980년 2월 대성중학교를 졸업하고 1983년 2월 동인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1983년 3월 부산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한 장재완은 전두환(全斗煥) 군부 정권의 독재에 저항하는 학생 운동에 참여하여 헌신적으로 투쟁하였다. 3학년 2학기가 끝난 12월에 휴학해 이듬해 1월 방위병으로 입대하였는데, 1987년 3월 23일 부대에서 집으로 귀가하던 중 버스에서 가방을 분실하였다.
공교롭게도 가방 속에는 학생 운동과 관련한 문건이 들어 있었고, 이는 보안대에 넘겨졌다. 이에 장재완은 자신에 대한 보안대의 조사가 임박했음을 느끼고, 자신으로 인해 학생 운동권의 피해를 막고자 1987년 3월 27일 야산에서 목을 매 자결하였다. 이때 부산대학교 총학생회 앞으로 한 통의 편지를 보냈는데, 그것이 장재완의 유서가 되었다. 유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저는 부산대학교 사회복지학과 83학번으로 1986년 1월 방위병으로 입소하여 군복무를 하던 중 본인의 중대한 과오로 인해, 조직을 보위코저 나의 육체적 생명을 단절합니다. 우리의 혁명과 투쟁이 너무나 순결하고 숭고한 것이기에 나의 희생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 동지들! 이제 저는 가야 할 때가 왔습니다. 적들의 야수 같은 손길이 나를 찾고 있습니다. 나의 죽음이 우리 혁명과 조국 통일을 조금이라도 앞당기는 계기가 된다면 조금이나마 그 의미를 찾을 수 있겠지요.
[상훈과 추모]
2004년 3월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인정되어 보상을 받았으며, 부산대학교 중앙도서관 앞에 추모비가 건립되었다. 부산대학교 민주동문회에서 매년 추모 행사를 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