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2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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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釜山監理署 |
영어음역 | Busan Gamniseo |
이칭/별칭 | 동래감리서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중구 대영로226번길 15[영주동 582-2] 봉래초등학교 부근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하지영 |
개항기 부산광역시 중구 영주동에 있었던 외교·통상 관련 관청.
개항 이후 개항장에서의 외교·통상 관련 업무량이 늘어나자 정부에서는 1883년 관련 사무를 전문적으로 처리할 기구로 부산과 원산, 인천 등 3개의 개항장에 감리를 두게 되었다. 부산감리서는 초기에는 동래 부사가 감리를 겸임하면서 기존의 행정 체계 안에서 업무를 처리하였으나, 이후 계속해서 개항장의 사무가 증가하면서 1890년 감리를 따로 파견하여 독립된 관서로서 기능하게 되었다.
1890년 독립된 관공서로 설치된 부산감리서는 1895년 지방 제도의 개편으로 폐지되었다가 1896년 다시 설치되었고, ‘을사조약’이 체결된 다음해인 1906년 2월 통감부가 설치되면서 폐지되었는데, 그 업무는 부산이사청으로 이관되었다.
부산감리서는 부산항 상품의 진출이나 세액의 과다를 검사하여 탁지부와 외부로 보고하고, 외국인 거류지 내의 거주자와 왕래하는 상인을 보호하고 상무를 감독케 하는 한편, 부산항의 상업·치안 질서를 유지하는 등 부산항 내의 모든 사무를 관장하였다. 특히 부산항에 주재하는 각국 영사관과의 교섭은 그 핵심적인 업무였는데, 통상 교섭 사무에 관한 한 목사나 부윤에 대해서도 훈령하고 지령할 수 있었다.
부산감리서는 지금의 부산광역시 중구 영주동 582-2번지의 봉래초등학교 부근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부산감리서는 개항기 부산항의 일반 사무 및 외교 사무를 관장했던 관청으로, 외국 영사관과의 교섭 과정에서 조선인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