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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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1910년 시기 부산 지역의 역사. 1876년 8월 조일 수호 조규[강화도 조약]에 의해 개항된 이후 1910년 8월 일제에 의해 강제 병합될 때까지 외국과의 통상을 위해 개항장과 개시장이 설치되었다. 개항기 전국의 개항장과 개시장의 설치 시기를 살펴보면 아래의 표와 같다. @@GC04203753_01_1876년 이후 전국 개항장·개시장의 개설 시기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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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 조선과 일본 사이에 체결되어 부산 지역을 개항시킨 조약. 1868년 메이지 유신[明治維新] 성공 후 일본은 국내 사족의 불만을 해외 침략으로 해소하기 위해 1874년 4월 대만을 침략한 데 이어, 조선을 강제로 개방시키려는 계획을 세웠다. 한편, 당시 조선은 서양 세력과의 문호 개방을 철저히 거부하며 10년 동안 정권을 잡았던 흥선 대원군(興宣大院君)이 물러나고 고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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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 조일 수호 조규로 부산 지역을 시작으로 항구를 통해 문호를 개방한 사건. 개항은 항구를 통해 여러 나라에 문호를 개방한다는 의미로 중세 봉건 국가였던 조선이 일본 및 서양 열강과 체결한 근대 조약에 근거하여 항구를 개방하고 세계 여러 나라와 근대 교역을 시작한 역사적 사실을 일컫는다. 우리나라 최초의 개항은 1876년 부산항의 개항이었다. 이후 1880년 5월 원산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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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 외국인의 내왕과 무역을 위해 개방한 항구 주변의 제한 지역. 개항장은 통상 1876년 개항 이후 개방된 항구 주변의 제한 지역을 가리킨다. 19세기 중엽 서구 제국주의 열강이 통상을 요구하며 침략해 오기 시작한 뒤, 민씨 정권이 1876년 일본의 무력에 굴복하여 강화도 조약을 맺음으로써 부산[1876]을 시작으로 원산[1879], 인천[1880]이 차례로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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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부산광역시 중구 광복동 등지의 초량 왜관 터에 제공한 일본인 거류지. 메이지 정부의 성립 이후, 일본의 외교 목표는 서양 열강과의 불평등 조약을 개정하는 것과 조선에 세력을 확대하는 일이었다. 대마도에 허락되어 있던 왜관(倭館)에서의 무역을 메이지 정부가 장악하기 위해 조·일 양국이 회담하였으나 조선은 쉽게 응하지 않았고, 일본은 무력을 사용하여 새로운 조약을 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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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부터 1945년까지 부산항과 시모노세키 항 사이를 정기적으로 운항한 여객선. 러일 전쟁이 종결된 후 경부선 철도가 부산에서 서울까지 연장되자, 이를 계기로 일본의 산요기선주식회사[山陽氣船株式會社]는 일본의 산요선 철도와 한국의 경부선 철도를 연결하기 위한 선박 수송을 계획하고, 정기 여객선 운항을 추진하였다. 그 결과 1905년 9월에 부산과 시모노세키[下關]를 잇는 1,...
개항기 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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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부산항의 외교·통상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설치된 관청. 개항 이후 개항장에서의 외교·통상 관련 업무량이 늘어나자 정부에서는 1883년 관련 사무를 전문적으로 처리할 기구로 부산과 원산, 인천 등 3개의 개항장에 감리를 두게 되었다. 부산감리서는 초기에는 동래 부사가 감리를 겸임하면서 기존의 행정 체계 안에서 업무를 처리하였으나, 이후 계속해서 개항장의 사무가 증가하면서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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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부산광역시 중구 동광동 2가에 있던 일제가 지방 통치를 위해 설치한 행정 기관. 일본은 한국을 개항한 이래 청일 전쟁과 러일 전쟁을 통해 청나라와 러시아를 한반도에서 축출한 후 한국에 대한 확실한 지배권을 확보할 수 있었는데, 이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위하여 ‘한일 협정서’와 ‘한일 협약’을 체결하고 통감부를 설치하여 한국을 사실상 지배하기 시작하였다. 통감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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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절영도에 있던 수군첨절제사영. 개항 이후 일본인이 사용할 신탄(薪炭)[장작과 숯]의 수효가 늘자 일본은 절영도의 나무를 베어 충당하겠다고 청원하였다. 조선 정부는 일본의 요청을 거부하고, 외국 선박의 출입을 감시하기 위해 1881년(고종 18) 절영도진(絶影島鎭)을 설치하였다.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고종 18년 신사조에 “병조가 아뢰기를, ‘절영도 첨사(絶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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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부산광역시 중구 동광동 2가에 있던 부산 주재 일본영사관 소속 경찰서. 1876년 8월 24일 조인된 「조일 수호 조규 부록」 제3관에 의거하여 1877년 1월 30일 동래 부사 홍우창(洪祐昌)과 일본 관리관 곤도 모토스케[近藤眞鋤] 사이에 「부산구 조계 조약」이 체결되었다. 조계지 설정 이후 일본은 일본의 외교 기관 및 거류민 보호 기관으로 관리관을 파견하였다. 1879년...
개항기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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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8년 동래 지역 천주교 신자인 이정식(李廷植)이 수영 장대에서 처형당한 사건. 1866년(고종 3) 병인박해는 흥선 대원군(興宣大院君)에 의해 일어난 대규모의 천주교 탄압이다. 서울을 중심으로 일단락되려던 병인박해는 프랑스 함대의 침입과 에른스트 오페르트(Ernest Jacob Oppert)의 남연군(南延君) 묘 도굴 사건 이후 전국적인 규모로 확대되었다. 그리하여 박해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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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부산 지역 주민들이 일본인에게 쌀 판매를 거절한 사건. 1876년 개항 이후 부산으로 진출한 일본인들은 부산포에 전관 거류지를 설정, 이를 거점으로 자신의 지배권을 사방으로 확대해 나가 일본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지역민들의 항쟁 또한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갑신정변 이후로는 지역민들의 항일 저항 의식은 보다 높아져 당시 부산 주재 일본 영사가 “관외 각지는 요즘 인심이 심히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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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8년 부산항 두모진의 해관세 수세를 거부하는 일본 상인의 소동에 맞서 동래 부민이 대항한 사건. 1878년 9월 일본 상인이 부산항 두모진의 해관세 철폐를 요구하며 소동을 일으키자 이에 격분한 동래 부민들은 기와 조각과 자갈 등을 투척하며 일본 상인들에게 대항해 관세 자주권을 지키고자 하였다. 1876년 불평등한 조일 수호 조규의 체결로 부산항이 개항된 후 조선은 일본과의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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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 동래부에서 발생한 대규모 민란. 관변 자료의 단편적 서술로 인해 구체적인 민란의 발생 원인이나 성격을 알기는 어렵다. 단지 경상 감사와 안핵사(按覈使)의 장계에는 대수롭지 않은 일을 억지로 일로 만들어 난을 일으켰다고 하였는데, 민란의 목표가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동래 민란을 1882년 임오군란과 연관 짓기도 한다. 1884년 당시 한필이라는 사람이 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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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6년 일본인이 조선인을 살해한 일로 부산진 민중들이 분개한 사건. 1876년 개항 이후 부산으로 진출한 일본인들은 부산포에 전관 거류지를설정, 이를 거점으로 조선과 일본 간의 무역에 종사하면서 부산 지역의 상권을 장악해 가는 한편 불법적인 토지 확대 등을 통하여 자신의 지배권을 사방으로 확대해 나갔다. 이 과정에서 조선인과 일본인 사이에서는 크고 작은 분쟁이 빈번하게 발생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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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6년 부산 동래에서 발생한 일본인의 조선 여인 납치 사건. 일본인의 요청에 따라 동래 온천장에서 일본인의 상업 활동을 허락하면서, 1880년 일본 감수소를 설치하였다. 이는 상업 활동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조선인과 일본인의 분규를 처리하기 위한 것이었다. 1886년 9월 27일 일본 감수소에서 일하던 일본인 감수가 일본 감수소 앞을 지나가던 조선 여인 3명 가운데 한 여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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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부산 지역에서 박기종 등 민간인 주도로 전개된 철도 부설 운동. 우리나라에서 철도 부설을 위해 정부 내에 최초로 제도적 기구를 마련한 것은 갑오개혁 당시 공무아문(工務衙門) 내 철도국의 설치다. 그러나 정부나 민간인에 의한 철도 부설을 위한 구체적인 움직임은 대한제국 성립 이후에 나타난다. 민간인 철도 부설 운동(民間人鐵道敷設運動)은 정부가 철도 및 광산 합동을 외국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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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경상남도 일대에서 전개되어 부산 지역에도 큰 영향을 미친 농민 운동. 1894년 음력 3월 전라도 고부에서 시작된 동학 농민 운동은 삽시간에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부산은 개항 이후 일본 전관 거류지가 형성되어 있었고 일본군 수비대들이 주둔하고 있었기 때문에 농민들의 직접적인 봉기는 없었으나, 경상남도 일대에서 전개된 농민 운동은 부산의 일본인 사회를 공포의 분위기로 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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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부산의 요정 경판정에서 러시아 사관이 일본 기생을 폭행한 사건. 부동항을 찾아 남하 정책을 추진하고 있던 러시아는 1895년 삼국 간섭의 성공으로 만주로의 침략을 강화하며 한국으로의 진출에도 적극적이었다. 특히 고종(高宗)의 아관 파천을 계기로 한국 내에서의 러시아의 영향력이 더욱 확대되자 한국을 지배하려는 야욕을 가지고 있던 일본과 러시아의 갈등은 한층 고조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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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1904년 서울과 부산을 잇는 철도가 일본에 의해 건설된 사건. 경부선 부설은 일제의 조선 진출을 위한 기반 사업으로 1901년 8월 20일 영등포에서, 9월 21일 부산에서 일본 자본인 경부철도주식회사에 의해 기공되어 1904년 12월 27일 완공되었고 1905년 1월 1일 개통되었다. 철도는 19세기 중엽부터 20세기 초엽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지·반식민지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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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1905년 만주와 조선의 지배권을 둘러싸고 부산 등에서 벌인 일본과 러시아의 전쟁. 1894년 청일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자, 러시아를 비롯한 서방 세계는 일본 전력의 확대를 경계하였다. 러시아는 조선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일본과 가까운 부산항으로 군사적인 진출을 시도하였다. 1896년 5월 러시아 함대가 부산항에 입항하여 영도의 조차권을 요구하였다. 같은 해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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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1월 일본 쓰시마에서 사망한 의병장 최익현(崔益鉉)의 운구 과정에서 발생한 부산항민의 항일 운동. 1876년 일본과 강화도 조약 체결, 1895년 을미사변 후 단발령을 계기로 항일 운동을 전개했던 최익현이 1906년 태인에서 의병을 일으켰으나 일본군에게 패배하여 일본 쓰시마 섬에 감금되었다. 최익현이 쓰시마로 압송될 때 부산항민들은 모두 나와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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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1908년 부산 범어사에서 전개된 국채 보상 운동. 국채 보상 운동(國債報償運動)은 대한제국이 일본에서 빌린 차관을 국민의 힘으로 갚아 경제적 예속 상태를 벗어나고자 한 운동이다. 차관이 1300만 원에 이른 1907년경에 경상도 동래,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 보상 운동은 서울, 진주, 평양 등 전국에서 각계각층이 참여하였다. 1907년 3월 이보담, 홍월초 등이 불교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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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의 여성들이 여성 해방과 민족 해방을 위해 전개했던 운동. 부산 지역의 여성 운동은 구국 운동으로 시작하였다. 여성들이 최초로 자신들의 역량을 드러낸 것은 국채 보상 운동이었다. 부산에서는 동래부 국채보상일심회, 좌천리 감선회 부인회 등 국채 보상을 위한 여성 단체가 설립되었다. 이는 부산 지역의 국채 보상 운동을 활성화시키고 운동의 전체적 구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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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부산 범어사 등지에서 전개된 불교계의 선풍(禪風) 회복 운동. 개항으로 일본 불교의 유입이라는 위기 상황을 맞게 된 조선 불교계는 전통 불교를 진작시키기 위한 불교 회복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일환으로 교법 차원에서 미약해진 종풍을 살리기 위해 선원(禪院)을 만들어 결사(結社)를 조직하였다. 승려 경허(鏡虛)가 1899년 9월 합천 해인사에 수선 결사(修禪結社)를 세운...
사회·경제 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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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 교육 계몽 단체인 대한자강회의 부산 동래 지역 지회. 대한자강회 동래지회는 국민 교육을 강화하고 국력을 배양하여 독립의 기초를 다지기 위해 설립되었다. 대한자강회가 1906년 3월 31일에 결성되고, 동년 8월 「대한자강회 지회 규칙」이 제정되자 동래에서는 김병규(金秉圭) 등의 유지들이 대한자강회 동래지회를 설립하고, 8월 14일 본부에 인허를 청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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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 하단·엄궁 지역[현 부산광역시 사상구 하단동·엄궁동 일대] 객주들이 조직한 영업 단체[객주 조합]. 동계사(洞契社)는 개항 이후 지리적 이유로 일본인의 경제적 침탈, 특히 1883년(고종 20) 내지 통상의 확대 조치로 인해 개항장 객주들이 경제적 타격을 입게 되어 객주들의 영업적 필요성에 따라 조직되었다. 1883년 초기 기업 전 단계의 형태로서 동계사가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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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부산 동래 지역의 국채 보상 운동을 주도한 단체. 1907년 1월 30일 대구에서 국채 보상 운동이 일어난 후 같은 해 3월 10일 동래 지역에도 부산항상무회 회원이었던 문병희, 김문주, 정한정, 송상종, 최륜하, 오덕근, 이상근, 신명록, 추두영, 윤철병, 김원숙 등 14명이 발기인이 되어 취지서를 발표하고, 동래부 국채보상일심회를 설립하였다. 동래부 국채보상일심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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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 후 1914년까지 존속한 부산 지역의 일본인 자치 행정 기구. 개항 이후 부산으로 이주해 오는 일본인들이 증가하자, 부산의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이권 옹호를 위하여 조직적인 자치 기관이 필요하였다. 그리고 일본 정부의 입장에서도 영사관, 이사청 등 외교 기관을 보좌하여 자치 행정을 담당할 기관이 필요하였다. 이러한 양자의 필요성으로 인해 부산거류민단이 생겨났다.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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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부산 지역에 설립된 일본인 중심의 사회 경제 단체. 부산번영회는 개항 이후 이른 시기부터 부산으로 건너와 독자적인 일본인 사회를 구성한 일본인 관민 유력자들이 1906년 ‘부산 번영’에 관한 사항에 대해 공구하며 그 실행을 촉구한다는 목적으로 부산항에 설립하였다. 부산번영회는 부산의 번영에 관한 사항을 공구하며 그 실행을 촉진한다는 목적 아래 통상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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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4월 부산 지역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한 국채 보상 운동 단체. 1907년 일본에 빚진 1300만 원을 갚아 국권을 회복하자는 국채 보상 운동이 일어났을 때 부산항 좌천리에서 발기 조직된 부산항 좌천리 감선의연부인회에서는 숙부인 장씨[박정회의 처] 등이 중심이 되어 아침저녁 반찬값을 매일 3~4푼씩 아껴서 국채 보상금에 충당하자는 취지에서 조직된 단체이다. 의연금 모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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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3~1880년 부산 초량에 있던 일본 외무성의 통역관 양성 기관. 초량관어학소는 일본의 외무성에서 조선어 통역관을 양성하기 위해 설립하였다. 메이지 유신 후 번(藩)이 폐지되고 현(縣)이 설치됨에 따라 대외 관계를 직접 관할하게 된 외무성은 쓰시마 번의 조선어 교육 체제와 인재를 인수하는 형태로 1872년(고종 9) 10월 25일 대마도 이즈하라[嚴原]에 외무성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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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부산광역시 북구에 설립된 한국 최초의 근대적 민족계 지방 금융 기관. 백동화 인플레이션 해소 및 재정 개혁의 일환으로 1905년 화폐 정리 사업이 실시되어 전황이 발생하였다. 자본이 부족한 상인들은 크게 피해를 입게 되었고, 부산 지역 내 일본인 은행의 지점들이 점차 늘어나게 되는 등 일본 자본가들의 영향력이 경제 전반에 드리워지게 되었다. 금융 경색이 심화됨에 따라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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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대 부산 북항의 매축(埋築)을 담당했던 회사. 부산매축회사는 1902년 부산 북항 매축을 위해 설립한 회사이다. 자본금은 25만 엔으로 당시 일본의 대표적 재벌이었던 오쿠라재벌[大倉財閥]의 오너 오쿠라 키하치로[大倉喜八郎]가 18만 엔을 투자하였다. 나머지 자본은 최초 매축 사업을 계획하고 자본 투자자로 오쿠라재벌을 끌어들이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사토 준조[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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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부산 지역에서 조직되어 활동하였던 한국인 상인 단체. 개항 후 자연 발생적 혹은 관 주도로 조직된 각종 한국인 상인 단체[객주회, 상법회사 등]를 효과적으로 조직화하고 통할(統轄)하려는 목적 하에 1895년 김홍집(金弘集) 내각이 「상무회의소 규례」를 제정 공포하였다. 규례에 따라 당시 부산 경무관이었던 박기종(朴琪淙)이 중심이 되어 부산상무회의소(釜山商務會議所)를 설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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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부산 지역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이 주축이 되어 설립한 경제 단체. 부산상업회의소는 한국과 일본 양국 무역에 관한 일체의 이해득실을 상의하고, 무역과 관련한 내용에 대한 관청의 하문(下問)에 답하며 의견을 관청에 건의함과 동시에 물품 진열소를 관리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부산항 개항 이후인 1879년(고종 16) 8월에 부산상법회의소로 설립되었으며, 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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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부산 지역 상공업자들이 조직한 종합 경제 단체. 개항 이후 일본 상인의 유통 질서 교란 및 상권 침해로 인해 양국 상인 간의 경제적 이익이 충돌하자, 이에 대항하여 한국인 상인들의 조직화와 업권 보호 및 정부의 영업세 징수를 대행하기 위하여 부산조선인상업회의소를 결성하였다. 1889년(고종 26)에 한국인 상공업자들이 모여 객주 조합인 ‘부산객주상법회사’를 설립하였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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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부산 지역 최초로 박기종이 설립하려고 추진하였던 철도 회사. 부하철도회사는 부산항에서 하단포까지 화물 수송을 중심으로 한 경편 철도 건설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897년 9월 부하철도회사 설립 청원서를 농상공부에 제출했으나 궤간(軌間)[궤도의 한 레일과 마주 보는 레일과의 거리]의 폭, 용지 매수, 착공 시기, 준공 시한에 관한 규정 등 상세한 내용이 누락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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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부산 지역에 일본 실업인들이 설립한 협회 단체. 조선실업협회(朝鮮實業協會)는 부산 지역에서 일본 국내에 한국의 경제 정보를 제공해 주고 일본으로부터 자본과 인력을 유치하며 거류민의 한국 내 정착 기반의 정비를 도모하고자 설립되었다. 러일 전쟁이 한창 중인 1904년 11월 부산 지역에서 내전죽삼(內田竹三)의 주도로 찬동자 76명이 모여 조선실업협회를 설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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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에 있던 부산 지역 최초의 근대적 창고. 남선창고[초량 명태고방]은 해상을 통해 운반한 수산물을 보관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00년(고종 37)에 초량 객주인 정치국(丁致國)이 함경도 객주들과 힘을 합쳐 부두 창고 회흥사(會興社)로 설립하였다. 1910년(순종 4)에 북어창고(北魚倉庫)로 개칭하였고, 1914년에는 주식회사로 변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