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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3120
한자 新石器時代-土器
영어의미역 Earthenware of the Neolithic Period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선사/석기
집필자 이동주

[정의]

부산의 다양한 유적에서 출토된 신석기 시대의 토기.

[개설]

우리나라 신석기 시대 토기 문화는 특징에 따라 크게 5대 권역으로 구분되며, 이 중 전체적인 편년 관계는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확인된다. 이에 따라 초기-조기-전기-중기-후기-말기 등 6단계로 편년되며, 시기적으로 다양한 토기 문화의 특성이 나타난다. 또한 두만강 유역을 중심으로 하는 동북 지역과 압록강 유역을 중심으로 하는 서북 지역을 비롯하여 동북 지역·서북 지역·남부 지역의 토기 문화가 융합되는 청천강 이남부터 한강 유역에 이르는 중서부 지역, 강원 영동을 중심으로 하는 중부 동해안 지역, 그리고 한반도 남부에 해당하는 남부 지역으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이 중 서북 지역과 동북 지역은 밑바닥의 형태에 따라 바닥이 평평한 평저 토기 문화권에 속하며, 그 이남 지역은 바닥이 둥근 환저 토기 문화권에 속하므로 크게 구분한다면 2개 권역의 설정도 가능하다. 이 가운데 초기 단계의 유적은 제주도 일대에서 확인되나, 부산 지역에서는 확인되지 않고 조기 단계부터 나타난다.

부산 지역 신석기 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은 동삼동 상리 조개더미이며, 특히 범방동 신석기 유적에서는 신석기 시대 조기의 융기문 토기(隆起紋土器), 전기의 영선동식 토기, 중기의 태선문 토기(太線紋土器), 후기와 말기의 퇴화 침선문(退化沈線文) 및 이중 구연 토기(二重口緣土器) 등 전 시기에 걸친 토기가 출토되었다.

[변천과 특징]

1. 조기

조기 단계는 덧무늬[隆起文] 토기를 중심으로 가는 선 무늬[細沈線文] 토기, 붉은 간[赤色磨硏] 토기, 조흔문(條痕文) 토기, 무문양 토기 등이 사용되었다. 이 단계의 덧무늬 토기는 아가리 부분[口緣部]에서 일정한 간격을 두고 덧붙여진 다양한 기하학적 무늬가 특징이며, 융기대에 각목(刻目)되거나 침선[새김] 문양이 함께 시문(施文)되는 경우도 많이 나타난다.

기형적인 변화는 시기가 지나면서 평평한 바닥에서 점차 둥근 바닥[圓低]으로 변화하는 특징이 나타나고, 입술 모양 안에 눈 모양을 새긴 구순 각목 무늬[口脣刻目紋]나 수직상의 융기대문의 등장과 함께 점차 전기 단계로 이행한다. 밑바닥 형태는 대부분 원저(圓低)이며, 발형(鉢形)이나 심발형(深鉢形)을 중심으로 호형 토기(壺形土器)와 완형 토기(椀形土器) 등이 있다.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고김해만(古金海灣)의 가락동 죽림 신석기 유적범방동 신석기 유적 등이다. 지금까지의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치를 참고하면 주된 사용 시기는 기원전 6000∼기원전 4500년 사이로 볼 수 있다.

2. 전기

전기 단계는 같은 문양을 동일하게 찍은 형태의 영선동식 압인문 토기(押引文土器)를 중심으로 각종 침선[새김] 문양과 자돌 문양 등이 사용되던 시기이다. 주구 토기(注口土器)나 파상구연(波狀口緣) 토기 같은 특징적인 그릇 모양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른 시기에는 말기 단계의 융기 무늬와 함께 대부분 구순 각목 무늬가 나타나지만, 중기 단계로 이행하면서 구순 각목 무늬는 점차 사라지고 침선 무늬가 중심을 이룬다. 기형(器形)은 심발형과 발형을 중심으로 호형 토기와 완형 토기류, 소형 잔(盞)이나 구멍 뚫린 아주 작은 소호(小壺) 등도 확인되고 있다.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영선동 조개더미범방동 신석기 유적 등이다. 남부 지방의 전기 단계는 대략 기원전 4500∼기원전 3500년으로 추정된다.

3. 중기

중기 단계는 침선 무늬가 중심을 이루는 시기이며, 김해 수가리 패총 1 문화층 출토 토기를 표식으로 하며, 이를 수가리 1식 토기로 부른다. 전기 단계의 특징적 요소인 구순 각목 무늬나 압인 어골문(押引魚骨文)은 사라지고, 대신 구연부 단사 집선문양(短斜集線文樣)과 그 아래에 아주 가는 선으로 새긴 태선 침선문(太線沈線文)으로 불리는 새로운 시문 기법이 등장한다.

태선 침선문은 다시 2가지로 구분되는데, 가장 일반적인 경우는 문양의 시작점을 강하게 눌러 찍은 후 끌어 당겨서 시문하면서 끝 부분에도 약간 힘을 줘 끝맺음이 또렷해 보이게 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주로 어골문을 중심으로 평행하게 눌러 찍은 자돌 문양을 만든 후 이들을 서로 연결하여 시문한 것인데, 간격이 일정하고 매우 정치한 느낌을 주어 마치 자돌 문양과 침선문이 결합된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러한 시문 기법의 특징은 시기적으로 뚜렷한 특징을 나타낼 뿐 아니라 같은 시기 다른 지역과 구분되는 가장 특징적인 요소라 할 수 있다.

그릇 모양은 앞 단계에 사용된 발형·심발형·완형 토기·소형 잔 등이 주로 사용되었지만, 가장 주목되는 것은 손잡이 부분[把手部]이 붙은 호형 토기의 등장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파수부 호형 토기의 등장은 중부 동해안 영동 지역의 영향에 의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함께 문양의 시문 폭도 밑바닥까지 확산되는 등 신석기 시대 전 시기를 통하여 가장 넓어지는 특징이 나타난다.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다대포 조개더미 유적 등을 들 수 있다. 시기는 대략 기원전 3500∼기원전 3000년으로 추정된다.

4. 후기

후기 단계는 두 개의 지역성으로 구분되는 시기이다. 우선 남해안 지역의 경우, 김해 수가리 패총에서 확인된 수가리 2 문화층 단계의 토기이며, 이 때문에 통상 수가리 2식 토기로 불린다. 수가리 1 문화층에 비하여 문양의 시문 부위가 축소되는 양상이 나타나며, 아가리 부분에서도 약간 떨어져 문양이 시문되는 특징이 나타난다.

한편 영남 서부 내륙 지역에서는 해안 지역과 구분되는 봉계리식 토기라는 특징적인 양식이 등장하는 시기이다. 봉계리식 토기는 사질성 태토를 바탕으로 통상 아가리 부분에서 2∼3㎝ 띄운 후 몸체 부분에만 다양한 기하학적 문양이 새겨지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격자문양(格字文樣)과 점렬대문(點列帶文)이라 할 수 있다.

기형에서는 모두 둥근 바닥을 기본으로 하지만, 수가리 2식 토기가 직립 구연(直立口緣)의 발형 또는 심발형이 중심인 데 비해, 봉계리식 토기는 아가리 부분이 S자상으로 밖으로 넓어지는[外返] 옹형(甕形)을 이룬다. 모두 완형이나 소형 잔, 수가리 1식 토기 단계에서 확인된 구멍 뚫린 손잡이가 부착된 호형 토기가 공통적으로 함께 출토된다. 중기 단계의 공통적 요인을 공유하면서도 뚜렷한 지역 색이 나타나는 점에서 당시 집단의 사회적 관계 등에 대한 검토의 여지가 많을 것으로 판단된다. 시기는 대략 기원전 3000∼기원전 2500년으로 추정된다.

5. 말기

말기 단계는 겹아가리[二重口緣] 토기를 특징으로 하는 단계이며, 홑아가리도 거의 동일한 비율로 출토되고 있다. 김해 수가리 패총 3 문화층 단계에 해당하는데, 대표적 유적은 부산 금곡동 율리 조개더미를 들 수 있다. 태토는 대부분 사질성으로 변화하며, 아가리 부분이 이중으로 처리되면서 무늬 역시 단사선문(短斜線文)이나 거치문(鋸齒文) 등으로 극히 퇴화된 형태로 나타난다. 그 때문에 아래층인 수가리 2식 토기와 계통적인 연결이 어렵고, 이후 새로운 집단의 도래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이 때문에 토기의 발생 및 계통이나 시기에 대해 다양한 견해가 있는 편이며, 특히 다음 시기로 이어지는 청동기 시대와 관련하여 주목되는 단계라 할 수 있다. 이 토기의 시기는 대략 기원전 2500∼기원전 1500년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0.09.28 내용수정 고고학사전에 근거하여, 돋을무늬[隆起文] → 덧무늬토기[隆起文土器], 누름무늬 토기 → 압인문 토기로 수정 반영함.
이용자 의견
고*** 돋을무늬[隆起文] → 덧무늬토기[隆起文土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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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기하신 의견에 따라 내용수정을 완료했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2020.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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