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05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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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韓自彊會東萊支會 |
영어공식명칭 | Daehanjaganghoe Dongnae Branch |
영어의미역 | Dongrae Branch of Korean Jaganghoe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동래구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이귀원 |
[정의]
개항기 부산 지역에 있었던 대한자강회 소속 지회.
[설립 목적]
대한자강회 동래지회는 국민 교육을 강화하고 국력을 배양하여 독립의 기초를 다지기 위해 설립되었다.
[변천]
대한자강회가 1906년 3월 31일에 결성되고, 동년 8월 「대한자강회 지회 규칙」이 제정되자 동래에서는 김병규(金秉圭) 등의 유지들이 대한자강회 동래지회를 설립하고, 8월 14일 본부에 인허를 청원하였다. 회장으로 추대된 이상흔(李相昕)과 주도층인 윤철병(尹轍炳), 이광욱(李光昱), 김병규, 백문혁(白文爀) 등 주요 인물은 중하급 관료 내지 무관과 중인 출신이 많았다. 또한 김영규(金永圭), 윤병준(尹炳準) 등 객주 상인도 일부 참여하였다.
본부에서 시찰원으로 윤효정(尹孝定)을 파견하여 대한자강회 동래지회의 상황을 파악한 뒤 9월 15일 대한자강회 통상회에서 평안북도 의주지회, 경상북도 고령지회와 더불어 전국에서 가장 먼저 대한자강회 동래지회의 설립을 인허하였다. 대한자강회 동래지회는 1907년 8월 강제 해산되기까지 1년 동안 활동하였다. 해산 때까지 회원 수는 100명가량을 헤아렸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회원들은 학교 설립 운동과 국채 보상 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회원인 이상흔, 이광욱, 이응덕(李應悳) 등은 동래기영회(東萊耆英會)의 공유 재산 처리 문제를 의결한 동래 수면 노소 신사 총회(東萊首面老少紳士總會)에서 공유 재산을 육영 사업에 쓸 것을 강력하게 주장하여 관철시켰다. 그리하여 1907년 12월 5일 현 동래고등학교의 전신인 동명학교(東明學校)가 설립되었다. 아울러 회원들은 부산항상무회와 동래부 국채보상일심회의 국채 보상 운동에도 참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