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93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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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南平文氏 |
영어의미역 | Nampyeong Munsi|Nampyeong Mun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부산광역시 |
집필자 | 주영택 |
[정의]
문다성을 시조로 하고, 문평을 입향조로 하는 부산 지역의 세거 성씨.
[연원]
남평 문씨의 시조는 고려조의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인 문다성(文多省)이다. 문다성의 탄생과 관련된 이야기가 『남평 문씨 족보』에 전해지는데, “아득한 옛날 전라도 남평현 장자못[長者池]가에 솟은 천길 높이의 바위에 오색영롱한 구름이 일더니 갓난아이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신기하게 여긴 군주가 올라가 보니 붉은 글씨로 ‘문(文)’자가 새겨진 돌 상자 속에 살갗이 백설 같은 사내아이가 들어 있었다. 군주는 하늘이 내린 아이라 여겨 거두어 길렀다. 아이는 자랄수록 영특해 사물의 이치를 스스로 깨닫고[省] 무예가 뛰어나서 이름을 ‘문’이란 성을 내리고 ‘다성’이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문다성은 남평백(南平伯)에 봉해지고 무성(武成)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이후 후손들이 문다성을 시조로 삼고 관향을 남평으로 하였다. 남평 문씨의 분파는 충혜공파(忠惠公派), 헌납공파(獻納公派), 순질공파, 의안공파(毅安公派), 시중공파(侍中公派), 성숙공파, 남제공파, 순평부원군파(順平府院君派), 판도판서공파(版圖判書公派) 등이다.
[입향 경위]
동래 입향조인 14세(世) 의안공(毅安公) 문평(文苹)은 1406년(태종 6)에 종질인 문가학(文可學)[13세]의 모반 사건으로 화(禍)를 당하였다. 그리하여 문평은 선대의 세거지인 경상남도 단성을 떠나 사천에 머물다가 첫째 아들 문어동(文圄仝)[15세]은 그곳에 머물게 하고, 둘째 아들 문우원(文遇元)을 데리고 1440년(세종 22)에 남해안을 따라 동래 초읍동에 자리를 잡았다.
[현황]
『경상남도 동래군 가호안(慶尙南道東萊郡家戶案)』[1904]에 문씨가 178호가 기록되어 있다. 『경상남도 동래군 가호안』에는 본관이 기재되어 있지 않지만 대개가 남평 문씨로 추측된다. 1937년 문기주(文錡周)가 편찬한 『동래군지』의 성씨조에는 남평 문씨가 세거(世居) 성씨로 기록되어 있다. 남평문씨부산종친회는 산하에 성안, 사상, 초읍, 철마, 금사, 거벌, 반여 문중 등 7개 문중을 두고 있다.
2000년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남평 문씨는 1만 1,154가구에 3만 6790명[남 1만 8899명, 여 1만 7891명]이 부산 지역에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3년 현재 남평 문씨는 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락동, 금정구 금사동·오륜동, 부산진구 초읍동, 북구 만덕동, 사상구 주례동, 연제구 거제동, 해운대구 반여동, 기장군 정관읍 용수리, 철마면 웅천리 등지에서 세거하고 있다.
[관련 유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