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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효덕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1311
한자 安孝德
영어음역 An Hyodeok
분야 문화·교육/교육,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강서구 대저2동 2038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하유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교육자|사회 운동가
성별
대표경력 대저면장
출생 시기/일시 1894년연표보기 -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31년 5월 - 대저면협의회 회원에 선출
활동 시기/일시 1932년 3월 - 대저면 시장기성회에서 활동
활동 시기/일시 1932년 4월 - 대저~구포 간 도선조합평의원으로 활동
활동 시기/일시 1933년 - 양도받은 전답을 동민에게 분배
활동 시기/일시 1939년 5월 - 대저면협의회원 역임
활동 시기/일시 1950년대 - 대저면장 역임
몰년 시기/일시 1959년연표보기 - 사망
출생지 부산광역시 강서구 대저동
활동지 부산광역시 강서구 대저동

[정의]

부산 출신의 교육자이자 사회 운동가.

[활동 사항]

안효덕(安孝德)은 1894년 부산광역시 강서구 대저2동 2038번지에서 태어나 주로 대저 지역에서 사회 운동과 청소년 교육 사업에 매진하였다. 1932년 3월 낙동강 개수 공사로 인해 대저면에 자리한 시장이 이전될 때 시장 기성회 대표로 활동하였고, 이후 면소재지 이전 문제가 지역 현안으로 떠오르자 6개 리 주민을 대표하여 원만한 해결을 위해 면장에게 진정서를 제출하였다. 1932년 4월에는 대저~구포 간 도선조합 평의원으로 활동하며 대저와 구포 면민을 위해 도선료 인하를 적극 주장하였다.

안효덕이 펼친 교육 사업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1933년 대홍수로 낙동강 제방이 터지고 대저면 전역이 물바다가 되어 막대한 수해를 입게 되었다. 이때 안효덕은 일본인 기다시마가 양도한 전답 2만 4793.39㎡[7,500평]을 면민에게 분배하여 주었다. 그는 전답을 분배해 주는 대신 2년 동안 경작한 미곡을 2세 교육에 필요한 학교 설립 기금으로 헌납토록 제의하였고, 대저 면민들은 이러한 안효덕의 뜻에 찬성하여 학교 설립 기금을 납부하였다.

안효덕은 이 기금에다 부족한 돈은 사재를 털어 메우고 학교 부지를 매입하였다. 이렇게 하여 도도대영학원(挑島大英學院)이라 명명한 4년제 간이 학교가 설립되었다. 안효덕은 학원장에 취임하여 간이 학교를 운영하였고, 마침내 1938년에는 6년제 학교로 승격시켰다. 한편, 안효덕은 1931년 5월 대저면[현 부산광역시 강서구 대저동] 협의회원 선거에 당선되었고, 1939년 5월에 실시된 대저면 협의회원 선거에도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45년 해방 후 도도대영학원 재학생 전원을 지금의 대저중앙초등학교에 편입시키고, 학원 건물은 마을 회관으로 사용하게 하였다. 또한 대저면 하부[현 대저2동]의 관내 유지를 설득하여 중학교 설립을 추진하고, 추진위원장직을 맡아 활동하였다. 이후 안효덕은 덕두교회를 사들이고 영도에 있던 명인재단을 흡수 병합하였다. 이렇게 하여 중학교의 명맥을 갖추어 운영한 것이 바로 오늘날 대저중학교의 전신이다. 안효덕은 1950년대 대저면장을 맡아 지역 사회 발전과 복지를 위해 헌신하다가 1959년에 사망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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