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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출신으로 낙동중학교를 설립한 교육자. 고덕봉(高德鳳)은 경상남도 김해군 대저면 대지리[현 부산광역시 강서구 대저1동]에서 태어났다. 큰아들 고영주(高永宙)는 임학 박사로 독일 대학에서 30여 년간 재직하다가 귀국하여 국민대학교 임업대학[현 국민대학교 삼림과학대학] 학장으로 재직하였으며, 2009년 7월 7일 독일 본에서 81세로 사망하였다.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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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출신의 교육자. 권상덕(勸相德)[1904~1975]은 1904년 1월 25일에 부산광역시 북구 화명동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한학(漢學)을 공부하였고 사립화명학교 수료 후 밀양농업학교에 다녔다. 15세에 결혼한 후에도 공부에 뜻을 두어 1924년 3월 동래고등보통학교[현 동래고등학교]를 1회로 졸업하였고 진주사범학교 강습과 1학년을 수료하여 교사 자격을 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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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의 대표적인 사학 재단인 남성학원·국성학원·훈성학원·한성학원 등을 운영한 교육 사업가. 김근제(金槿濟)는 1921년 7월 13일 경성대학교를 설립한 부산의 대표적인 사학 운영자이자 기독교 목사인 김길창의 큰아들로 태어났다. 김근제가 태어난 곳은 부산광역시 서구 부용동 2가 40번지라고 알려져 있으나, 호적에는 경상남도 마산시 신정동 7번지로 기재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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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현대 부산 출신의 교육자이자 사회사업가. 김순영(金順英)은 1899년 4월 28일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 513번지에서 아버지 김성우(金聖佑)와 어머니 최남순(崔南順)의 2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형제는 큰오빠 김두운(金斗運), 큰언니 김무연, 둘째 언니 김새연, 둘째 오빠 김두휘(金斗輝)이다. 아버지 김성우는 삼남(三南) 지역을 주름잡는 해운업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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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출신의 교육가. 김평국(金平國)은 1905년 경상남도 김해군 대저면 출두 번덕 마을[현 부산광역시 강서구 대저1동 485-1번지]에서 태어났다. 한문 사숙에서 12년간 공부를 했으며, 1921년 경성고등보통학교의 5년 과정을 2년 6개월 만에 속성으로 수료할 정도로 수재였다. 1922년 대저 지역 유일의 교육 기관인 대저공립보통학교가 설립되었으나,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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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출신의 교육자이자 사회 운동가. 문위열(文渭悅)은 1905년에 지금의 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락동 봉림 마을에서 태어났다. 호는 아산(我山)이다. 서울 중동중학교와 경성법정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 문위열은 일제 강점기인 1933년 3월 김해 낙동강 주변의 대저, 김해, 녹산, 가락의 4개 면민 대표자들이 가락면에 모여 낙동강 일천식 공사(洛東江一川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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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부산 출신의 관료이자 교육가. 본관은 밀양(密陽). 호는 동암(東庵). 1878년(고종 15) 김해 녹산의 남쪽 바닷가에 큰 바위 넷이 있어 생긴 이름인 사암(四岩) 마을[현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에서 1878년 태어났다. 박인식(朴仁植)은 일찍이 경의문대(經義問對)[주로 『논어』의 주요 대목에 대해 문답 형식으로 자신의 견해를 밝힌 글]로 성균관에 들어간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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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유학자이자 교육자. 본관은 밀성(密城). 자는 계서(桂瑞), 호는 추호(秋湖). 아버지는 박기택(朴琦澤)으로 1849년(철종 즉위년) 명륜동에 서당을 열었다. 박필채(朴苾彩)[1842~1925]는 1842년(헌종 8) 2월 12일 경상남도 밀양에서 태어났다. 1849년 아버지 박기택이 가족을 데리고 동래로 이사하여 명륜동에 서당을 열어 동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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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부산에서 활동한 교육 운동가. 성기득은 1962년 11월 14일 부산에서 태어났다. 1974년 2월 좌천초등학교, 1977년 2월 동아중학교, 1980년 2월 배정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부산대학교 공과대학을 지원하였다. 1980년 부산대학교 공과대학에 합격하였으나 합격증을 교부받지 못해 같은 해 인제대학교 의예과에 입학하였다. 하지만 인제대학교에 재학하던 중 병영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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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동래 지역에서 활동한 동래부 상급 무임 출신의 지역 유지. 동래부 무청 선생(武廳先生)[상급 향리]과 작대청(作隊廳) 별장(別將), 별군관청(別軍官廳) 병방, 장관청(將官廳) 천총(千摠)·중군(中軍) 상급 무임직을 역임하였다. ‘가선(嘉善) 송상종(宋商宗)’이라 칭한 것으로 보아 가선대부(嘉善大夫) 품계를 받은 듯하다. 동래 지역 최고 무임직인 중군을 역임한 것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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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동래부 무임 출신으로 동래부학교를 세운 교육자. 본관은 영산(靈山). 자는 자명(子明), 호는 우당(宇堂). 10대조 신진(辛震)이 임진왜란 때 동래로 피난 오면서 세거하였다. 할아버지는 신경찬(辛慶燦)이고, 아버지는 신영수(辛永壽)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신명록 모두 동래부의 상급 향리 명단인 『부청 선생안(府廳先生案)』에 수록되어 있다. 신명록(辛明錄)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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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범어사의 지원으로 일본 유학을 다녀온 교육자. 안장호(安章鎬)의 생몰 연대는 알 수 없다. 일제 강점기 범어사에서는 범어사 지방학림의 사교과(四敎科) 과정과 대교과(大敎科) 과정을 이수한 학생 중에 인재를 선발하여 공비생(公費生)으로 경성의 휘문의숙[휘문고등학교]과 중앙불교전문학교[약칭 중앙불전, 현 동국대학교] 등에 매년 2~5명씩 유학을 보내고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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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동아대학교 대학원장을 지낸 학자이자 교육자. 본관은 순흥(順興). 호는 한뫼, 호연(浩然). 1902년 음력 1월 23일 경상남도 의령군 부림면 입산리 지주 향반 가에서 아버지 안석제(安奭濟)와 어머니 서흥 김씨 김야동(金冶洞)의 5대 독자로 태어났다. 안호상(安浩相)이 태어난 입산 마을은 순흥 안씨 집성촌으로 백산(安熙濟) 안희제(安熙濟)가 태어난 곳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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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출신의 교육자이자 사회 운동가. 안효덕(安孝德)은 1894년 부산광역시 강서구 대저2동 2038번지에서 태어나 주로 대저 지역에서 사회 운동과 청소년 교육 사업에 매진하였다. 1932년 3월 낙동강 개수 공사로 인해 대저면에 자리한 시장이 이전될 때 시장 기성회 대표로 활동하였고, 이후 면소재지 이전 문제가 지역 현안으로 떠오르자 6개 리 주민을 대표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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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부산에서 미술가이자 교육 운동가로 활동한 미술 교사. 1. 교사로 개인전 개최 양호규(梁鎬奎)의 본관은 남원(南原)이며, 양호떡이란 별칭으로도 불렸다. 1957년 11월 15일 경상남도 밀양시 가곡동에서 태어났다. 1970년 밀주초등학교, 1973년 밀양중학교, 1976년 세종고등학교, 1980년 계명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였다. 1981년 부산으로 이주하여 대동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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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교육자. 오경인(吳庚仁)은 1912년 3월 4일 경상남도 김해시에서 태어났다. 아내 곽태수와의 사이에 2남 3녀의 자녀를 두었다. 오경인은 1928년 동래고등보통학교, 1933년 경성사범학교 연수과를 졸업하고 부민보통학교[현 부민초등학교]의 훈도를 지냈다. 그 후 국민 학교 교장, 경상남도 장학사, 부산시 학무 과장 등을 거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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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직할시 초대 교육감을 지낸 교육자. 오복근(吳福根)[1925~1995]은 경상남도 진주 출신으로, 동국대학교 대학원 정치과를 졸업하였다. 6·25 전쟁 당시 진명여자고등학교 부산 피난 학교 교사를 지냈으며, 동국대학교 교수와 교학처장, 경상남도 문교사회국장을 지내고 재건국민운동중앙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다. 재건국민운동중앙회는 1961년 5·16 군사 정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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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기장 지역에서 활동한 여성 교육가. 오주숙(吳珠淑)은 1928년 기장 지역의 여성 교육 기관인 정화여자야학(貞和女子夜學) 교장을 지낸 교육자이다. 정화여자야학의 전신은 1919년 4월 1일 오신식(吳信植)이 설립한 기장여자야학이다. 기장 지역에 최초로 설립된 야학으로, 학생 수는 30명이고, 정규 학교와 마찬가지로 6년제로 운영되었다. 수업은 기장읍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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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출신의 경제인이자 교육자. 본관은 해주(海州). 호는 우창(隅蒼). 1884년(고종 21) 3월 16일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와여리 224번지에서, ‘철마 오부자’로 불리는 대지주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일제 강점기 일제의 경제적 침략에 맞서 민족 자본을 육성하기 위한 움직임이 근대적 금융 기관의 설립으로 나타나자, 오태환(吳泰煥)은 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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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특수 교육 전문가. 유병온(兪炳溫)[1915~1974]은 기계 유씨(杞溪兪氏)로, 유길준(兪吉濬)의 후손이다. 1936년 이화여자전문학교[현 이화여자대학교]를 졸업하였으며, 일찍이 장애인을 위한 특수 교육에 관심을 갖고 국립맹아학교 교사가 되었다. 6·25 전쟁 발발 후 서울에 있던 국립맹아학교가 피난지인 부산으로 옮겨 가자 유병온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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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교육가. 자는 도익(道益). 1880년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에서 태어났다. 아내 박소임은 동향 출신으로, 열성과 행실이 공부자성덕도오륜행실중간소(孔夫子聖德圖五倫行實重刊所)에서 정려 포창(旌閭褒彰)을 받은 열녀이다. 윤규석(尹奎石)은 일찍부터 인재 육영에 뜻을 가지고 일본에 강제 병합되기 직전인 1909년 3월 1일 최석붕(崔錫鵬) 등 녹산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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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육영 사업가. 본관은 파평(坡平). 호는 경운(耕雲). 1889년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2동 725번지[경상남도 동래군 좌이면 구포리 64통]에서 사천 현감으로 있던 아버지 윤홍석(尹洪錫)과 어머니 김희숙(金熙淑)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윤영은의 집안은 구포에서 상당한 재력가이자 명문가였다. 형은 윤필은(尹弼殷)·윤명은(尹命殷)·윤상은(尹相殷)이고, 대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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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학교를 설립하고 초대 총장을 지낸 부산 출신의 교육자. 본관은 파평(坡平). 할아버지는 동래 부사 윤홍석(尹弘錫)[1843~1902]이고, 아버지는 윤상은이다. 큰아버지는 동래 부사와 경상 우도 관찰사를 지낸 윤필은과 고성 군수 윤명은이다. 작은아버지는 1920년대 구포청년회를 조직하여 이끈 사회 운동가 윤영은이다. 형제는 윤연숙, 윤연학, 윤현표, 윤학자, 윤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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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부산 동명학교의 설립을 주도한 관료이자 교육자. 본관은 연안(延安) 또는 안산(安山). 자는 영서(英瑞), 호는 지전(芝田)·지실(芝室)·소동강(小東崗). 고조 할아버지는 이덕년(李德年)으로, 서울에서 동래로 이주하였다. 증조 할아버지는 장관청 초관 이인철(李仁喆)이고, 할아버지는 장관청 중군·부청 선생 등을 지낸 이학언(李學彦)이며, 아버지는 장관청 중군·수첩청 별장 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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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여성 교육자. 1917년 경상남도 창원에서 아버지 이순상(李舜相)과 어머니 신덕순(辛德順)의 2남 3녀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숙부는 시조 시인 노산(鷺山) 이은상(李殷相)이다. 이동희(李東姬)는 마산 의신여학교를 다녔다. 1935년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계기로 ‘만인의 어머니가 되기 위해 보육학을 전공’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리고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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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동래 지역에서 활동한 동래부 상급 향리 출신의 교육자이자 지역 유지. 이상흔(李相昕)은 본관이 영천(永川)이고, 자는 명초(明初)·호는 동화(東華)이다. 1847년(헌종 13) 11월 16일 동래에서 태어난 동래 토박이다. 진사 출신인 해산(海山) 강필문(姜必文)[1809~1876]이 세운 서당에서 공부를 하였다. 스승 강필문이 세상을 뜬 뒤에 스승의 제사를 지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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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부산에서 저수지에 빠진 제자를 구하려다 순직한 교사. 이춘길은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에서 태어나, 부산교육대학[현 부산교육대학교]을 졸업하고, 구포국민학교[현 구초초등학교]에 발령받아 근무하였다. 1964년 7월 10일 오후 3시경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 시랑골 연못[현 구포 3동]에서 물장난을 하던 제자 2명이 물에 빠졌다는 소식을 듣고 현장에 달려가 제자의 목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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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의사이자 사회 활동가. 본관은 안동(安東). 호는 성산(聖山), 기창(起昌). 1911년 8월 14일 평안북도 용천군 양하면 입암동 793번지에서 아버지 장운섭(張雲燮)과 어머니 최윤경(崔允卿)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장기려(張起呂)의 집안은 그가 태어나기 전부터 기독교를 신앙하였는데, 특히 할머니 이경심은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장기려에게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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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출신의 교육가. 정진효(鄭鎭孝)는 1918년 부산광역시 강서구 구랑동에서 태어났다. 녹산보통학교 제1회 졸업생으로, 김해농업고등학교[현 김해생명과학고등학교]를 거쳐 경남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한 후 교육계에 투신하였다. 밀양군 교육장, 마산시 교육장 등을 역임하였고, 경상남도 교육위원회 초등교육과장, 경남학생과학관장과 서생중학교와 창덕중학교 교장을 역임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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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현대 부산 출신의 교육 운동가이자 정치인. 조용구(曺龍九)는 1896년 경상남도 김해군 가락면 제도리 천자도[현 부산광역시 강서구 강동동]에서 출생하였다. 부인 이삼천(李三千)과의 사이에 2남 4녀의 자녀를 두었는데, 그 중 큰아들은 6·25 전쟁에 참전하여 전사하였다. 조용구는 일제 강점기 향리 청소년들의 문맹 퇴치를 위하여 현 삼광초등학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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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교육 운동가. 본관은 전주(全州). 1955년 9월 23일 경상남도 마산시 서성동 66번지에서 아버지 최영록과 어머니 김남순 사이의 2남 중 큰아들로 태어났다. 최영록은 마산에서 3·15 극장을 운영했던 사업가로서, 불교를 믿는 중산층 가정의 가장이었다. 최성근은 아내 성윤득과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었다. 최성근(崔盛根)은 1971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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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서 현대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교육자. 부인 최복금과의 사이에 아들 추인석, 추의석, 추기석, 추지석, 추준석, 추호석을 두었다. 사위로 조문제, 박석현이 있다. 추월령(秋月暎)은 1905년 10월 24일에 태어났다. 동래고등보통학교[현 동래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25년 경성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교육계에 투신하였다. 동래고등보통학교 교사를 거쳐 부산여자고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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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출신의 여성 교육자. 1922년 3월 3일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동에서 아버지 황기학(黃起鶴)과 어머니 김자금(金子今) 사이에서 2남 5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황순조(黃順朝)는 1939년 부산항공립고등여학교[현 경남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1941년 도쿄가정전문대학을 졸업하였다. 졸업 후 부산으로 돌아와 1942년 동래여자중학교를 시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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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일본인 교육자. 나카야마 준노스케[中山中之助]는 1887년 2월 일본 히로시마 현 고전군 가애촌[日本 廣島縣 高田郡 可愛村]에서 태어났다. 1909년 히로시마 현립사범학교[廣島縣立師範學校]를 졸업하고 1914년까지 히로시마 현 안좌군[廣島縣 安佐郡] 중원심상소학교(中原尋常高等小學校) 훈도로 근무하였다. 1914년 같은 군 지옥심상소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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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개성학교 창립자이자 초대 교장. 1. 가계와 학력 아라나미 헤이치로[荒浪平治郞]는 1858년 5월 1일 일본 시즈오카 현[靜岡縣] 지태 군 도전정에서 5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초기에는 가업인 농사에 종사하였다. 8세 때 마을 경복사의 주지 밑에서 습자, 수학 등 초보적인 교육을 받고 후일 한학을 습득하다가 19세 때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었다. 처음 상업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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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동래고등보통학교 교장을 지낸 일본인 교육자. 후지타니 쇼준[藤谷宗順][1892~?]은 1892년 일본 시가 현 히코네 시[滋賀縣 彦根市]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승려 등곡대신(藤谷大信)이다. 히로시마고등사범학교를 거쳐 교토제국대학 인도 철학과를 졸업하고, 구마모토[熊本] 진제이중학교[鎭西中學校]와 히코네중학교[彦根中學校]에서 교편을 잡았다. 1921년 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