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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7538
한자 礪山宋氏
영어의미역 Yeosan Songsi|Yeosan Song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부산광역시
집필자 송진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씨시조 송유익(宋惟翊)
입향시조 송극명(宋克明)
본관 여산 - 전라북도 익산시 여산면 호산리 산4[천호 산기슭]
입향지 회천 마을 - 부산광역시 금정구 회동동 회천 마을
세거|집성지 상리 마을 -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반여 1동
세거|집성지 삼어 마을 -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반여 4동
세거|집성지 연구리 -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연구리
세거|집성지 회동동, 구서동, 부곡동 - 부산광역시 금정구
세거|집성지 좌동 -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좌동
묘소|세장지 극명의 묘 - 부산광역시 금정구 회동동 415

[정의]

송유익을 시조로 하고, 송극명을 입향조로 하는 부산 지역의 세거 성씨.

[연원]

여산 송씨의 시조 송유익(宋惟翊)은 수익(收益) 혹은 유익(有翼)이라고도 했다. 고려조의 진사로 나라에 공훈이 많아 여산군에 봉해지고 은청광록대부 추밀원부사(銀靑光祿大夫 樞密院副使)에 추증되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시조의 4세손 송송례(宋松禮)[?∼1289]가 고려 원종 때에 권신 임연(林衍) 일파를 제거하고 왕실을 바로 세우는데 큰 공을 세웠다. 그리하여 추성익대보리 동덕좌명공신(推誠翼戴輔理 同德佐命功臣)에 책록되고 벽상삼한삼중대광 광정대부 문하시중판전이사사 상장군(壁上三韓三重大匡 匡靖大夫 門下侍中判典理司事 上將軍)에 오르고 여량 부원군(礪良府院君)에 봉해졌으며 식읍 1천 호를 하사받았다. 여량(礪良)은 여산(礪山)의 옛 이름이다. 이런 연유로 후손들이 여산을 관향으로 삼게 되었고, 그를 중시조로 삼았다.

여산 송씨가 분파(分派)된 과정을 보면, 4세 여량 부원군 송송례의 아들인 5세 송염(宋琰)과 송분(宋玢)의 형제 대에서 나누어졌다. 송염의 아들 오 형제, 즉 6세인 송운(宋惲), 송방영(宋邦英), 송자상(宋子詳), 송자연(宋子淵), 송원미(宋元美)의 후손들이 각각 원윤공파(元尹公派), 밀직공파(密直公派), 소윤공파(少尹公派)로 승계되어 왔다.

현재 원윤공파[파조는 운] 내에는 동주공(東洲公)을 비롯하여 여량군(礪良君), 충강공(忠剛公), 이성공(利城公), 수암공(睡庵公), 둔학공(遯壑公), 충정공(忠靖公), 판서공(判書公), 덕성군파(德城君派) 등 9개 가계의 후손이 내려오고 있다. 송분의 아들 4형제는 송진(宋瑨), 송린(宋璘), 송유, 송서(宋瑞)의 후손들로, 지신공파(知申公派)[파조는 송린], 정가공파(正嘉公派)[파조는 송서]로 이어 왔다.

지신공파로 유명 인물을 보면, 조선 초 단종(端宗)의 비인 정순 왕후(定順王后) 송씨의 부친이 바로 지신공의 5세손 여량 부원군 송현수(宋玹壽)[?~1457]이다. 그는 계유정난으로 왕위를 찬탈한 세조에게 참화를 당하였다. 또한 임진왜란 때 동래부성을 지키다 순절한 천곡(泉谷) 송상현(宋象賢)[1551~1592]이 있다.

원윤공파의 유명 인물에는 충강공(忠剛公) 송간(宋侃)과 문경공(文敬公) 송익필(宋翼弼)[1534~1599] 등이 있다. 송간세종·문종·단종 3대에 걸쳐 벼슬하여 형조 참판에 이르렀고, 단종이 왕위를 빼앗겼다는 말을 듣고 영월로 달려가서 복명하고 고향인 여산으로 내려와 세상과 인연을 끊었다.

송익필선조 대의 대학자로 성리학과 예학에 조예가 있어 그의 문하에는 김장생(金長生)[1548~1631], 김집(金集)[1574~1656], 서성(徐渻)[1558~1631] 등 많은 학자를 배출하였다. 원윤공 송운의 손자인 동주공 송극명(宋克明)이 조선 시대 동래 지역, 곧 지금의 부산에 입향한 선조로서 부산 지역의 여산 송씨는 거의 다 동주공의 후손이다.

[입향 경위]

입향조인 송극명은 시조로부터 7세손으로 송장경(宋長卿)의 아들이다. 그의 호는 동주(東洲)이며 벼슬은 통정대부 절충장군도정(通政大夫 折衝將軍都正)에 이르렀다. 단종의 숙부 수양 대군이 불법으로 조카 단종으로부터 선위(禪位)할 때, 송극명은 홀연히 불원천리하고 이곳 동래에까지 와서 은거하게 되었다. 현재 부산광역시 일원에 거주하고 있는 이 집안은 원윤공파의 후손이면서도 이 지방에서는 흔히 동주공파(東洲公派) 내지 동주공 종중(東洲公宗中) 등으로도 불린다. 후손들이 부산의 여러 지역에 세거하게 되어 지금까지 550년 정도 되는 오랜 세월을 간직해 왔다.

송극명의 아들 8세 송윤희(宋允熹)에게는 아들 6형제가 있었는데 송승서(宋承緖), 송승효(宋承孝), 송승한(宋承翰), 송승보(宋承寶), 송승륜(宋承輪), 송승원(宋承源) 등이었다. 이들 후손들의 주요 세거지를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첫째 아들 송승서의 후손들은 현재 동래에 많이 거주하고 있는 편이며, 직계 손으로 송낙호(宋洛浩)[24세손]가 있다. 둘째 아들 송승효의 후손들은 지금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반여 1동 상리 마을금정구 구서동에 세거하고 있다.

셋째 아들 송승한의 후손들은 주로 해운대구 반여동, 동래구 안락동, 사상구 주례동, 남구 대연동 및 기타 동래구 일대에 세거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15세손 송규회(宋奎會)의 아들인 16세손 송광적(宋光迪)·송광제(宋光濟)·송광순(宋光洵) 등의 3형제가 유명하다. 송광적은 동래 온정 개건비(溫井改建碑)의 글씨를, 동생 송광제는 방대한 내주 축성비기(萊州築城碑記)의 글씨를 썼으며, 셋째인 송광순은 영조 대(英祖代)에 동래 부사 정언섭(鄭彦燮)이 동래 읍성을 수축할 때, 축성한 동기와 참여 명단 및 재정 비용 등 구체적인 축성 사적(築城事蹟)을 기록하였다.

한편 넷째 아들 송승보의 후손들은 금정구 부곡동에 많이 거주하고 있다. 다섯째 아들 송승륜의 후손들은 주로 해운대구 반여 1동기장군 철마면에 거주하고 있다. 여섯째 아들 송승원의 후손들은 현재 해운대구 좌동에 주로 세거하고 있다.

[현황]

과거 반여동 일대는 여산 송씨 집성촌이 많이 있었으나, 1970년대 산업화 이후로 크게 흩어져서 지금은 적은 편이다. 다만 반여 1동 상리 마을 일대[풍산금속 입구]에 현재 30호 정도 거주하고 있으며, 반여 4동 삼어(三魚) 마을에 다섯 가구 정도 남아있는 실정이다. 2000년도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여산 송씨는 부산에 3,215가구, 1만 620명[남 5,503명, 여 5,117명]이 거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관련 유적]

동래 지역에 오랫동안 세거해 온 동주공 송씨 문중은 조선 후기 동래 지역의 제반 운영 문제에 깊이 간여하였고, 지역에서의 주요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동주공 문중의 집성촌도 대체로 일반 지역적인 단위 마을과 마찬가지로 동제(洞祭)를 매년 지내왔으며, 입향조 동주공에 대한 묘사(墓祀)를 비롯하여 문중 전체의 시사(時祀)도 향사하고 있다. 아울러 원윤공파의 파조인 6세 송운을 배향하는 단제(壇祭)도 매년 동지일(冬至日)에 향사하고 있다.

동주공의 묘는 동래부 동면 동대(東台) 마을의 동북쪽 산기슭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현재 금정구 회동동에 있는 종중 재실인 세덕사(世德祠)의 뒷산 기슭에 있으며, 매년 음력 10월 첫 일요일에 묘사를 지내고 있다.

세덕사는 입향조 동주공을 비롯하여 임진왜란 공신(壬辰倭亂功臣) 등 모두 8위의 선현 위패를 모시고 매년 향사하는 곳이다. 임진왜란 공신 춘향제는 매년 음력 4월 14일에 지내고 있으며, 향사 진행 임원들은 송씨 문중 외에도 남평 문씨, 창원 구씨, 월성 박씨, 광주 김씨, 강릉 김씨 등 동래 지역 유림들이 함께 참석하고 있다. 세덕사에서 배향하는 입향조를 비롯한 8위는 송극명·송남생(宋南生)·송백(宋伯)·송봉수(宋鳳壽)·송창문(宋昌文)·송의남(宋義男)·송계남(宋繼男)·송광익(宋光益) 등이다.

그 외 몇 개의 재실을 찾아볼 수 있다. 송승한의 4세손 송계국(宋啓國)의 후손들은 해운대구 반여동 삼어 마을에 회천사(回川祠)를 1982년에 건립하고 162위의 신위를 함께 모시고 제향은 음력 10월 둘째 일요일에 올리고 있으며, 송계방(宋啓邦)의 후손들은 사상구 주례동주례사(周禮祠)를 1968년 10월에 건립하여 31위의 신위를 봉안하고 제향을 올리다가 1989년에 개축하였다.

송승륜의 차증손 송지서(宋之瑞)의 후손은 주로 반여 1동에 거주하며 1990년 영모재(永慕齋)를 건립하여 152위의 위폐를 봉안하고, 음력 10월 셋째 일요일에 향사를 하고 있다. 또 송승륜의 종손 송지상(宋之祥)의 후손은 기장군 철마면 연구리에 거주하며 세곡재(細谷齋)를 건립하여 300위의 위폐를 봉안하고, 매년 향사를 봉행하고 있다. 이러한 재실 외에 여산 송씨들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문화 유적이 있다. 즉 동래 온정 개건비, 내주 축성비기, 축성 사적 등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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