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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규석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1469
한자 尹奎石
영어음역 Yun Gyuseok
이칭/별칭 도익(道益)
분야 문화·교육/교육,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서용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교육가
성별
대표경력 김해사립녹명학교 설립자
출생 시기/일시 1880년연표보기 -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09년 - 김해사립녹명학교 설립, 교장에 취임
활동 시기/일시 1920년 - 녹산 강성의숙 설립, 초대 숙장에 취임
활동 시기/일시 1927년 - 녹산공립보통학교 후원인, 유지 위원에 임명
몰년 시기/일시 1933년연표보기 - 사망
출생지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
거주|이주지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
활동지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교육가.

[가계]

자는 도익(道益). 1880년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에서 태어났다. 아내 박소임은 동향 출신으로, 열성과 행실이 공부자성덕도오륜행실중간소(孔夫子聖德圖五倫行實重刊所)에서 정려 포창(旌閭褒彰)을 받은 열녀이다.

[활동 사항]

윤규석(尹奎石)은 일찍부터 인재 육영에 뜻을 가지고 일본에 강제 병합되기 직전인 1909년 3월 1일 최석붕(崔錫鵬) 등 녹산 지역 선각자들과 함께 김해사립녹명학교[현 녹명초등학교]를 설립하여 초대 교장이 되었다.

녹산 지역은 낙동강 최하류에 위치하여 교통이 불편해 어린아이들을 먼 곳으로 통학시키기가 어려웠다. 윤규석은 이러한 지역 사정을 고려하여 1920년에 일종의 야학인 강성의숙(降星義塾)을 설립하고 초대 숙장을 맡아 지역 아이들을 보통 학교 학력 정도로 가르쳤다. 윤규석은 강성의숙의 설립과 운영을 위해 교육회를 조직하였고, 또한 부녀들을 중심으로 반미저축계(飯米貯蓄契)를 조직하였다. 특히 반미저축계는 아침저녁으로 각 가정의 인구수에 따라 쌀 한 술씩을 모아서 저축하는 것으로, 이를 강성의숙의 운영 경비로 활용하여 인근 지역에서는 학교 운영의 모범 사례로 유명하였다.

윤규석은 이후 1927년에 개교한 녹산공립보통학교의 후원인과 유지 위원을 맡으면서 녹산공영회를 조직하여 지역 사회 번영에 힘썼다. 또한 반미저축계의 조직과 운영을 지도하면서 지역민들의 자력갱생을 유도하고 금주 운동과 생활 개선으로 정신 개화에 힘썼으며, 경로회를 운영하여 경로 효친 정신의 함양에도 힘을 쏟았다. 이처럼 윤규석은 지역 사회의 교육과 교화에 큰 영향을 미친 개화기의 선각자로서 녹산 지역에 남긴 업적이 많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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