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5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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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高德鳳 |
영어음역 | Go Deokbong |
분야 | 문화·교육/교육,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강서구 대저1동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박세경 |
[정의]
부산 출신으로 낙동중학교를 설립한 교육자.
[가계]
고덕봉(高德鳳)은 경상남도 김해군 대저면 대지리[현 부산광역시 강서구 대저1동]에서 태어났다. 큰아들 고영주(高永宙)는 임학 박사로 독일 대학에서 30여 년간 재직하다가 귀국하여 국민대학교 임업대학[현 국민대학교 삼림과학대학] 학장으로 재직하였으며, 2009년 7월 7일 독일 본에서 81세로 사망하였다.
[활동 사항]
고덕봉은 지역에서 존경받는 사회 지도층 인사였으며, 대지교회(大地敎會) 장로를 역임한 독실한 신앙인이기도 하였다. 집안은 가난하였지만, 외할아버지에게 한학을 배우고 신학교를 졸업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부산광역시 강서구 지역에서 일본인 화원좌길(花園左吉)이 경영하는 대규모 화원 농장에 서기로 취직하였다.
고덕봉은 근면하고 성실하게 근무하여 농장에서 신임을 얻어 후에 농장 관리인이 되었으며, 한편으로는 지역 주민의 어려움을 잘 보살펴 주어 지역민들에게도 존경과 신망을 얻었다. 해방 후 대저수리조합 제3대 조합장으로 취임하였고, 제2대 국회 의원으로 출마하기도 했으나 뜻을 이루지는 못하였다.
고덕봉은 교육 사업에도 헌신적이어서, 1946년 10월 대저고등공민학교의 설립을 인가받아 강서 지역 최초로 중학교를 설립하였다. 이후 대저고등공민학교는 1949년에 대저중학교, 1952년에 낙동중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으며, 고덕봉은 계속하여 이사장으로 재직하였다. 그의 사후인 1960년에 낙동중학교는 공립으로 사회에 반환되었다. 당시 낙동중학교 사친회에서 낙동중학교 교정에 설립자 고덕봉을 기리는 공덕비를 건립하였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