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8186
한자 出斗蕃德-
영어의미역 Chuldu-Beondeok Village
이칭/별칭 수덕(水德),박촌(朴村),성촌(成村)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부산광역시 강서구 대저1동 7통|8통|9통 출두 번덕 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배병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자연 마을
개설 시기/일시 조선후기
변천 시기/일시 1906년 - 경상남도 김해군에 편입
변천 시기/일시 1914년 - 경상남도 김해군 대저면 출두리 번덕 마을이 됨
변천 시기/일시 1973년연표보기 - 대저면이 대저읍으로 승격
변천 시기/일시 1978년 - 경상남도 김해군 대저읍 출두리 번덕 마을에서 부산직할시 북구 대저 1동 출두 번덕 마을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83년 - 북구 일부 지역이 강서출장소로 독립
변천 시기/일시 1989년 1월 1일연표보기 - 강서출장소가 강서구로 승격
변천 시기/일시 1995년 1월 1일 - 부산직할시 강서구 대저 1동 출두 번덕 마을에서 부산광역시 강서구 대저 1동 출두 번덕 마을로 개편
자연 마을 출두 번덕 마을 - 부산광역시 강서구 대저 1동 7통·8통·9통 출두 번덕 마을

[정의]

부산광역시 강서구 대저동에 있는 자연 마을.

[명칭 유래]

출두 번덕(出斗蕃德) 마을출두리(出斗里)와 번덕의 합성 지명이다. 과거 출두리당리 마을·번덕 마을·신촌 마을의 옛 지명으로 본래 출두도로 불렀다. 번덕 마을이 자리한 대저 지역은 수해의 피해가 컸는데, 마을이 자리한 곳은 잔디가 잘 자라 피해가 적어 큰 덕을 입었다 하여 수덕(水德)이라 하였다가 번덕(蕃德)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나무가 없고 잡풀만 무성한 평평한 언덕을 ‘버덩[뻐든, 뻐등, 펀등]’이라 하는데, 번덕은 버덩에서 유래된 것으로 여겨진다. 신장로 마을과 나뉘는 길가에 있는 집들을 따로 간지깽이 마을로 부르기도 하였다.

[형성 및 변천]

출두 번덕 마을의 정확한 형성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밀양 박씨(密陽朴氏)와 창녕 성씨(昌寧成氏)가 모여 집성촌을 이루었다고 전한다. 마을이 속한 출두리에 대해서는 『호구총수(戶口總數)』[1789]에서 지명을 확인할 수 있어 오랜 거주 역사를 짐작할 수 있다. 조선 후기에는 양산군에 속하였고, 1906년 경상남도 김해군에 편입되었으며, 1914년 경상남도 김해군 대저면에 속한 출두리 번덕 마을이 되었다. 원래 마을은 강변에 자리하였으나 1930년대 낙동강 제방을 쌓으며 현재의 위치로 옮겨 왔다.

1973년 대저면이 대저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78년 부산직할시 북구에 편입되면서 대저 1동대저 2동으로 분동되며 대저 1동에 속한 출두 번덕 마을로 개칭되었다. 1983년 북구 지역 일부가 부산직할시 강서출장소로 독립되었고, 1989년 강서출장소가 강서구로 승격되었다. 1995년 부산직할시가 부산광역시로 승격되면서 부산광역시 강서구 대저 1동 출두 번덕 마을이 되어 현재에 이른다.

[자연 환경]

출두 번덕 마을낙동강 하구의 삼각주인 대저 평야에 위치하고 있어 갈대밭을 개간한 농지가 넓게 펼쳐져 있다. 마을 동쪽으로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구포와 접한다.

[현황]

출두 번덕 마을대저 1동 7통·8통·9통에 해당하며, 동쪽으로 공항로가 지나간다. 마을 내에는 부산강서고등학교부산혜원학교 등이 자리하고 있다. 주민의 주업은 농업으로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인 배 과수원이 자리하여 구포배의 명성을 높였으나, 최근에는 시설 원예 작물 재배로 전환하여 고소득을 올리고 있다. 마을 내에 1856년(철종 7) 대홍수 때 마을 사람들이 피신을 해 목숨을 건졌다는 팽나무가 있었는데, 현재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번덕 할매 당산과 느티나무가 서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