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3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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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宋商宗 |
영어음역 | Song Sangjong |
분야 | 문화·교육/교육,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동철 |
[정의]
개항기 동래 지역에서 활동한 동래부 상급 무임 출신의 지역 유지.
[개설]
동래부 무청 선생(武廳先生)[상급 향리]과 작대청(作隊廳) 별장(別將), 별군관청(別軍官廳) 병방, 장관청(將官廳) 천총(千摠)·중군(中軍) 상급 무임직을 역임하였다. ‘가선(嘉善) 송상종(宋商宗)’이라 칭한 것으로 보아 가선대부(嘉善大夫) 품계를 받은 듯하다. 동래 지역 최고 무임직인 중군을 역임한 것으로 보아 동래 지역의 대표적인 이임(吏任), 무임(武任) 집안이라 생각한다.
[활동 사항]
송상종은 1828년(순조 28)에 동래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은진(恩津)이며, 자는 윤길(潤吉)이다. 1897년(고종 34) 6월 동래기영회에 입회하였고, 1909년 동래기영회 회장에 선임되었다. 삼락학교 설립과 관련하여 1907년 1월 개최된 ‘동래부 수면 노소 신사 총회’에 수석 회원 104명 중 한 명으로 참가하였다. 1907년 11월에 설립된 동명학교의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12월 장시 우전세(場市牛廛稅)와 수면 소재 삼림 제언을 학교에 부속하는 청원서를 전 박사 박필채(朴苾彩), 전 주사 이상흔(李相昕) 등 13명의 연명으로 올렸다.
그리고 1909년 3월 10일 소유한 논과 돈을 동명학교 기본 재산 및 적립금으로 출자한다는 증명서를 송상종, 박필채, 이상흔 등 8명이 연명으로 작성하였다. 1909년 3월 13일 동래기영회 회장으로 학부대신에게 사립 동래 동명학교 설립 청원서를 제출하였다. 1909년 8월 30일 학부대신이 발급한 사립 동래 동명학교 설립 인가서에 송상종을 설립 대표자로 간주하고 있다.
1907년 3월 부산에서 국채 보상 운동의 일환으로 ‘동래부국채보상일심회’가 설립되었을 때 송상종은 14명의 발기인 중 1명으로 참여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동래부국채보상일심회 취지서에 잘 나타나 있다. 1912년 5월 27일 설립자를 송상종에서 이상흔으로 바꾸는 ‘학교 설립자 대표 변경원’을 조선총독부에 제출하였다. 그 이유는 송상종이 사망했기 때문인데, 송상종은 1912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