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09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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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盛根 |
영어음역 | Choe Seonggeun |
분야 | 문화·교육/교육,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2동 삼성아파트 5동 206호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차성환 |
[정의]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교육 운동가.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 1955년 9월 23일 경상남도 마산시 서성동 66번지에서 아버지 최영록과 어머니 김남순 사이의 2남 중 큰아들로 태어났다. 최영록은 마산에서 3·15 극장을 운영했던 사업가로서, 불교를 믿는 중산층 가정의 가장이었다. 최성근은 아내 성윤득과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었다.
[활동 사항]
최성근(崔盛根)은 1971년 2월 마산동중학교를 졸업하고, 1975년 2월 마산 창신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1981년 2월 경남대학교 무역학과를 졸업한 후 부산의 계성여자상업고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면서, 1986년 2월 부산대학교 대학원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88년 4월 부산평교사협의회에 참가함으로써 교육 운동을 시작한 최성근은 19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약칭 전교조]이 출범하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하지만 노태우 정부의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탄압이 해직을 무기로 악랄하게 자행되면서, 결국 최성근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을 탈퇴하고 말았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일은 최성근이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활동에 더욱 열성적으로 나서는 계기가 되었다.
1989년 8월 최성근은 부산계성여자상업고등학교의 분회장을, 1990년 8월에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부산지부 사립지회 동래지구 지구장을 맡아 교육 운동에 매진하였다. 특히 부산계성여자상업고등학교에 재직하던 시기에 인사위 투쟁, 예·결산 요구 투쟁, 서명 투쟁 등에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그 때문에 1991년 학교 재단의 부당한 인사 조치로 대동고등학교로 전출되었으나 이에 굴하지 않고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부산지부 사립지회 서구지구 대의원으로서 학생안전공제회, 보충 수업비 문제, 서명 투쟁 등을 주도하였다.
최성근은 언제나 낙담하지 않고 “부딪혀 보자. 길은 정해졌다.”며 동료들을 격려하고 분위기를 긍정적으로 이끌어 갔다. 이렇게 쉴 새 없는 교육 민주화 운동의 과정에서 병마[간암]가 찾아와 1992년 12월 13일 숨을 거두었다.
[저술 및 작품]
추모 1주년인 1993년 12월에 추모 사업회에서 발간한 『겨울나무 그 가지 끝에 매달린 그리움』이 있다.
[묘소]
묘소는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인곡리 산167-3번지 창원 공원묘지에 있다.
[상훈과 추모]
1993년 6월 10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부산지부에서 특별 공로패를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