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6474 |
---|---|
한자 | 傳說 |
영어의미역 | Legend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
집필자 | 한태문 |
[정의]
부산 지역에서 전해 내려오는 특정한 증거물을 가지고 어떤 사실이나 유래를 설명하고 해명하는 이야기.
[개설]
설화 가운데서 전설은 가장 지역성을 잘 드러내는 갈래이면서 그 지역의 전승자들이 진실하다고 믿어 전하는 이야기이다. 그 지역의 유적이나 인물에 대한 믿음이 강하기 때문에 구체적인 시공간은 물론, 자연물이나 인공물 등의 구체적인 증거물도 제시되어 있다. 전설의 주인공은 비범한 인물이긴 해도, 그가 지닌 비범성 때문에 오히려 운명을 개척하지 못하고 비극적인 결말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또 해당 지역의 자연물이나 사찰, 마을 등의 유래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설명적인 특성이 강하고, 해당 증거물에 대한 설명에 이야기의 중심이 맞춰져 있어 다른 신화나 민담에 비해 이야기의 형식이 단순한 경우가 많다.
부산 지역은 면적이 넓고 역사가 오래되어 다양한 전설이 전해지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도 명산과 유적지, 사찰과 관련된 전설들이 많이 남아 있는 것이 특징이다. 대표적인 유형으로는 지명 유래담, 인물 행적담, 유적 유래담, 아기장수담 등을 들 수 있다.
[지명 유래담]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송정동에 전하는 「송정의 지명 유래」는 송정이라는 마을 이름의 유래를 설명하고 있다. 임진왜란 이전까지 송정은 ‘가라(加羅)’라고 불렸지만, 임진왜란 때 왜군들 사이에 조선에서 송자(松字)를 주의하라는 말이 떠돌아 왜군들이 송자 지명이 붙은 곳을 침범하지 않았다. 이에 마을의 명칭이 왜군을 피하기 위해 송정 마을로 바뀌었다는 이야기이다.
강서구 녹산동에 전하는 「녹산의 지명 유래」는 어사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지명을 한자로 풀이한 것이 특징이다. 옛날 녹산 들판이 모두 갈대밭일 때 갈대밭 사이에서 녹두죽을 끓여 먹고 있는 노부부를 본 어사가 그 이유를 묻자, 영감이 “인심 좋은 마을로 만들려고 녹두를 심고 녹두죽을 끓여 먹습니다.”라고 했다는 데서, 이곳의 지명을 녹두 ‘녹(菉)’자와 뫼 ‘산(山)’자를 써서 ‘녹산’이라고 붙였다는 이야기다.
부산진구 양정동의 「부산진구 하마정의 유래」는 동래 정씨 시조인 정문도와 관련되어 있다. 임진왜란 때 왜장이 하마비 앞을 말을 타고 지나려 하자 말이 요동하여 낙마한 데다 다시 말에 오를 수도 없었다. 통역관으로부터 정문도의 묘소가 있어 누구든지 말에서 내려야 한다는 말을 들은 왜장은 예의를 갖추고 말에서 내려 걸어갔다는 이야기이다.
이밖에도 「태종대」, 「초읍동 성지곡의 전설」, 「화명 대천의 애기소」, 「가덕도의 처녀 바위·총각 바위」, 「가덕도의 코 바위」,「금정구 미륵암 쌀 바위」,「기장 대라리의 선바위」,「기장 죽성의 어사암」,「반송의 개좌골 전설」,「백양산의 낭 바위」, 「사직동 쇠미산의 비녀굴」 등이 있다.
[인물 행적담]
부산광역시 금정구에 전승되는 「금정산 원효 대사가 장군기를 꽂은 자리」는 원효의 이인적 면모를 강조한 전설이다. 통일 신라 때 왜구의 약탈로 힘든 시기에 금정산 미륵암에서 수행 중이던 원효는 장군기를 꽂아 신라군이 모인 것처럼 왜인을 현혹시킨 뒤 첩자 2명을 미륵암으로 유인한다. 원효는 호로병의 잘록한 부분에 금을 그어 두 왜인의 목을 보이면서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을 경우 이 호로병을 깨뜨려 5만 병사의 목숨을 거둘 것이라 위협한다. 첩자의 말을 듣지 않고 호로병을 단칼에 벤 왜장은 피를 토하며 죽고, 왜병들은 혼비백산하여 본국으로 돌아가 버렸다는 이야기이다.
기장군 기장읍에 전하는 「기장산의 용신과 혜통 국사」는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등장하는 혜통 국사의 신이담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전반부는 어릴 적 가죽을 벗긴 수달피가 죽지 않고 새끼를 안고 있는 것을 본 혜통이 살생의 잘못을 깨달은 뒤 불교에 귀의하여 무외삼장의 제자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담았다. 후반부는 혜통이 쫓아낸 교룡과 혜통의 기나긴 싸움을 보여 주는데 모두 혜통의 승리로 귀결된다. 마지막으로 교룡은 기장군 기장산에 들어가 용신이 되어 기장 일대의 주민에게 해를 입혔는데, 혜통은 곰으로 변신한 교룡을 죽이지 않고 오히려 자비를 설법함으로써 그 후 기장산에는 교룡으로 인한 피해가 없었다는 이야기이다.
동래구에 전하는 「동래 의적 정봉서」는 의적(義賊) 모티프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이다. 부잣집 재산을 빼앗아 가난한 집을 도와주어 사람들의 입에 의적이라 불렸던 정봉서가 말년에 관가에 잡혀 굶어 죽게 된다. 이 소식을 들은 정봉서의 아내는 동헌으로 찾아가 하마석을 들어 동헌의 삼대문(三大門)을 때려 부수었는데, 지금 금강공원 입구에는 그때 정봉서의 아내가 부순 대문 기둥으로 지은 건물이 남아 있다는 이야기다. 「동래 의적 정봉서」에서는 하마석을 들어 동헌 문을 부순 정봉서 아내의 행위가 부각되는데, 가난 구제도 제대로 못하면서 오히려 의적을 죽게 만든 관청에 대한 지역민의 비판 의식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동래구 명륜동에 전하는 「동래 부사 유심의 인물 전설」은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전생 모티프를 차용하고 있다. 홀어머니와 살던 유심은 동래 부사의 행차를 보고 자신도 동래 부사가 되고 싶어 하지만 그렇게 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부모로부터 듣고 병이 나서 죽는데, 어머니는 매년 제사를 지내며 아들을 기린다. 재상집인 유씨 가문에 다시 태어난 유심은 전생에서 바라던 동래 부사가 된 후, 전생의 어머니와 만나 생일마다 꿈에서 제사상을 받은 내력을 알게 되고, 그 뒤 전생의 어머니를 잘 모시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이밖에「온천동의 원효 대사 표시돌」,「범어사의 영원 조사와 명학 동지」,「운수사와 우운 대사」, 「구포 의성 전설」,「동래 부사 한배하의 인물 전설」 등이 있다.
[유적 유래담]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동에 전하는 「범어사 연기 설화」는 사찰 연기 설화이다. 신라 때 왜인들이 부산을 침략하려 할 때, 문무왕의 꿈속에 나타난 신인(神人)은 태백산의 의상을 맞아 금정산의 금정암에서 화엄 신중을 독송하면 미륵 여래가 왜병들을 제압할 것이라고 계시를 내린다. 왕이 그 말을 따라 행하자 여러 부처, 천왕과 신중, 문수 동자 등이 현신하여 왜적들을 토벌한다. 대승을 거두고 돌아온 왕은 의상 스님을 예공 대사(銳公大師)로 봉하고 금정산 아래에 범어사를 세웠다는 이야기이다.
동래구 온천동에 전하는 「백학과 동래 온천」은 동래 온천의 유래담이다. 신라 때 동래 고을에 사는 절름발이 노파가 절룩거리며 날아온 백학이 논 가운데 머물다가 사흘째 되던 날 다리를 절지 않고 힘차게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백학이 머문 곳에는 따뜻한 샘이 솟고 있었는데, 노파도 샘의 물을 다리에 바르자 씻은 듯이 나았다. 그 후로 마을 주민들은 그 샘을 온천이라고 불렀다는 이야기이다. 온천의 유래에 대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상서로운 동물과 상처를 안은 민중의 정신적 교감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이밖에 「영취사 연기 설화」, 「동래 정씨 묘 터」 등이 있다.
[아기장수담]
부산 지역에는 비범하게 태어난 아기장수가 영웅이 되기 직전에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는 ‘아기장수’ 모티프를 바탕으로 한 전설이 많이 전한다. 크게 신이담(神異譚)에 속한다.
부산광역시 동래구 사직동에 전하는 「사직동 쇠미산의 덕석 바위와 애기 장사」는 5살 때 스스로 무술을 연마했던 애기 장사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동래성을 향하다 덕석 바위에서 장산으로 가는 길에 말에서 떨어져 죽었는데, 비 오는 날이면 말과 아이 울음소리가 같이 들린다는 이야기이다.
기장군 기장읍에 전하는 「기장군 달음산 장사 바위」는 용마에 관한 화소는 대폭 줄고 아기장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여기서는 적국이 신라로 설정되어 있는데, 예전에 기장 지역이 거칠산국이라는 작은 소국으로 신라에 맞섰던 역사적 경험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같은 지역에 전하는 「기장 용소 계곡의 애기 장사」는 용소 계곡에 있는 ‘애기소’의 명칭 유래담이기도 하다. 비범한 자식을 마을 주민에게 들킨 부부가 아이를 죽이는 대신 용소 계곡의 애기소 옆에 버리고 오면서, 아이를 점지해 준 참샘 신령님께 거두어 줄 것을 빌자 아들이 날갯짓을 하며 승천했다는 이야기이다. 자식 살해의 모티프가 기아(棄兒) 모티프로, 비극적 결말이 행복한 결말로 변형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이상과 기대가 현실에서 결코 좌절되어서는 안 된다는 지역민의 정서가 반영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아기장수에 대한 기대가 현실에서 실현되지 못했다는 점에서, 영웅에 대한 갈망과 좌절에 대한 부산 지역민의 안타까움이 잘 반영된 이야기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