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29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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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吳庚仁 |
영어음역 | O Gyeongin |
분야 | 문화·교육/교육,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서구 고운들로 156-2[서대신동 1가 190]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안경식 |
[정의]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교육자.
[가계]
오경인(吳庚仁)은 1912년 3월 4일 경상남도 김해시에서 태어났다. 아내 곽태수와의 사이에 2남 3녀의 자녀를 두었다.
[활동 사항]
오경인은 1928년 동래고등보통학교, 1933년 경성사범학교 연수과를 졸업하고 부민보통학교[현 부민초등학교]의 훈도를 지냈다. 그 후 국민 학교 교장, 경상남도 장학사, 부산시 학무 과장 등을 거쳐, 6·25 전쟁 중이던 1952년 6월 4일 부산시 교육위원회가 발족하자 초대 교육감으로 취임하였으며, 1957년 2월 7일 제2대 교육감으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4·19 혁명 이후 1960년 10월 17일 전국 교육감 총사퇴 당시 사퇴하였다. 이 밖의 경력으로는 부산체육회 부회장, 전국교육감회 회장, 문교부 장학실장, 서울특별시 교육감 등을 역임하였다.
초대 부산시 교육감 당시 오경인이 주축이 된 교육위원회는 매월 1회의 정기 회의와 수시로 임시 회의를 개최하였으며, 관내 학교 시찰, 사친회 연합회 등과의 협의회를 개최하였으며, 교장단과 일선 교사 등과의 간담회도 개최하였다. 당시 6·25 전쟁으로 학교와 교실을 징발당하고 피난 학생의 증가로 교사(校舍)와 교실이 크게 부족한 상황이었는데, 교육위원회는 각지의 군부대를 방문하여 징발의 해제와 명도 교섭을 벌여 성과를 올렸으며, 유엔 민사처[UNCAC], 미국대외원조처[ICA], 미군 대한민사원조처[AFKA]의 원조를 받아 건축 자재를 확보하기도 하였다. 1984년 10월 29일 사망하였다.
[묘소]
묘소는 경상남도 김해시 삼계동에 있는 김해 공원묘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