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473 |
---|---|
한자 | 洛東江下口-土器文化圈 |
영어의미역 | Earthenware Cultural Bloc in the Mouth of the Nakdong River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선사/석기 |
집필자 | 임상택 |
[정의]
신석기 시대 부산 낙동강 하구 일대 토기 문화의 특징과 변천.
[개설]
낙동강 하구의 신석기 시대 토기 문화는 한반도 전체의 지역 구분 내에서 남해안 지역에 해당되며, 시간적으로 5기의 구분이 가능하다. 절대 연대로는 기원전 6000년~1300년에 해당된다. 조기는 덧무늬 토기로 대표되며 납작바닥을 기본으로 하며, 동해안과 남해안을 중심으로 분포한다. 전기는 부산광역시 영도구의 영선동 조개더미 출토품을 표지로 하는 영선동식 토기로 대표되며 둥근바닥을 기본으로 한다. 아가리를 중심으로 찌르거나[刺突] 눌러 끌어[押引] 무늬를 베푸는[施紋] 것이 특징이다. 유적은 주로 남해안에 분포한다.
중기는 중서부 지역의 영향을 받은 수가리 I식 토기로 대표되며, 뾰족바닥이나 둥근바닥을 기본으로 한다. 토기 전체에 굵은금무늬[太線文]을 시문하는 것이 특징이다. 후기는 수가리 II식 토기로 대표되는데, 중기 토기에서 퇴화하여 아가리[口緣部]에 무늬가 집중되고 무늬도 흐트러진다. 말기는 율리식 토기[또는 수가리 III식 토기]로 대표되며 아가리를 겹으로 싼 이중 구연 토기가 특징적이다. 이 단계가 되면 무늬는 거의 사라진다. 이와 같이 낙동강 하구 일대는 다른 지역과 구분되는 독특한 토기 문화를 발전시켰으며, 각 단계별로 뚜렷한 특징을 지닌 토기 문화가 전개되었다.
[신석기 시대 토기 문화의 지역 구분]
한반도 신석기 시대의 토기 문화는 1만 년 가까운 시간 동안 지역별로 발전하면서 나름으로 특징과 전통을 갖추어 간다. 따라서 토기의 형태와 무늬를 기초로 하여 한반도의 신석기 시대 토기 문화는 몇 개의 지역군으로 나뉜다. 압록강 유역을 중심으로 한 서북 지역, 두만강 유역을 중심으로 한 동북 지역, 청천강 이남에서 대동강 및 한강 유역을 중심으로 한 중서부 지역, 강원도 영동을 중심으로 한 중동부 지역, 충청도·전라도·경상도 내륙을 중심으로 한 남부 내륙 지역, 전라도·경상도 해안을 중심으로 한 남해안 지역[제주도 포함]이 그것이다.
청천강과 원산만을 경계로 그 이북에 해당하는 서북과 동북 지역은 중국 동북 지역과 마찬가지로 시종일관 납작바닥의 전통을 유지하지만, 그 이남 지역은 이른 시기를 제외하면 모두 밑이 둥근 토기가 발전하여 신석기 말기까지 유지된다. 낙동강 하구 일대는 이러한 지역 구분 중에서 남해안 지역에 해당되며, 그중에서도 동남 해안 지역으로 분류할 수 있다.
[낙동강 하구 토기 문화의 시기 구분]
낙동강 하구 일대를 포함하는 남해안 지역은 신석기 시대 전 기간을 통하여 시기별로 특징적인 토기 문화가 발달하는데, 크게 조기-전기-중기-후기-말기 등 5기로 구분할 수 있다. 한반도 전체로 볼 때는 조기 이전 단계인 초창기 단계가 설정될 수 있지만, 남해안 지역에서는 아직까지 이 단계의 유적이나 유물이 확인되지 않았으므로 현재로는 5기로 시기 구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조기는 기원전 6000~4500년 전후한 시기이며, 현재로는 남해안 지역에서 가장 이른 단계에 해당된다. 덧무늬 토기[隆起文土器]를 특징으로 한다. 전기는 기원전 4500~3500년 전후한 시기이며, 덧무늬 토기의 뒤를 이어 영선동식 토기로 불리는 자돌, 눌러찍기 무늬 토기 문화[압인문 토기]가 발달한다. 중기는 기원전 3500~2700년 전후한 시기이며, 수가리 I식 토기로 불리는 태선 침선문 토기(太線沈線文土器)가 발달한다.
후기는 기원전 2700~2000년 전후이며, 무늬가 퇴화되고 무늬 시문 부위가 축소된 퇴화 침선문 토기가 유행한다. 말기는 기원전 2000~1300년 전후한 시기로 아가리를 겹으로 싼 이중 구연 토기가 발달하며, 무늬가 거의 소멸하는 양상을 보인다. 이상과 같이 낙동강 하구 일대의 신석기 시대 토기 문화는 각 단계별로 특징적인 토기 문화가 발달한다.
[낙동강 하구 토기 문화의 시기별 특징]
1. 조기
낙동강 하구 신석기 시대 조기는 덧무늬 토기로 대표된다. 덧무늬 토기란 토기의 표면에 얇은 점토 띠를 붙여 여러 형태의 무늬를 만든 것을 말한다. 한반도 중동부 해안에서 남해안에 걸쳐 분포하며, 그 중심은 낙동강 하구가 위치한 동남 해안이다. 무늬는 매우 다양하지만 기본적으로 가로줄을 여러 줄 평행하게 돌린 평행 덧무늬와 다양한 기하학적 모양을 장식한 기하학적 덧무늬로 나눌 수 있다. 기하학적 덧무늬는 삼각형, 사선, 곡선 등을 기본 모티프로 하여 다양하게 변용된다.
무늬는 주로 아가리에서 약간 내려와 가로줄을 돌리고 바닥에서 약간 올라온 곳에도 마찬가지로 가로줄을 돌린 후 그 내부에 다양한 무늬를 시문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번개무늬[雷文]와 같이 가로줄 이외에는 침선으로 그어 무늬를 표현하거나 콩 모양의 점토 덩어리를 아가리에 한 줄 연속하여 붙인 두립문(豆粒文) 토기와 같은 경우도 있다. 이러한 기본 문양 시문 규칙은 덧무늬 토기의 늦은 단계가 되면 와해되어 아가리부터 별다른 구획 없이 무늬가 시문되기도 한다. 일부 덧무늬 토기는 주칠로 장식되기도 한다. 덧무늬 토기의 그릇 형태는 기본적으로는 납작바닥을 한 바리[鉢]나 깊은 바리[深鉢] 형태가 주류를 이루지만, 소형 토기 등 일부는 둥근바닥이 나타나기도 한다.
2. 전기
전기는 자돌과 압인 시문 기법으로 베푼 영선동식 토기가 유행한다. 자돌 기법이란 토기 표면을 시문 도구로 찌르듯이 무늬를 시문하는 것을 말하며, 압인 기법이란 시문 도구를 표면에 누른 후 짧게 끌면서 무늬를 시문하는 방법을 말한다. 영선동식 토기는 주로 남해안 지역에 분포하며 그 중심은 낙동강 하구 일대이다. 덧무늬 토기와 달리 둥근바닥을 기본으로 하며 바리 형태 이외에 긴 목이 달린 항아리 형태도 유행한다. 무늬는 주로 아가리에만 집중되고 그 아래는 무늬가 시문되지 않는다.
무늬 형태는 횡주 어골 무늬[橫走魚骨文]을 기본으로 문살무늬[格子文], 톱니무늬[鋸齒文], 점줄 무늬[點列文] 등이 있으며 이 무늬들이 단독 혹은 조합되어 시문된다. 토기는 소형이 많은 편이며, 일부 토기는 아가리에 주전자와 같이 물을 따르는 주둥이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 단계까지도 일부 덧무늬가 남아 있다. 전기 토기의 큰 특징 중 하나는 아가리의 끝단[口脣部]에 도구로 촘촘히 눌러 놓은 것[口脣刻目]이 유행한다는 점이다. 영선동식 토기 후반에 중서부 지역 계통의 짧은 사선 무늬를 시문한 토기가 낙동강 하구 일대에 소량씩 나타나 이 지역 토기 문화의 변화를 엿볼 수 있다.
3. 중기
중기는 전기 토기와 크게 다른 수가리 I식 토기가 유행한다. 무늬를 토기 전체에 가득 시문하는 새로운 전통의 토기가 등장하며, 아가리와 몸체에 서로 다른 무늬를 시문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한 무늬에 두터운 침선이 사용되어 이 단계의 토기는 태선문 토기로 통칭되기도 한다. 그릇 형태는 밑이 둥글거나 뾰족한 깊은 바리가 기본이며, 아가리 쪽으로 갈수록 기벽이 두터워지는 것 역시 이 단계의 특징이다. 수가리 I식 토기는 기본적으로 전기 후반에 조금씩 등장하였던 중서부 계통의 빗금무늬[短斜線文] 토기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아가리에 삼각형이나 마름모꼴 등의 집선계 무늬가 많이 시문되고 몸체에 횡주 어골문 이외의 무늬가 보이지 않는 점 등 중서부 지역과 다른 지역적 특징도 강하게 나타난다. 이 시기에는 대형 토기의 비율이 증가하고, 토기의 양 또한 급증하여 유적 규모면에서 대규모화하는 특징이 있다. 현재로는 낙동강 하구 일대 신석기 문화가 전성을 구가하던 시기로 생각된다.
4. 후기
후기는 중기 토기 문화가 변화를 거치기는 하지만, 단절적인 변화는 아니고 기본적으로 중기와 연속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수가리 II식 토기로 대표되는데, 유적의 분포나 토기의 형태 등은 중기와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무늬 측면에서는 변화가 관찰되는데, 중기 토기에서 유행한 몸체의 횡주 어골문이 사라지고 아가리에만 단독으로 무늬를 시문하는 것이 기본을 이룬다. 무늬는 삼각 집선문(集線文)이나 사격자문(斜格子文) 등이 중심을 이룬다. 중기에 비해 무늬의 정연성도 떨어지고 선의 굵기도 가늘어져 퇴화된 느낌을 준다.
5. 말기
말기는 아가리에 점토 띠를 한 겹 더 감싸 두텁게 만든 이중 구연 토기가 발전하는데, 이 단계의 토기는 율리식 토기로 불린다. 토기 형태는 이전과 기본적으로 다를 것이 없으나, 무늬에서는 큰 변화가 보인다. 말기에는 무늬가 거의 사라지고 아가리 근처에만 아주 간략한 짧은 사선 무늬나 점줄 무늬 등을 한두 줄 시문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전체적으로는 아예 무늬가 전혀 없는 토기가 주류를 차지한다. 이제 무늬는 토기에서 중요성을 상실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무문화의 경향은 신석기 시대 전 기간을 통해 볼 때 서서히 진행된 것이며 말기 단계에 현저해진다. 남해안뿐만 아니라 거의 대부분 지역에서 같은 현상이 관찰된다. 또한 이전까지의 토기가 주로 갈색이나 붉은색 계통에 점토성 태토가 많은 것에 비해, 말기 토기는 암회색조의 어두운 색조를 가지며 사질성 태토가 증가하는 등 많은 차이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