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5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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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萬榮 |
영어음역 | Yi Manyeong |
분야 |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 조만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변광석 |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사회사업가.
[활동 사항]
둔치도(屯致島)는 낙동강 서쪽 유역 중심부에 위치해 있는데, 삼차강으로 불리는 낙동강 세 갈래 물줄기가 조만강과 맞닿는 지점에 있다. 둔치도는 인근 명지도·대저도와 함께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낙동강 하류 삼각주의 하나이다.
근대 상업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개항기 둔치도는 구포에 있던 남조선제지주식회사 소유로 이곳 198만 3471.07㎡[60여만 평]의 갈대밭에서 생산된 갈대 전량이 펄프 원자재로 사용되었다. 또한 갈대를 소재로 한 갈대자리·갈꽃빗자루 등의 우수한 수공예품들이 전국 시장에 팔려나가 명성을 높였다. 이러한 둔치도는 1920년경 일본인 대지주 하자마 후사타로[迫間房太郞]에게 강제로 매수당한 이후 당시 일본 사람들이 강점한 김해 지역 4대 농장 중의 하나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만영(李萬榮)은 가락동 둔치도에 제일 먼저 정착하였다. 그는 경상남도 김해시 장유와 녹산을 연결하는 통로였던 조만강 벼랑 끝이 험하여 사람과 우마(牛馬)의 통행이 불편할 뿐 아니라 주민들이 인명 피해를 입자, 개인 사재를 들여 신작로를 개설하여 주민들로부터 큰 신망을 얻었다.
[상훈과 추모]
이만영이 신작로를 개설한 공로를 기리기 위해 ‘유학 이만영 신작로 개설 영세불망비’를 세워 그의 둔치도 개척사를 추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