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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5838
한자 釜山埋築會社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중구 대교동 2가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배석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회사
설립 시기/일시 1902년 7월 25일연표보기 - 설립 등기
해체 시기/일시 1909년 10월 9일연표보기 - 해체
최초 설립지 부산광역시 중구 대교동 2가

[정의]

개항기 부산광역시 중구 대교동 2가에 있었던 부산 북항 매축 담당 회사.

[설립 목적]

부산매축회사는 1902년 부산 북항 매축을 위해 설립한 회사이다. 자본금은 25만 엔으로 당시 일본의 대표적 재벌이었던 오쿠라재벌[大倉財閥]의 오너 오쿠라 키하치로[大倉喜八郎]가 18만 엔을 투자하였다. 나머지 자본은 최초 매축 사업을 계획하고 자본 투자자로 오쿠라재벌을 끌어들이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사토 준조[佐藤潤象]와 타카시마 요시야스[高島義恭]가 출자하였다. 회사 본점은 일본 도쿄에 두었고, 매립 사업의 실무를 담당하기 위해 매립 현장에 부산지점을 개설하였다.

[변천]

매축이 완료된 이듬해인 1909년 10월 9일 회사는 공식적으로 해산되었고, 매립 부지의 판매 등 사업 청산과 관련하여 남은 일들은 부산지점이 담당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1902~1905년, 그리고 1907~1908년까지 2차례에 걸친 부산항 매축을 통해 현재의 부산광역시 중구 중앙동 일대 약 13만 2000㎡[4만 평]의 부지를 조성하였다. 원래 계획은 16만 5000㎡[5만 평]이었으나 2차 공사의 차질로 면적이 줄었다. 1902년 시작된 1차 공사로 매립된 부지는 원래 계획인 10만 2300㎡[3만 1000여 평]보다 약간 많은 10만 5600㎡[3만 2000여 평]이었고, 1904년 12월 31일부로 완공되어 이듬해인 1905년 2월 18일 준공서가 제출되었다. 1906년 2차 매립 공사에 들어가려고 했으나 매축권이 취소되어 공사가 중단되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결국 1907년 4월 1일자로 공사가 재개되어 이듬해인 1908년 8월 31일 준공되었다.

그러나 매축된 부지는 원래 계획인 5만 6100㎡[1만 7000여 평]보다 절반 이상 대폭 축소된 2만 6400㎡[8,000여 평]이었다. 한편 부지 매축과 함께 매축한 부지의 판매, 임대도 실시하였다. 이를 통해 매축된 부지에는 공공시설과 상업 시설이 들어섰다. 대표적인 공공시설로는 부산역과 잔교(棧橋), 부산우체국, 부산세관 등이다. 이 가운데 잔교는 일본 정부의 재정 지원으로 이루어진 항만 시설의 일부였고, 나중에 건설되는 부산 제1 부두의 원형이 되었다. 상업 시설로는 해운 회사, 운송 회사, 창고, 여관 등이 들어섰다. 여관이 많이 들어선 것은 부산역 및 관부 연락선의 운항과 관련이 깊다.

[의의와 평가]

부산매축회사가 시행한 부산 북항 매축은 근대 부산항 개발과 관련한 대규모 매축공사로는 최초의 것이다. 따라서 부산매축회사는 일제 강점기 지속적으로 시행된 부산항 개발의 초기 과정을 살펴보는데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회사로서 의미를 가진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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