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52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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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近代-文化遺産 |
영어의미역 | Cultural Assets of the Modern Times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김기수 |
[정의]
근대 부산 지역에 설립되어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유물·유적.
[개설]
조선 시대 부산 지역은 일본, 청나라 등 국제적 교류의 중심지였다. 특히 초량 왜관(草梁倭館)은 한일 교류의 상징적 공간이었지만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군사적, 경제적 침투의 근거지가 되기도 하였다. 당시 일본 제국주의는 이 지역을 중심으로 항만 철도 등 전국에 걸친 교통망을 확충하였다. 또한 도로·토지 구획 등의 시가지 계획을 세워 지금의 부산광역시 중구 중앙동 지역을 중심으로 토목 공사와 북항 매립 공사를 진행하는 등 부산의 해안을 변화시키며 시가지를 확장해 나갔다.
이로 인해 부산 지역에는 개항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기능의 시설과 문화가 유입되면서 새로운 양식의 건축물과 산업 구조물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와 함께 일제 강점기라는 특수한 정치적 상황을 거치면서 생활 문화유산과 인물·역사 유적 등의 ‘근대 문화유산’들이 부산 지역에 남게 되었다.
[건축물]
근대 문화유산에 속하는 부산의 건축물은 교육 시설, 종교 시설, 업무 시설, 산업 시설, 주거 시설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1. 교육 시설
교육 시설로는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1동에 소재한 부산진일신여학교(釜山鎭日新女學校)[1905년 4월 15일 건립,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55호]와 부산광역시 서구 서대신동 3가에 소재한 구 경남상업고등학교(慶南商業高等學校) 본관[1927년, 등록 문화재 제328호]이 대표적이다. 특히 부산진일신여학교는 부산·경상남도 지역 신여성 교육 기관으로 높은 역사적 가치가 있으며, 그 원형이 보존되어 있어 현재는 기념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2. 종교 시설
종교 시설로는 부산광역시 중구 신창동 1가에 소재한 동본원사 부산별원(東本願寺 釜山別院) 터를 우선 꼽을 수 있다. 1877년 건립된 일제 강점기의 대표적인 일본인 사찰이지만, 해방 후 화재로 소실되어 1975년 현 대각사로 재건되었다. 그 터에는 현재 범종이 남아있어, 근대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보여 주고 있다. 또, 로마네스크 양식을 본떠 만든 부산광역시 중구 대청동 2가 소재의 대한성공회 부산주교좌성당(大韓聖公會 釜山主敎座聖堂)[일제 강점기 추정], 일식 가옥에서 1977년 대한불교회 소유의 사찰이 된 부산광역시 중구 대청동 1가 소재의 정오사[일제 강점기 추정] 등도 언급할 수 있겠다.
3. 업무 시설
업무 시설로는 1925년 진주에서 이전 후 사용하였고 6·25 전쟁기 임시 수도 정부 청사로도 활용되었던 부산광역시 서구 부민동 2가 소재의 부산 임시 수도 정부 청사[구 경상남도 청사, 1925년 4월, 등록 문화재 제41호]가 대표적이며, 인근의 임시 수도 대통령 관저(臨時首都大統領官邸)[구 경상남도지사 관사,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53호]도 중요한 근대 건축이다. 현재 부산 임시 수도 정부 청사는 동아대학교 박물관으로, 임시 수도 대통령 관저는 임시 수도 기념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또 부산광역시 서구 토성동 1가에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근대 오피스 빌딩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한국전력공사 중부산지점[구 남선전기] 사옥(韓國電力公社 中釜山支店(舊 南鮮電氣)社屋)[1932년 10월 15일, 등록 문화재 제329호, 현 한국전력공사 중부산지점]이 있고, 부산광역시 중구 대청동 2가에는 근대 역사관[구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지점(東洋拓殖株式會社 釜山支店)][1929년,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49호]이 해방 이후 미국 문화원으로, 2003년부터는 부산 근대 역사관으로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부산광역시 중구 대청동 1가의 부산지방기상청(釜山地方氣象廳)[1934년 1월,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51호] 또한 근대식 외관을 갖춘 역사적 유적이다.
4. 산업 시설
산업 시설[건축물]로는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범천동 철도 차량 정비창 내 객차 봉공 작업장[1930. 7. 31], 디젤 기관차 제1작업장[1930. 11. 30], 디젤 기관차 제2작업장[1930. 7. 31], 강판 작업장[1930. 8. 31], 도장 작업장[1931. 10. 30], 객차 대차 작업장[1933. 4. 30], 객차 출고 작업장[1939. 6. 30] 등이 현재도 사용되고 있다. 한편 부산광역시 기장군의 좌천역(佐川驛)[1934년], 기장역(機張驛)[1934년], 부산광역시 동래구 낙민동의 동래역(東萊驛)[1934년],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송정동의 부산 송정역(松亭驛)[1940년, 등록 문화재 제302호] 등도 현존한다.
5. 주거 시설
주거 시설로는 부산광역시 강서구 일대에 소재한 일본인들의 이주 농촌 가옥을 우선 거론할 수 있는데, 강주신 가옥[1945년], 양덕운 가옥[1930년], 낙동강 칠백리 식당[1926년], 영광건재 점포[1935년] 등이 현존하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또한 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덕도 일대의 외양포에는 포대 사령부로 지어진 건축물을 해방 이후 주민들이 불하 받아 주거 시설로 사용하고 있다. 부산광역시 기장군에는 기장읍의 이종만 가옥[1936년]과 이청진 가옥[1939년], 그리고 철마면의 신옥수 가옥[1936년]이 역사적 가치가 있는 주거 건축물이다.
구 도심인 부산광역시 동구 지역에는 부산 초량동 일식 가옥(草梁洞日食家屋)[1925년 4월 16일, 등록 문화재 제349호],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1동 강용자 가옥[1941년 12월 30일] 등이 대표적이며, 그 외에도 현재 요식업 시설로 활용되고 있는 부산 정란각(貞蘭閣)[1939년, 등록문화재 제330호], 병원 시설로 지어졌으나 현재 사무실 용도로 사용되고 있는 백제병원(百濟病院)[1920년경] 등이 현존한다.
부산광역시 동래구에는 일식 목구조 주택인 권호성 별장[1939년], 낙민동의 철도청 관사[1934년], 복천동 한식 목조 주택인 상가[대궐갈비][일제 강점기 추정]와 상가[모과나무집][1939년 3월 23일]을 비롯하여, 유력 일본인 별장이었으며 해방 후 부통령 관저로도 사용되었던 ‘동래 별장’[1920년경] 등 다수의 건물이 남아 있다. 또한 부산광역시 중구 남포동 지역에는 집합 주택 형식의 소화장(昭和莊) 아파트[1944년 6월 15일]·청풍장(靑豊莊)[1941년 4월 8일]과 자갈치 건어물 시장[1934년] 일대 상가형 주택들이 다수 남아 있다.
[산업 구조물]
근대 문화유산에 속하는 부산의 산업 구조물은 철도 교량, 수도 시설, 수리 시설, 항만 시설, 군사 시설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철도 교량으로는 동해 남부선을 잇는 부산광역시 동래구 수안동의 범어사천교, 부산진구 양정가도교와 부전천교, 해운대구 송정동의 연정천교와 오금천교, 해운대구 중동의 안적사천교가 남아 있다. 그리고 국내 최초의 개폐식 도개교인 영도 대교는 2010년 말 철거되어 복구공사 중이다. 터널 시설로는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중동의 피암 터널과 가야에서 사상으로 향하는 부산진구 개금동의 주렴 터널이 현존한다.
수도 시설로 대표적인 것은 중력식 댐인 구 성지곡 수원지(聖知谷水源池)[1932년, 등록 문화재 제376호]와 여과지에서 도수된 물을 배수하는 부산 복병산 배수지(伏兵山配水池)[1932년, 등록 문화재 제327호]를 들 수 있으며, 그 외에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의 범어사 정수장[1932년], 동구 수정동의 수정산 배수지[1932년], 서구 대신동의 고원견산 수원지[1910년] 등도 특징적인 근대 문화유산이다.
수리 시설로는 부산광역시 강서구 식만동의 식만 양수장[1916년], 강서구 대저동의 대지 양수장[1933년], 강서구 녹산동의 녹산 제1수문[1934년], 강서구 대저1동의 대저 수문[1934년], 강서구 대저2동의 울만 양수장[1936년]이 있으며, 기장군에서는 기장읍의 대라 저수지[1932년], 철마면의 임기 저수지[1932년]가 대표적이다.
항만 시설로는 부산광역시 강서구 대항동의 가덕도 등대(加德島燈臺)[1909년, 부산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50호], 남구 감만동의 제뢰등대[1905년], 영도구 남항동의 남항 방파제[1939년]와 대평동의 영도 선착장[1926년], 중구 남포동의 남포동 1가 항만 호안[1938년]이 근대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건축물이다.
군사 시설로는 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덕도의 외양포 포대와 토치카[1904년], 남구 용호동의 장자등 포대 지구 탄약고[1930년] 등을 들 수 있다. 또 부산광역시 부산진구의 하야리아 부대 터[현 부산 시민 공원]에는 일제 강점기 일본군 시설로 이용되었던 일본군 관사[1940~1945년경] 건물들이 남아 있다.
[역사·인물·생활문화 유적]
근대 문화유산에 속하는 부산의 역사·인물 유적으로는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 출신 독립운동가 남강(南崗) 조정환(曺正煥)의 재실인 녹산 남강재(南岡齎)[1893년], 동래구 칠산동의 박차정 의사 생가(朴次貞義士生家)[1936년]가 대표적이다. 또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에는 이 지역의 근대 학교 설립에 공헌한 오태환 생가(吳台煥生家)[1933년], 북구 화명동에도 지역 인재 육성에 심혈을 기울인 장우석 기념비(張禹錫紀念碑)[1930년]가 있다. 1919년 당시 부산에서 대규모의 만세 운동이 벌어졌던 부산광역시 동래구 동래 시장 일대의 동래 만세 거리와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 시장 일대의 구포 만세 거리도 과거의 모습대로 남아있다.
생활문화 유적으로는 일제 강점기에 조성되었던 다수의 적산 가옥이 현존하고 있으며, 설립 당시 최대의 공설 시장으로 평가받은 부평동 시장[1910년 6월]도 특징적이다. 그 외 부산광역시 동구 지역에는 개항 당시 청국 영사관과 청국 조계지로 이용되었던 초량 청관 거리[1890년 청국 영사관 입지 이후]가 현재는 상해 거리로 조성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