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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0354
한자 船艙-鬪爭事件
영어의미역 A scandal of a strike at Waterfront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하지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사건
관련인물/단체 김광엽|김주이|소야|송본을오랑|김학진
발생|시작 시기/일시 1886년 6월연표보기 - 발생
발생|시작 장소 부산광역시
종결 장소 부산광역시

[정의]

1886년 일본인이 조선인을 살해한 일로 부산진 민중들이 분개한 사건.

[역사적 배경]

1876년 개항 이후 부산으로 진출한 일본인들은 부산포에 전관 거류지를설정, 이를 거점으로 조선과 일본 간의 무역에 종사하면서 부산 지역의 상권을 장악해 가는 한편 불법적인 토지 확대 등을 통하여 자신의 지배권을 사방으로 확대해 나갔다. 이 과정에서 조선인과 일본인 사이에서는 크고 작은 분쟁이 빈번하게 발생하였고, 일본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지역민들의 항쟁 또한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경과]

1886년 6월 14일 밤 부산진에 살고 있던 김광엽(金光燁)과 김주이(金周伊)가 배에 닭을 실고는 일본 거류지로 들어가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소야(小野) 및 송본을오랑(松本乙五郞)이라는 일본인에게 팔았다. 다음 날 그 값을 받기 위해 배를 타고 일본 거류지 앞 선창으로 갔는데, 갑자기 일본인 3명이 나타나 돌을 던지며 이들을 구타하고 내쫓는 바람에 김광엽은 바다에 빠져 죽고 김주이는 근근이 살아 돌아와 이 사실을 동래 부사에게 보고하였다. 당시 동래 부사였던 김학진(金鶴鎭)은 일본 영사에게 엄중하게 항의하면서 이 사건에 대한 배상을 요구했으나 일본 측은 불응하였다. 이 사건을 전해들은 부산진 민중들은 크게 분개하여 일본인 타도를 외치는 등 항일 감정이 매우 고조되었다.

[의의와 평가]

1876년 강화도 조약의 체결로 일본에 가장 먼저 개항된 부산은 일제의 침략 정책이 실현되는 교두보로, 부산으로 진출한 많은 일본인들은 치밀하고도 적극적으로 침투해 왔다. 이에 대한 지역민들의 위기의식과 저항 의식은 강하였는데, 일제에 대한 지역민들의 저항 운동이 비록 조직적으로 전개되지는 못했지만 일제의 침탈에 대항한 항일 투쟁이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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