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5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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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平國 |
영어음역 | Gim Pyeongguk |
분야 | 문화·교육/교육,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강서구 공항로1309번길 96-15[대저1동 485-1]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은정 |
부산 출신의 교육가.
[활동 사항]
김평국(金平國)은 1905년 경상남도 김해군 대저면 출두 번덕 마을[현 부산광역시 강서구 대저1동 485-1번지]에서 태어났다. 한문 사숙에서 12년간 공부를 했으며, 1921년 경성고등보통학교의 5년 과정을 2년 6개월 만에 속성으로 수료할 정도로 수재였다. 1922년 대저 지역 유일의 교육 기관인 대저공립보통학교가 설립되었으나, 당시 입학 연령 제한이 있어 적령기를 넘긴 문맹자들이 많았음에도 입학 기회를 얻지 못하였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출두리 청년회 회장 김평국은 1924년 출두리에 사립 학술 강습소인 경문학원(耕文學院)을 설립하고 무보수로 교수하여 2세 교육에 헌신하였다. 더불어 유치원도 경영하였다. 1934년 큰물로 강습소가 경영난에 빠지자, 김평국을 비롯한 청년회원 일동이 거리를 돌아다니며 못과 양철 조각, 헝겊 등을 주워 고물상에 판 수익금으로 140여 명의 무산 아동들을 교수하고 있다는 소식이 『동아 일보』에 보도되기도 하였다.
1945년에 김평국은 대저소방단 경무부장으로 있다가 해방을 맞았다. 이후 김평국은 지역 유지들의 뜻을 모아 농토를 희사하여 낙동중학교를 설립하였고, 1947년 낙동중학교 재단법인 이사에 선임된 이래 다년간 이사직을 역임하였다. 또한 1954년에는 낙동중학교 사친회 이사장에, 1955년에는 부산 대양고등학교 사친회장에 취임하였다. 지역 사회에서도 명망이 높아, 각종 단체에서 중역을 역임했는데, 1957년에는 김해군 수리조합 평의원 선거에 당선되었으며, 1958년에는 김해배협동조합 창립총회에서 이사에 당선되기도 하였다. 1966년에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