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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3787
한자 吳泰煥
영어음역 O Taehwan
이칭/별칭 우창(隅蒼)
분야 문화·교육/교육,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와여길 36-5[와여리 224]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종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경제인|교육자
성별
본관 해주(海州)
대표경력 동래은행 대표 이사
출생 시기/일시 1984년 3월 16일연표보기 -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2년 - 구포은행 설립에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18년 - 동래은행 창립 이사에 선임
활동 시기/일시 1921년 - 경남은행 이사에 선임
활동 시기/일시 1922년 - 동래은행 대표이사에 선임
활동 시기/일시 1940년 - 동래학원 설립
몰년 시기/일시 1948년 8월 15일연표보기 -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61년 - 문화 포장증 추서
추모 시기/일시 1988년 - 동래여자고등학교에 동상 건립
출생지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와여리 224
활동지 동래학원 -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구 교사]지도보기
묘소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와여리
관련 유적 동래여자고등학교 - 부산광역시 금정구 부곡3동 7-1지도보기

[정의]

부산 출신의 경제인이자 교육자.

[가계]

본관은 해주(海州). 호는 우창(隅蒼). 1884년(고종 21) 3월 16일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와여리 224번지에서, ‘철마 오부자’로 불리는 대지주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활동 사항]

일제 강점기 일제의 경제적 침략에 맞서 민족 자본을 육성하기 위한 움직임이 근대적 금융 기관의 설립으로 나타나자, 오태환(吳泰煥)은 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1912년 오태환은 부산 초량에서 설립된 구포은행[1915년 이후 경남은행]에 대주주로 참여하고, 1921~1924년까지 이사를 역임하였다. 1918년 오태환은 같은 기장 출신 박인표(朴仁杓)와 함께 동래 복천동에서 설립된 동래은행의 발기인으로 참여하고 창립 이사가 되었으며, 1922~1923년 동래은행 대표 이사를 역임하였다.

1919년경 서울에서 김성수(金性洙)가 경성방직주식회사를 창설하자 오태환은 뜻을 같이하여 다수의 주식을 인수하기도 하고, 김성수가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학교]를 세우고 도서관을 건립했을 때도 금품을 희사하였다. 1928년 오태환경남은행이 대구은행과 합병하여 경상합동은행으로 새로이 출발하자 초기에 대주주로 참여하였다.

한편, 오태환은 구포은행이나 동래은행에서 같은 시기에 활동한 이들이 대한자강회, 동래청년회, 부산예월회 등 각종 사회 운동 단체에 참여하여 활동한 것과 달리 교육 운동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였다. 1922년 11월 5일 기장군철마청년회가 주최한 면민 대회에 참여한 오태환은 교육 시설이 부족한 철마면의 현실을 타개하기 위하여 학교 설립 기금으로 8,000원이라는 거액을 기부하였다.

1937년 오태환은 의탁할 데 없는 여성들에게 기술과 지식을 가르쳐 자립을 돕는 실업 학교인 동래여자실수학교를 시찰하고 의료실을 건설하라고 1,000원을 기부하였다. 이는 신식 교육을 통해 지역의 인재를 양성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이러한 실천의 가장 큰 성과는 1940년 폐교 위기에 놓인 동래일신여학교를 인수하여 재단법인 구산학원(龜山學園)[현 동래학원]을 설립한 것이었다.

이 무렵 조선총독부는 황민화 정책(皇民化政策)에 순응하지 않는 학교는 폐교시키겠다고 위협하며 신사 참배를 강요했는데, 이에 맞서 동래일신여학교의 설립 재단인 호주 장로교 선교부가 신사 참배를 거부하며 폐교를 결정하였다. 이 소식은 여성 교육 기관이 드물었던 당시 동래 지역의 여론을 비등하게 하였고, 김병규(金秉圭) 등 동래 지식인들이 독지가의 기금 출연을 호소하게 되었다. 이에 오태환은 현금 25만 원을 기부하고, 5만 원을 희사한 김명오(金明五)를 비롯하여 자금을 갹출한 김봉상(金奉相), 한성홍(韓星洪), 최진현(崔珍鉉), 추종엽(秋鍾燁), 김기진(金琪振), 박길호(朴吉浩) 등과 함께 구산학원을 설립한 것이다. 이로써 동래일신여학교는 1940년 5월 30일 동래고등여학교[현 동래여자고등학교]로 새로이 개교하였고, 오태환은 초대 이사장으로 취임하였다. 이렇듯 부산 지역 교육 운동에 오랫동안 헌신했던 오태환은 1948년 8월 15일 사망하였다.

[묘소]

묘소는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와여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1961년 5·16 군사 정변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박정희(朴正熙)가 문화 포장증을 추서하였다. 1988년 동래학원동래여자고등학교 교정에 오태환의 기념 동상을 건립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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