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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 구석기 시대·신석기 시대·청동기 시대의 유적과 유물. 부산 지역의 선사 시대 유적은 구석기 시대 유적 4개소를 비롯하여 신석기 시대 유적 20여 개소 이상, 청동기 시대 유적 40여 개소 이상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매장 문화재 발굴 조사에 의해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이다. 신석기 시대의 유적으로는 오래 전부터 알려져 온 부산 동삼동 패총...
구석기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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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 있는 구석기 시대의 사회와 문화. 우리나라의 구석기 유적은 대부분이 중기와 후기 구석기 시대에 해당하며, 전기 구석기 시대의 유적은 그리 많지 않다. 부산 지역의 좌동 구석기 유적·중동 구석기 유적·청사포 유적은 모두 후기 구석기 시대에 해당하며, 빙하가 가장 발달하였던 시기[최대 빙하 발달기]가 조금 지난 뒤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시기에는 바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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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 구석기 시대의 기후와 자연. 구석기 시대의 자연환경은 흔히 빙하 시대로 불리는 시기였고, 지금과는 전혀 다른 자연환경이었다. 구석기 시대 사람들이 살았던 제4기 갱신세(更新世)[플라이스토세, Pleistocene]는 전반적으로 추웠으며, 빙하 시대가 여러 차례에 걸쳐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의 구석기 유적은 대부분이 중기와 후기 구석기 시대에 해당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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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 있는 구석기 시대의 문화유산. 부산 지역의 구석기 시대 유적은 해운대구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되었다. 1992년 해운대 신시가지 조성을 위한 사전 조사를 하였는데, 부산직할시립박물관이 실시한 지표 조사와 시굴 조사에서 구석기 시대 유적이 처음 발견되었다. 이후 4개월간의 발굴 조사를 통해 좌동 구석기 유적과 중동 구석기 유적에서 후기 구석기 시대의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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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 살았던 후기 구석기 시대 사람들의 생산 활동.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초기에는 죽은 짐승으로부터 고기를 얻거나, 함정을 이용하는 방식 등으로 수렵 활동을 하였다. 이렇듯 다소 수동적이면서 원시적인 사냥 방법에서 인간의 의지를 통해 본격적인 수렵이 이루어진 것은 후기 구석기 시대부터이다. 후기 구석기 시대에는 돌로 만든 수렵 도구인 찌르개가 출현한다. 찌르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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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 살았던 구석기 시대 사람들의 생산 도구. 해운대구에 있는 좌동 구석기 유적과 중동 구석기 유적에서는 석기 제작과 관련된 유물들이 다량으로 출토되었다. 이들 유적에서 제작된 석기들은 직접떼기와 눌러떼기로 떼어내거나 다듬어서 완성된 것이다. 좌동 구석기 유적에서는 석기 제작과 관련된 특별한 유구는 발견되지 않았으나, 석기 제작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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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 살았던 구석기 시대 사람들의 주거 형태.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수렵과 채집을 위해 이동 생활을 하였으며, 동굴과 야외에서 생활하였다. 구석기 시대의 주거와 관련된 유적도 주로 강이나 하천 가까운 곳에 많이 분포한다. 그러나 동굴은 특정 지역에만 존재하는 경우가 많아 대부분의 구석기 사람들은 동굴보다는 야외에 간단한 집을 지어 살았다. 구석기 사람들은 추운 날...
신석기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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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5000년대 전반부터 기원전 1500년 무렵까지의 부산 지역 석기 시대의 최종 단계. 구석기 시대 말부터 전 지구적 규모에서 온난화가 시작되고 신석기 시대가 되면 해수면이 급속하게 상승한다. 그 결과 부산 지역은 낙엽 활엽수가 우세하고 내만에는 다양한 해양 생물이 서식하는 온난 습윤한 환경으로 바뀌어 인간의 거주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었다. 수가리 유적 조개더미에서 나온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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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기 시대 부산 지역의 기후와 환경. 약 1만 년 전에 홍적세(洪績世)[신생대 제4기로 빙하 시대를 일컬음]가 끝나고 완신세(完新世)[홀로세, 약 1만 년 전부터 현제까지의 기간]가 시작되면서 한반도는 온난화 현상과 함께 신석기 시대가 시작되었다. 한반도 남해 연안은 리아스식 해안으로 기온이 점차 올라가면서 해수면이 높아지기 시작하였다. 바다 높이는 현재보다 높았다는 견해와 높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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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서 출토된 신석기 시대의 인골. 부산 지역 신석기 시대의 인골은 범방동 패총에서 출토된 것이 대표적이다. 범방동 패총에서 출토된 신석기인의 인골은 신석기 시대 조기 11~12세 어린아이의 인골로, 움무덤[土壙墓]에서 연옥제(軟玉製) 목걸이 1점, 골각기 1점과 함께 출토되었다. 최근 부산광역시 강서구 성북동 1194-2번지 일대의 부산항 신항 준설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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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기 시대 부산 지역의 유적과 유물. 부산 지역의 신석기 시대 유적으로는 부산 동삼동 패총·영선동 조개더미·조도 조개더미·청학동 조개더미·동삼동 상리 조개더미·암남동 조개더미·다대포 조개더미·가덕도 장항 조개더미·대항 조개더미·외양포 부은늘 조개더미·수가리 조개더미·범방동 패총·금곡동 율리 조개더미·북정 조개더미·세산 유적·장전리 유물 산포지·농소리 조개더미·용호동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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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다양한 유적에서 출토된 신석기 시대의 토기. 우리나라 신석기 시대 토기 문화는 특징에 따라 크게 5대 권역으로 구분되며, 이 중 전체적인 편년 관계는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확인된다. 이에 따라 초기-조기-전기-중기-후기-말기 등 6단계로 편년되며, 시기적으로 다양한 토기 문화의 특성이 나타난다. 또한 두만강 유역을 중심으로 하는 동북 지역과 압록강 유역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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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서 출토되는 신석기 시대 토기에 나타나는 다양한 기하학적 무늬. 현재 부산에서 가장 이른 시기인 기원전 5000년대의 토기에 베풀어진 무늬는 덧무늬[隆起文]이다. 덧무늬는 그릇의 표면에 가느다란 점토 띠를 덧붙이는 기법을 가지고 이름 지은 것이다. 이 시기에는 점토 띠만 붙인 덧무늬[隆起線文]와 점토 띠 위에 눈금을 새긴 덧무늬[隆起帶文] 외에도 덧무늬와 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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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기 시대 부산 낙동강 하구 일대 토기 문화의 특징과 변천. 낙동강 하구의 신석기 시대 토기 문화는 한반도 전체의 지역 구분 내에서 남해안 지역에 해당되며, 시간적으로 5기의 구분이 가능하다. 절대 연대로는 기원전 6000년~1300년에 해당된다. 조기는 덧무늬 토기로 대표되며 납작바닥을 기본으로 하며, 동해안과 남해안을 중심으로 분포한다. 전기는 부산광역시 영도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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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 신석기 시대 사람들의 수렵, 어로, 채집, 농경 등의 생산 활동. 신석기 시대의 생산 활동을 고고학 자료를 토대로 신석기 조기, 신석기 초기, 신석기 중기, 신석기 후기, 신석기 말기로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신석기 시대의 조기 단계는 부산 지역에서도 출토된 덧무늬 토기를 중심으로 붉은 간 토기[적색 마연 토기(赤色磨硏土器)]나 눌러찍기 무늬 토기,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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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서 출토된 신석기 시대부터 통일 신라 시대까지 짐승의 뼈, 이빨, 뿔 등을 손질하여 만든 각종 도구. 골각기(骨角器)는 사냥, 채집 등을 통해서 재료를 구하고 가공하기 쉬우므로 선사 시대부터 석기, 목기 등과 함께 사용된 일상 용구이다. 골각기의 재료인 뼈는 대부분 단백질·칼슘·인 등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패총(貝塚)이나 저습지 등과 같이 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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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 살던 신석기 시대 사람들의 사냥 기술. 수렵은 인간에게 양질의 단백질을 제공하고, 뼈나 뿔, 이빨, 가죽 등을 이용하여 일상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용구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신석기 시대에도 여전히 생업 활동의 주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부산 동삼동 패총, 수가리 조개더미, 범방동 패총 등 부산 지역의 여러 유적에서 동물 유존체가 발견되는데, 신석기 시대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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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 신석기 시대의 고기 잡는 기술. 부산 지역을 비롯한 신석기 시대 사람들은 어로 활동 영역을 가까운 내해나 근해에 국한하지 않고 비교적 먼 바다로 나가 활동하기도 하였는데, 이러한 흔적을 잘 보여 주는 것이 당시 사람들이 생활하면서 남긴 각종 조개더미 유적이다. 부산 동삼동 패총을 비롯한 부산 해안 지역에 형성된 조개더미 유적에서는 고래와 강치, 물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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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서 발견된 신석기 시대의 고기잡이 도구와 종류. 빙하기 이후 신석기 시대로 접어들면서 인류는 새롭게 형성된 환경과 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되었다. 신석기 시대 사람들은 주로 강이나 바닷가에 터전을 잡고 살았기 때문에 어로 활동은 중요한 생업 중 하나였다. 이러한 흔적을 잘 보여 주는 것이 당시 사람들이 생활하면서 남긴 각종 조개더미 유적이다. 부산 동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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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 살았던 신석기 시대 사람들의 다양한 생산 도구. 부산 지역을 포함하는 동남해안 지역의 신석기 시대 생산 도구는 생업과 관련해 크게 수렵구, 어로구, 채집 및 농경구, 벌채목 공구, 식량 처리구, 공구 등으로 나뉜다. 재질에 따라서는 석제와 골제로 나뉜다. 수렵구는 화살촉과 창이 대표적이며 어로구는 낚싯바늘과 작살, 그물추가 대표적이다. 어로가 발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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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서 발견된 신석기 시대의 집자리와 무덤, 유물 등을 통하여 본 당시의 사회 구조. 사회 구조에는 사회 구성원의 인구 규모, 성원 간의 위계 구조, 경제생활의 기본 단위, 혈연관계와 혼인 관계 등 다양한 내용을 포함한다. 선사 시대의 사회 구조를 파악하는 것은 고고학적인 분석 과정에서도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신석기 시대의 사회 구조는 유물이나 유구 자체의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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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기 시대 부산 지역의 다양한 종교적 또는 의례적 행위. 자연의 변화에 좌우되는 환경 속에서 살아간 신석기인은 생활 자체가 종교적이고 의례적인 측면이 강했다. 생업 활동의 안전과 풍요, 다산을 기원하고 자연에 대한 두려움 등을 종교적인 신앙으로 해결하려 하였으며, 이를 위해 일부 자연물과 동식물을 신격화하거나 형상화하여 숭배의 대상으로 삼았다. 부산 동삼동 패총을 비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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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 있었던 신석기 시대의 매장과 관련된 시설물. 신석기 시대 부산 지역의 무덤[분묘]은 청동기 시대의 무덤보다 구조도 단순하고 종류도 다양하지 않다. 유적은 주로 해안 지역에서 발견되며, 현재까지 발굴된 무덤은 약 100기에 달한다. 무덤의 종류로는 독무덤[甕棺墓], 움무덤[土壙墓], 적석 토광묘, 집단묘 등이 있으며, 대부분은 지면을 간단하게 파고 시신을 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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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 신석기 시대의 옷감 제작과 생활. 부산 지역 신석기 시대 유적 중에 의복의 종류나 구체적인 형태를 입증할 수 있는 직접적인 자료는 출토된 바 없지만, 이와 관련된 유물 자료들을 통하여 그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그 중 대표적인 유물이 방직용 용구인 가락바퀴[紡錘車]를 비롯하여 바늘과 바늘통, 삿바늘, 송곳, 실 등이다. 신석기 시대에 이르러 나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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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기 시대 부산 지역의 먹을거리. 빙하기 이후 신석기 시대로 접어들면서 세계 각지의 인류는 새롭게 형성된 환경과 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되었다. 구석기 시대에 수렵(狩獵)과 채집(採集)이 생계의 중심을 차지했다면, 신석기 시대에는 주요 생계 수단이 육지를 벗어나 물가나 바다로 확대되기 시작하였다. 바다 자원을 활용하는 어로(漁撈) 행위와 함께 농경(農耕)이 이루어지면서 구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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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 살던 신석기 시대 사람들의 각종 주거 공간. 신석기 시대 사람들은 이동 생활을 하던 구석기 시대 사람들과 달리 바닷가나 강가에서 정착 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오랫동안 거주할 주거 공간이 필요하였다. 주로 자연 동굴을 이용한 구석기인과 달리 신석기인은 생업 활동과 환경에 적합한 형태의 주거 시설을 조성하여 생활하였다. 지금까지 고고학적 조사에 의하면 기원전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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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의 신석기 시대 유적에서 발견된 땅을 파서 만든 주거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주거 형태는 구석기 시대의 동굴, 바위 그늘 주거지이다. 땅을 파서 만든 ‘수혈 주거(竪穴住居)’ 형태는 신석기 시대에 본격화된다. 신석기 시대에는 바닥에 돌을 깐 ‘부석 주거지(敷石住居址)’ 등도 발견되고 있으나 ‘수혈 주거지(竪穴住居址)’가 일반적인 형태로 보이는데, 다른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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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서 발견된 신석기 및 삼국 시대의 화덕 자리. 노지는 집 자리 등 생활 유적에서 주로 발견되며, 불을 이용하여 취사·난방·제습·조명 등의 기능을 하였던 노(爐)가 있었던 자리를 말한다. 노지는 불에 의한 흔적이므로 우리나라에서도 인류가 불을 사용하는 구석기 시대 이후부터 확인된다. 노지는 크게 보아 내부 노지, 외부 노지, 야외 노지 등으로 나뉘며, 특히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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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기 시대 부산 지역의 지역 간 인적·물적 정보와 물자의 이동 양상. 신석기 시대 부산 지역의 교류 양상은 문물 이동의 지리적 범위와 문화적 성격에 따라 크게 대외 교류와 지역적[대내적] 교류로 대별할 수 있다. 대외 교류는 지역과 문화적 기반을 달리하는 한반도 이외의 지역과의 교류를, 지역적 교류는 한반도 내 지역 간에 이루어지는 대내적 교류를 의미한다. 전자에 대해서는 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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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기 시대 부산 지역의 해양을 통한 지역 간 인적·물적 정보와 물자의 이동 양상. 바다를 주요 생활 공간이자 생업 기반으로 삼은 신석기인은 이른 시기부터 해양 교류 활동을 전개하였다. 해양 교류는 동일한 문화적 공간 내에서 이루어지는 대내적(對內的) 교류와 문화적 기반을 달리하는 한반도 주변 지역과 이루어지는 대외적(對外的) 교류로 구분된다. 대외적 교류는 주로 한일 문화 교류라...
청동기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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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 청동기 시대의 자연환경. 부산 지역은 온대 계절풍 기후대에 속하면서도 해양성 기후의 특징이 잘 나타난다. 지형상 현재의 해안선과 크게 다르지 않은 청동기 시대 부산 지역의 기후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형적으로는 크게 낙동강을 기준으로 동쪽의 구릉성 산지대와 서쪽의 평야 지대로 구분된다. 주거지와 무덤[분묘]은 구릉성 산지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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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서 발견된 청동기 시대의 유물·유적과 문화. 청동기 시대에는 각종 곡물과 함께 논밭과 같은 경작 유구(耕作遺構)가 확인되는 등 신석기 시대부터 시작된 농경이 발달하였다. 이에 따라 주거지는 물론 마을의 규모가 커지고, 생산물이 증가하면서 신분 혹은 계층의 차이가 물질 자료에 반영되었다. 주거지에서도 규모의 차이가 크고 나무 울타리[목책(木柵)]나 환호(環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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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 청동기 시대의 유적에서 출토된 다양한 토기. 부산 지역 청동기 시대의 토기는 가장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는 황갈색의 토기, 붉은 간 토기[단도 마연 토기(丹塗磨硏土器)·적색 마연 토기(赤色磨硏土器)·홍도(紅陶)], 표면을 매끄럽게 간 마연 토기(磨硏土器) 등이 있다. 그릇의 형태와 거기에 새겨지는 무늬도 매우 다양하다. 이러한 청동기 시대의 토기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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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서 출토된 청동기 시대의 문양이 없는 적갈색 토기. 부산 지역에서 청동기 시대 때 사용된 민무늬 토기는 아가리에 공열문(孔列文)[구멍이 열을 지어 돌아가면서 뚫린 토기]·단사선문(短斜線文)[짧은 금을 비스듬히 그어 나타낸 무늬] 등의 단순한 문양이 있는 토기와 붉은 간 토기 등 청동기 시대에 사용되었던 모든 토기를 포괄하여 지칭한다. 1. 공열문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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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서 출토된 청동기 시대 때 적색 산화철로 마연을 한 토기. 부산 지역에서 청동기 시대 때 사용된 붉은 간 토기는 토기의 성형이 완료된 뒤 토기의 표면에 산화철의 액체를 바르고 매끄러운 도구로 문질러 소성한 것이 특징이다. 신석기 시대의 산화철만을 바른 토기나 산화철이 녹은 점토를 토기에 바른 토기와는 계통이 다른 것으로 파악된다. 붉은 간 토기는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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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서 확인되는 아가리 부분에 원형의 점토 띠를 덧댄 청동기 시대의 토기. 부산 지역의 청동기 시대 말에 사용된 토기의 가장 큰 특징은 아가리 부분에 원형의 점토를 덧댄 것이다. 아가리에 점토를 덧댄 토기는 청동기 시대의 민무늬 토기[無文土器]에서는 유례가 없는 것으로 새로운 문화의 도입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즉 중국 랴오닝[遼寧] 지역을 거쳐 한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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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 살았던 청동기 시대 사람들의 다양한 무기. 청동기 시대의 무기로는 간 돌칼[마제 석검(磨製石劍)]·간 돌 화살촉[마제 석촉(磨製石鏃)]·간 돌창[마제 석창(磨製石槍)]·돌로 만든 칼자루 끝 장식[석제 검파두식(石製劍把頭飾)] 등이 있다. 간 돌칼은 청동기 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석기 가운데 하나로서 동북아시아에서도 한반도에서 가장 발달하였으며, 일본의 규슈[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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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서 출토된 청동기 시대 때 돌을 갈아서 만든 칼. 간 돌칼의 칼날은 칼 몸 양쪽에 있고, 칼 몸 한가운데에는 그것을 세로로 가르는 모가 형성되어 있다. 손잡이[병부(柄部)]의 유무에 따라 유병식(有柄式)과 유경식(有莖式)으로 구분된다. 유경식은 다시 슴베[경부(莖部), 칼·괭이·호미 따위의 자루 속에 들어박히는 뾰족하고 긴 부분]의 길이에 따라 단경식(短莖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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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서 출토된 청동기 시대 때 돌을 갈아서 만든 화살촉. 간 돌 화살촉의 기원에 대해서는 청동 화살촉을 모방하였다는 설과 신석기 시대의 화살촉을 점진적으로 발전시켰다는 설이 있다. 처음 사냥용으로 출현한 간 돌 화살촉은 전쟁 도구로 쓰이면서 형식이나 기능이 다양해진 것으로 보인다. 간 돌 화살촉의 몸통은 단면 형태에 따라 납작형[편평형(扁平形)]과 마름모꼴[능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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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 살았던 청동기 시대 사람들의 생산 활동. 청동기 시대 생업의 가장 큰 특징은 농경이 널리 보급되었다는 점이다. 신석기 시대까지는 주로 수렵과 채집 및 어로 등으로 생업을 유지하였지만, 청동기 시대가 되면 농경이 생업의 주된 요소가 되면서 수렵과 채집 및 어로 등은 부차적인 것으로 변하였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농경이 시작된 시점은 신석기 시대부터이지만, 이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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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 살았던 청동기 시대 사람들이 짐승을 잡던 방법. 수렵(狩獵)은 짐승을 잡는 일을 말하며 사용하는 도구에 따라 창 수렵과 활 수렵, 덫 수렵, 올무 수렵, 그물 수렵, 함정 수렵 등 여러 종류로 분류한다. 청동기 시대에도 다양한 수렵 방식이 존재하였다고 생각하지만, 고고학 자료를 통해 확인된 것은 활 수렵과 창 수렵, 함정 수렵 등에 한정된다. 활 수렵은 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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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 살았던 청동기 시대 사람들이 물고기나 조개 등을 잡던 방법. 어로(漁撈)는 물고기와 조개 등의 수산물을 잡거나 모으는 일을 말하며, 선사 시대에 식량을 얻는 주요한 방법 가운데 하나였다. 신석기 시대에는 바다에서 어로 활동을 많이 하였지만, 농경이 보급된 청동기 시대에는 논과 관개 시설 등이 자연스럽게 어장(漁場)으로 활용되면서 해양 어로보다는 담수(淡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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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 청동기 시대의 사람들이 여러 가지 물품을 만드는 데 사용하였던 도구. 청동기 시대에는 토기(土器)와 석기(石器)[돌연장], 목기(木器)[나무 연장], 청동기 등 다양한 물품을 만들었기 때문에 생산 도구도 많은 종류가 있었다. 이 가운데 대표적인 생산 도구로는 목기를 만드는 데 사용한 목공구(木工具)와 석기 제작 도구가 있다. 청동기 시대 목공구는 재질에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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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서 확인된 청동기 시대 때 돌을 갈아서 만든 도구. 1. 간 돌도끼 간 돌도끼는 목기 제작 공구로서 인부(刃部)의 형태에 따라 합인(蛤刃)[조갯날, 조개의 다문 입처럼 양면(兩面)을 갈아세운 날]을 포함한 양인(兩刃)과 편인(片刃)으로 구분되는데, 이는 기능에 따른 것이다. 일반적으로 대형의 합인 돌도끼는 벌채용, 편인 돌도끼는 목재의 가공용으로 이용된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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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 청동기 시대의 사회 구조. 문헌이 없는 선사 시대의 경우 물질 자료인 고고 자료를 통해 당시 사회의 집단과 계층 등을 연구한다. 청동기 시대에 농경이 발달하였기 때문에 신석기 시대보다 정착 생활이 강화되었고, 마을의 규모가 커지면서 더욱 더 조직화와 세분화가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마을 전체의 공동 노동과 생산물의 분배 및 관리를 통제할 수 있는 우두머리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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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 살았던 청동기 시대의 사람들이 자연이나 동물 등을 믿고 받들었던 일. 청동기 시대에도 다양한 신을 믿는 신앙이 있었겠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증거는 없다. 그러나 의례(儀禮) 행위와 관련되었다고 판단하는 여러 가지 고고학 자료를 통해 청동기 시대 신앙을 어느 정도 추정할 수 있다. 현재까지 확인된 자료로 보면 청동기 시대에는 토지신과 조상신을 숭배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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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서 확인된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 돌널무덤, 독무덤. 부산 지역의 청동기 시대 무덤으로는 주로 지표 조사 및 공사 중에 발견된 고인돌[지석묘]과 돌널무덤[석관묘(石棺墓)]이 많다. 고인돌은 강서구 미음동·천성동 가덕도, 금정구 장전동, 사하구 감천동에서 발견되었다. 모두 정식 발굴 조사는 아니지만 고인돌의 상징인 큰 상석(上石)이 지표에서 확인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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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 살았던 청동기 시대 사람들이 입었던 옷과 이와 관련한 생활 풍속. 청동기 시대 사람이 입었던 옷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혀진 내용이 없다. 그러나 옷은 추위와 바람 등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기능을 가졌다는 점에서 야외 활동이 많았던 청동기 시대 사람은 옷을 만들어 입었을 개연성이 크다. 이러한 추정을 뒷받침하는 고고학 자료로 옷감을 짜려고 실을 꼬는 데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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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 살았던 청동기 시대 사람들의 음식물. 청동기 시대 사람은 농경을 중심으로 하면서 수렵과 어로 및 채집 등을 병행하여 생업을 유지하였다. 여러 생업 방식을 통해 곡물을 비롯하여 짐승 고기와 새고기, 물고기, 조개, 나무 열매 등 다양한 종류의 식량을 얻었고 이를 음식으로 만들어 먹었다. 청동기 시대에 재배한 곡물로는 벼·보리·밀·콩·팥·조·기장 등이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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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 청동기 시대의 집터. 청동기 시대의 주거에는 지상에 큰 기둥을 세워서 그 위에 지은 굴입주 건물(掘立柱建物)도 있지만, 부산 지역에서 확인되는 것은 거의 대부분 땅을 파서 만든 수혈 주거지(竪穴住居址)이다. 1985년과 1986·1988년에 조사된 노포동 유적과 반여동 유적에서 두 기씩 확인되었고, 최근에 발굴 조사된 사례로는 기장 지역의 가동 유적, 방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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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서 확인되는 청동기 시대 마을 주변을 둘러싼 인공 도랑. 부산 지역에서 확인되는 환호(環濠)의 형태는 전체 모습이 조사된 예는 없다. 하지만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304번지 청동기 시대 환호 유적이나 온천동 유적을 보아 원형보다는 타원형의 형태를 띨 것으로 보인다. 환호의 형태는 대체로 유적의 입지나 지형에 따라 원형이나 타원형을 띠고 단면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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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의 청동기 시대 지역 교류. 청동기 시대의 부산 지역은 인근의 김해·양산·울산 지역 등과 교류하면서 동남해안 지역의 문화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로는 원형 점토대 토기(圓形粘土帶土器) 문화를 들 수 있다. 무덤 유적인 임석 유적과 조개더미 유적인 북정 조개더미·조도 조개더미에서 원형 점토대 토기가 출토되어, 부산 지역도 청동기 시대 후기에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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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 시대 부산 지역과 일본 북부 규슈 지역과의 교류. 영남 지역의 청동기 시대 문화는 바다를 통해 일본 열도에 큰 영향을 주었고, 그로 인해 일본에서는 야요이 시대[彌生時代]가 시작되게 되었다. 구체적으로는 토기·석기·벼농사·고인돌 등이 전래되었으며, 부산을 비롯한 영남 지역의 주민들이 일본 열도로 건너가기도 하였다. 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1동의 금강 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