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31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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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新石器時代-住居 |
영어의미역 | Dwellings of the Neolithic Period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선사/석기 |
집필자 | 하인수 |
[정의]
부산 지역에 살던 신석기 시대 사람들의 각종 주거 공간.
[개설]
신석기 시대 사람들은 이동 생활을 하던 구석기 시대 사람들과 달리 바닷가나 강가에서 정착 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오랫동안 거주할 주거 공간이 필요하였다. 주로 자연 동굴을 이용한 구석기인과 달리 신석기인은 생업 활동과 환경에 적합한 형태의 주거 시설을 조성하여 생활하였다. 지금까지 고고학적 조사에 의하면 기원전 6,000년 전후에 형성된 것으로 생각되는 강원도의 양양 오산리 유적과 고성 문암리 유적의 집자리가 가장 오래되었으나, 주변 지역의 고고학적 발굴 성과에 의하면 신석기 시대의 시작과 함께 주거 시설이 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주거 형태는 대부분 움집[수혈 주거]이지만, 지역과 시기에 따라서 자연 동굴이나 바위 그늘을 이용하기도 하였다.
움집은 50~100㎝ 정도의 깊이로 구덩이를 파고 기둥을 세운 다음 그 위에 이엉이나 갈대 등으로 지붕을 이어 만들었는데, 평면 형태는 원형, 방형, 장방형으로 구분된다. 대표적인 주거 유적으로는 봉산 지탑리 유적, 암사동 선사 주거지, 안산 신길동 유적, 시흥 능곡동 유적, 인천 삼목도 유적, 금릉 송죽리 유적, 진주 상촌리 유적, 서포항 유적, 양양 오산리 유적, 강릉 지경리 유적 등이 있다.
자연 동굴과 바위 그늘은 자연적으로 형성된 구조물을 주거 공간으로 이용한 형태인데,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금곡동 율리 유적, 청도 오진리 유적, 제주 북촌리 유적 등이 있다.
[집자리의 구조와 형태]
부산을 중심으로 한 남해안 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해 집자리의 조사 사례가 적고, 일부 확인된 자료도 부분적으로밖에 잔존하고 있지 않아 주거 형태와 구조, 시기별 특징 등은 불투명한 실정이다. 그러나 부산 동삼동 패총 아래에서 확인된 집자리에서 보듯이 신석기 전기부터 지속적으로 축조된 주거 시설이 존재하고, 범방동, 영선동, 북정, 다대포, 금곡동 율리 등 많은 유적이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부산 지역에 많은 취락이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부산 지역의 신석기 시대 집자리는 대부분 움집 형태이나 일부는 바위 그늘 형태도 있다.
부산 동삼동 패총 정화 지역 발굴에서 조사된 3기의 집자리는 후대의 교란과 중복으로 파괴되어 구조와 형태가 다소 불명확하다. 1호 집자리는 말각방형(抹角方形)[네 모서리를 둥글게 처리한 사각형]이나 장방형(長方形)[직사각형]이고, 2호 집자리는 원형의 움집으로 추정된다. 1호와 2호 집자리는 설치 위치나 규모에서 차이가 있으나 높이 15~20㎝의 단(段) 시설이 확인되며 단과 수혈 상면 사이에는 구(溝)를 설치한 특이한 구조를 하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이와 같은 구조는 남해안 지역을 포함한 주변 지역에서는 전혀 확인되지 않는 것이다. 3호 집자리는 일부만 남아 있어 전체 구조를 알 수가 없다. 집자리 간 선후 관계는 3호→1호→2호 순이며, 시기는 3호 집자리가 전기의 영선동식 토기 단계에, 1호와 2호 집자리가 중기의 수가리Ⅰ식 단계에 속한다.
부산 동삼동 패총의 움집과 달리 서남쪽으로 낙동강 하류가 내려다보이는 산 중턱에 위치한 금곡동 율리 유적은 높이 6m 내외의 암벽을 주거 공간으로 이용한 집자리이다. 당시 주거 시설로는 보기 드문 바위 그늘 유적이다. 바위 그늘 안과 전방에는 조개더미가 있는데, 바위 그늘의 중앙 부분을 기준으로 좌우 5m가량에 분포하여 있다. 바위 그늘 안에서는 조리 시설인 화덕 자리가 확인되었다. 주거의 중심 시기는 출토 유물의 형식적인 특징으로 볼 때 신석기 말기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