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9313 |
---|---|
한자 | 姓氏 |
영어의미역 | Family name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
집필자 | 박영진 |
[정의]
부산 지역에 살고 있는 동일한 인물을 시조로 하는 성씨.
[성씨의 기원]
성씨는 성(姓)과 씨(氏)를 합친 말이다. 성은 지금의 성(姓)과 같고, 씨는 지금의 본관(本貫)을 뜻한다. 우리나라 성씨의 기원은 최초의 기록서인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실린 내용을 근거로 할 때, 삼국 시대부터 써온 것으로 파악된다. 그렇지만 근래에 발견되고 있는 삼국 시대의 금석문을 살펴보면, 성(姓)의 사용은 간헐적으로 보이고 지명(地名)을 이용한 씨(氏)의 사용이 대체적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금석문에는 씨(氏)의 사용이 주를 이루고 기록서에는 성(姓)의 사용이 주로 나타나는 이유는 금석문은 삼국 시대에 만든 기록으로 당시의 시대상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지만, 기록서는 시간적 차이를 두고 고려 중기에 발간되어 내용적 서술이 중국의 영향을 받아 덧붙이고 첨가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성씨의 사용과 기록은 계급과 신분에 따른 제한이 있었기 때문에 금석문과 기록서 사이에 간극이 나타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성씨의 기원은 실제 사용과 남은 기록에 관해서는 시차적인 차이와 계급과 신분의 차이를 감안하여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현재 일반적으로 성씨는 삼국 시대에는 왕과 일부 귀족 계층만이 사용하는 전유물이었고, 고려 후기에는 일반 백성들까지 성(姓)을 사용하는 영역이 확대되었으며, 조선 시대에 들어와 임진왜란 이후에는 경제력을 갖춘 외거 노비를 중심으로 성을 갖게 되었고, 1894년 갑오개혁 이후에는 모든 사람들이 성와 씨를 갖게 되었다.
[성씨의 종류]
우리나라 최초의 성씨는 신라의 국성(國姓)인 박(朴)·석(昔)·김(金) 3성과 6부 촌장의 이(李)·최(崔)·손(孫)·정(鄭)·배(裵)·설(薛) 등이 신라 초기부터 보이고, 고구려는 동명왕의 고씨(高氏)를 비롯하여 왕비들의 성씨인 예(禮)·송(宋)·우(羽)·연(緣)·주(周)와 신하들에게 사성(賜姓)된 기록이 보이며, 백제는 온조왕의 부여씨(夫餘氏)와 중국 사서에 나오는 사(沙)·연(燕)·협(劦)·해(解)·진(眞)·국(鞠)·목(木)·백(苩)[또는 묘(苗)] 등 대성 8족이 있었다. 이렇듯 삼국 시대는 왕족 외에는 귀족에게 내리는 사성에 의한 성씨의 사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고려 시대는 왕의 기록물인 왕대 종록(王代宗錄)과 문신들의 묘지(墓誌)에 나열된 성씨가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성씨의 종류에 관한 본격적인 기록은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265종이 나타나며, 그 후 『도곡총설(陶谷叢說)』에 298종, 『앙엽기(鴦葉記)』에 486종,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 496종이 기록되어 있다. 근대의 기록으로는 1930년의 조선 국세 조사(朝鮮國勢調査) 때에 250종의 성씨가 조사되었고, 1960년의 인구 주택 국세 조사에서 258종이 조사되고, 1985년의 인구 및 주택 센서스에서 성이 275종, 본관이 3,349종이 조사되었다.
부산의 성씨에 관한 기록으로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동래현」조에 11종의 성씨가 기록되어 있고, 1740년(영조 16)에 발행된 『동래부지(東萊府誌)』에도 11종의 성씨, 1899년(고종 36)의 『동래부읍지(東萊府邑誌)』에도 11종의 성씨가 변화 없이 기록되어 있어 이 부분에 대한 내용은 참고가 되지 못한다. 한편, 1904년의 『경상남도동래군가호안(慶尙南道東萊郡家戶案)』에는 84종의 성씨와 4,870호의 가호 수가 기록되어 있으며, 1962년의 『경상남도지(慶尙南道誌)』에 162종의 성씨가 기록되어 있고, 1985년의 인구 및 주택 센서스에서는 223종의 성씨가 조사되었다.
[각종 기록에 나타난 성씨]
『신증동국여지승람』의 「동래현」 성씨조에는 동래본현에 정(鄭), 송(宋), 옥(玉), 정(丁), 조(曹), 왕(王), 박(朴), 이(李), 김(金)이 있고, 속현인 동평현(東平縣)에는 안(安), 이(李) 등 11종의 성씨가 기록되어 있으며, 『동래부지』[1740] 성씨조에도 위와 같은 기록이 있다. 또한 1899년의 『동래부읍지』에도 같은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이는 당시 동래부에 살고 있는 성씨를 모두 기록한 것이 아니며, 몇백 년의 시간이 경과하였는데도 성씨를 증보하지 않고 변화 없이 기록되어 있어 이 부분에 대한 내용은 실제와는 부합되지 않는 것으로 세거 성씨(世居姓氏)에 대한 참고가 되지 못한다.
1904년에 탁지부 사세국에서 편찬한 『경상남도 동래군 가호안』에 따르면 84개의 성씨와 4,870호의 가호 수가 기록되어 있어 다양한 성씨의 출연과 가호 수를 알 수 있지만, 본관별로 구분하지 않아 거주하는 사람들의 분포를 자세히 알 수 없는 단점이 있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웹사이트 플러그인 제거 작업으로 인하여 플래시 플러그인 기반의 도표, 도면 등의
멀티미디어 콘텐츠 서비스를 잠정 중단합니다.
표준형식으로 변환 및 서비스가 가능한 멀티미디어 데이터는 순차적으로 변환 및 제공 예정입니다.
1934년 조선 총독부에서 발행한 『朝鮮の姓』의 동래군조에는 당시 동래 지역에 존재하던 45개 지역의 집성촌이 기록되어 있다. 당시 집성촌은 1개의 동리에 15세대수 이상이 거주하는 지역을 전수 조사하여 기록한 것으로, 당시 동래 지역의 인구 분포 및 세거 성씨를 잘 알 수 있다.
웹사이트 플러그인 제거 작업으로 인하여 플래시 플러그인 기반의 도표, 도면 등의
멀티미디어 콘텐츠 서비스를 잠정 중단합니다.
표준형식으로 변환 및 서비스가 가능한 멀티미디어 데이터는 순차적으로 변환 및 제공 예정입니다.
1937년 문기주(文錡周)가 편찬한 『동래군지』의 성씨조에는 수관 성씨(受貫姓氏), 세거 성씨(世居姓氏), 우거 성씨(寓居姓氏) 등 3항목으로 구분하여 본관별로 거주하는 성씨를 서술하고 있다. 기록 방식은 입향조와 자손을 함께 서술하였으며, 본관은 같으나 입향조가 다르면 입향조별로 모두 기록하여 이전의 읍지와는 서술 방식이 아주 다르게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가구 수나 인구수가 기록되지 않아 아쉽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웹사이트 플러그인 제거 작업으로 인하여 플래시 플러그인 기반의 도표, 도면 등의
멀티미디어 콘텐츠 서비스를 잠정 중단합니다.
표준형식으로 변환 및 서비스가 가능한 멀티미디어 데이터는 순차적으로 변환 및 제공 예정입니다.
위의 기록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세거 성씨에 동래 정씨 44명, 남평 문씨 65명, 경주 김씨 50명, 강릉 김씨 10명, 여산 송씨 18명, 은진 송씨 10명, 영월 신씨 15명, 광주 김씨 9명, 경주 이씨 33명, 청도 김씨 10명, 경주 박씨 14명, 죽산 박씨 31명, 남원 양씨 17명, 밀양 손씨 7명, 해주 오씨 9명, 차성 이씨 5명, 인천 이씨 7명, 양산 이씨 14명, 김해 김씨 41명, 달성 서씨 17명, 연일 정씨 3명, 밀성 박씨 19명, 김녕 김씨 22명, 개성 왕씨 10명, 영양 천씨 4명, 나주 정씨 9명, 금천 김씨 10명, 현풍 곽씨 5명, 순흥 안씨 6명, 창원 구씨 2명, 창원 황씨 12명, 인동 장씨 17명, 평택 임씨 7명, 진주 강씨 2명, 청주 한씨 5명, 원주 변씨 3명, 전주 이씨 8명, 곡부 공씨 2명이 입록되어 있다.
우거 성씨에 월성 손씨 2명, 평해 김씨 6명, 경주 최씨 16명, 영천 최씨 2명, 삭녕 최씨 2명, 광주 노씨 7명, 김해 김씨 35명, 밀양 박씨 30명, 연일 정씨 3명, 부안 김씨 3명, 해주 오씨 3명, 창원 황씨 14명, 파평 윤씨 6명, 평양 조씨 6명, 풍양 조씨 3명, 함안 조씨 9명, 광산 김씨 3명, 안산 이씨 3명, 남원 양씨 5명, 월성 이씨 3명, 분성 배씨 6명, 금성 나씨 2명, 경주 김씨 3명, 의흥 예씨(義興芮氏) 1명이 입록되어 있다.
1945년 이후 부산 지역은 전쟁의 여파와 산업화·근대화로 인구 유입이 급증하였고, 이로 인해 성씨의 종류가 더욱 다양해졌다. 그러나 부산 지역에 존재하던 집성촌은 급격히 감소하여 현재는 동성동본을 근거하는 집성촌은 대부분 사라지고 몇몇 문중만이 각 종친회를 중심으로 그 명맥을 잇고 있다.
[2000년도의 부산의 성씨]
2000년 통계청 자료의 15대 성씨 가운데 포함된 것과 『동래군지』[1937], 『동래향교지』[2010] 등 기록에 남아 있는 성씨를 중심으로 2000년도 부산의 성씨를 정리해 본다.
웹사이트 플러그인 제거 작업으로 인하여 플래시 플러그인 기반의 도표, 도면 등의
멀티미디어 콘텐츠 서비스를 잠정 중단합니다.
표준형식으로 변환 및 서비스가 가능한 멀티미디어 데이터는 순차적으로 변환 및 제공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