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03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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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仁植 |
영어음역 | Bak Insik |
이칭/별칭 | 동암(東庵)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 사암 마을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서용태 |
[정의]
개항기 부산 출신의 관료이자 교육가.
[개설]
본관은 밀양(密陽). 호는 동암(東庵). 1878년(고종 15) 김해 녹산의 남쪽 바닷가에 큰 바위 넷이 있어 생긴 이름인 사암(四岩) 마을[현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에서 1878년 태어났다.
[활동 사항]
박인식(朴仁植)은 일찍이 경의문대(經義問對)[주로 『논어』의 주요 대목에 대해 문답 형식으로 자신의 견해를 밝힌 글]로 성균관에 들어간 후 1898년(고종 35) 왕명의 출납을 맡아 보던 관아인 비서원(祕書院)의 비서[정3품 주임관 4등]를 지냈으며, 1910년 대한제국이 일제에 강제로 병합되자 낙향하였다.
고향인 녹산에서 학식과 경륜이 뛰어난 인물로 명성이 높았던 박인식은 윤규석(尹奎石), 최석붕(崔錫鵬) 등 녹산 지역 선각자들이 1909년(순종 3) 3월 1일에 설립한 김해사립녹명학교[현 녹명초등학교]의 학문 교원으로 초빙되어 교육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후 김해사립녹명학교 교장을 역임하면서 지역 사회의 교육과 교화에 큰 영향을 미치며 개화기의 선각자이며 학자로서 이름을 떨쳤다. 1948년 별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