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53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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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周燁 |
영어음역 | Gim Juyeop |
분야 |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장선화 |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본관은 김해(金海). 1902년 부산광역시 기장군에서 김두수(金枓首)의 큰아들로 태어났다. 부산 지역에서 노동 운동과 청년 운동을 했던 김시엽(金時燁)이 친동생이고, 김도엽(金度燁)·김규엽(金圭燁)과는 재종형제 사이이다. 또 독립운동가 김두봉(金枓奉)은 5촌 당숙이며 김약수(金若水)[본명 김두전]도 일가 숙부이다. 박차정(朴次貞)과도 내재종형제 사이이다.
[활동 사항]
김주엽(金周燁)은 부산 지역에서 노동 운동과 청년 운동 등의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한 독립운동가이다. 부산 지역 노동 운동의 중심인 부산노우회에서 활동하였고, 이후 명칭을 바꾼 부산합동노동조합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1930년 8월 5일 부산합동노동조합 정기집행위원회에서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1928년 7월 1일 동래청년동맹에서 신임위원으로 선출되어 활동하였고, 동래청년동맹 기장지부 창립 대회에서 임시 집행부로 선출되어 기장지부 창립에도 관여하였다. 또 부산청년동맹과 신간회 부산지회에서도 활동하였는데, 신간회 부산지회에서는 1929년 9월 간부[서무부]로 선출되고, 12월 8일 정기 대회에서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30년 1월 10일 조선방직회사 동맹 파업 때 다수의 파업 지지 격문을 조선은 물론 일본 각지 노동 단체에 발송한 사건으로 부산 각 사회단체 간부들과 함께 체포되어 2월 5일 검사국에 송치되었다가 취조 후 바로 석방되었다.
당시 신간회 부산지회 서기장으로 활동하던 김주엽은 조선공산당 사건과 관련되어 1930년 9월 4일 경성 종로경찰서의 수배로 부산경찰서에 검거되었다. 9월 5일 경성으로 압송되었는데 죄명은 「치안 유지법」 위반이었다. 해방 후 1945년 9월 6일 결성된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경남지부 산하 부산치안사령부에서 총무로 활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