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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선창고[초량 명태고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4654
한자 南鮮倉庫[草梁明太庫房]
영어의미역 Choryang Pollack Storeroom
이칭/별칭 명태고방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지명/시설
지역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
시대 근대/근대,현대/현대
집필자 김호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창고
설립자 정치국
설립 시기/일시 1900년연표보기 - 회흥사로 설립
해체 시기/일시 2008년 12월 - 건물 해체
개칭 시기/일시 1910년연표보기 - 회흥사에서 북어창고로 개칭
개칭 시기/일시 1920년연표보기 - 북어창고에서 북선창고로 개칭
개칭 시기/일시 1926년연표보기 - 북선창고에서 남선창고로 개칭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14년 - 주식회사로 변경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37년 이후 - 이병진 개인 소유로 전환
최초 설립지 회흥사 -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

[정의]

개항기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에 있었던 창고업체.

[설립 목적]

남선창고[초량 명태고방]은 해상을 통해 운반한 수산물을 보관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변천]

1900년(고종 37)에 초량 객주인 정치국(丁致國)이 함경도 객주들과 힘을 합쳐 부두 창고 회흥사(會興社)로 설립하였다. 1910년(순종 4)에 북어창고(北魚倉庫)로 개칭하였고, 1914년에는 주식회사로 변경하였다. 1920년에 북선창고(北鮮倉庫)로 개칭하였고, 1926년에 남선창고(南鮮倉庫)로 변경하여 창고로 이용하였다. 1937년까지 초량 객주 공동 소유였으나 이후 이병진의 개인 소유가 되었다. 2008년 12월에 남선창고[초량 명태고방] 건물이 해체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남선창고[초량 명태고방]은 수산물 창고로 이용되었다. 해상을 통해 함경도 일대에서 가져온 명태 등의 수산물을 일시적으로 보관하였다. 설립 당시에는 함경도와 서울 간에는 철도가 없었기 때문에 부산 지역에서 서울 지역 등지로 팔기 위한 창고가 필요하였던 것이다. 1914년에 경원선이 개통되면서 수산물이 직접 서울로 수송되어 부산 지역 객주들만이 이용하게 되었다.

[의의와 평가]

남선창고[초량 명태고방]은 부산 지역 최초의 근대적 창고로서, 우리나라 근대 창고업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남선창고[초량 명태고방]이 있던 자리에 대형 할인점이 들어서서 씁쓸하고 아쉬운 마음이 든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1.04.05 수정 항목명 초량 명태고방->남선창고[초량명태고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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