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54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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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東萊鄭氏墓- |
영어의미역 | Site of the Tomb of Jeong in Dongnae |
이칭/별칭 | 「동래정씨 시조 묘터」,「용이 만들어 준 동래정씨 묘터」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양정동 |
집필자 | 김현주 |
[정의]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양정동에서 동래정씨 시조 묘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동래정씨 묘터」는 동래정씨가 지략으로서 동래 부사가 발견한 명당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사위가 되었으며, 역적이 날 곳을 용이 된 구렁이가 돌무더기를 없애준 덕택에 명당을 차지할 수 있었다는 명당 획득담이다.
[채록/수집 상황]
1986년 김승찬이 집필하고 제일문화사에서 간행한 『경남 지방의 민담』에 「동래정씨 시조 묘터」(1), 「용이 만들어 준 동래 정씨 묘터」(2)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동래정씨 시조 묘터」(1)는 1985년 9월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지내리로 현지 조사를 나가 주민 정태환[남, 73]으로부터 채록한 것이며, 「용이 만들어 준 동래정씨 묘터」(2)는 1984년 2월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화심동으로 현지 조사를 나가 주민 여종환[남, 68]으로부터 채록한 것이다.
[내용]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양정동에 위치한 동래정씨 시조 묘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다. 첫째 이야기는 동래정씨 시조되는 사람이 동래 부사의 몸종으로 설정되어 있는 이야기이다. 동래정씨 시조되는 사람이 동래 부사의 몸종으로 있었는데, 동래 부사가 매일 밤 어디를 다녀오는 것을 이상하게 여겨 하루는 몰래 따라가 보았다. 그랬더니 동래 부사가 현재 동래정씨 시조 산에 앉아서 “참 자리는 명당인데 역적 바위가 저기 있어서.”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래 부사는 동래정씨에게 계란을 세 개 가지고 오라고 했다. 동래정씨는 이상하다 싶어서 계란을 구해다가 쇠죽 끓는데 잠깐 담갔다가 동래 부사에게 가져갔다. 동래 부사는 그날 밤이 되자 그 계란을 가지고 가 현재 동래정씨 시조 묘가 있는 자리에 묻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밤 그곳을 파 보니 계란이 부화해서 닭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닭은 동래정씨가 쇠죽에 잠깐 담근 탓에 소리 내어 울지를 못했다. 그 까닭을 모르는 동래 부사는 “그 자리가 내가 생각했던 것과 좀 다르구나. 역적 바위 때문에 그 자리는 별로다.”라고 하며 돌아서 나왔다. 그 말을 들은 동래정씨가 그 자리를 자기에게 달라고 하자 동래 부사가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 후, 동래정씨는 자기 아버지의 묘를 파서 그 자리에 모셨다. 그런데 묘를 써 놓으면 누가 와서 파 버리고, 다시 쌓아 놓고 가면 또 누가 와서 파 버리곤 했다. 세 번을 그러자 동래정씨는 누가 와서 묘를 파는가 싶어 밤새 지켜보았다. 그랬더니 도깨비들이 나타나 “여기 묘를 누가 이렇게 써 놨노? 여기는 금관을 해서 묘를 쓸 자리인데 거적으로 해서 여기 묘를 썼으니 이놈이 고얀 놈이라.” 하더니 우우 달려들어 묘를 파 버리고 갔다. 그 모습을 본 동래정씨가 동래 부사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하자 동래 부사는 보릿짚을 실로 곱게 엮어서 거기에 싸서 묻으면 괜찮을 것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동래정씨가 다시 묘를 썼더니 그 이튿날 도깨비들이 파 보고 금관이 들었다고 하며 덮어 두고 갔다. 그렇게 그 명당자리를 동래정씨가 가지게 되었는데, 동래정씨가 그 자리에 묘를 쓰고 나서 한 사나흘 지난 뒤에 벼락이 쳐 역적 바위를 부수어 버렸다. 하루는 동래정씨가 동래 부사의 발을 씻다가 발바닥에 있는 사마귀를 보고 떼어 내려 하였다. 그러자 동래 부사는 그 사마귀가 아주 직분이 높은 것이니 떼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동래정씨는 자기 발에는 그런 사마귀가 세 개나 있다고 했다. 동래 부사는 동래정씨의 발바닥에 있는 사마귀 세 개를 보고, 그 명당자리가 바로 동래정씨의 자리였음을 알았다. 그래서 동래정씨를 서울로 데리고 올라가 사위로 삼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 묘를 쓴 동래정씨는 그 뒤로도 참 잘 되었다고 한다.
둘째 이야기는 동래정씨 시조되는 사람이 동래 부사 밑의 이방으로 설정되어 있는 이야기이다. 옛날에 서울에서 안동 김씨가 동래 부사로 내려왔다. 그때, 그 부사 밑에 동래정씨가 이방으로 있었다. 동래 부사는 이방과 놀러 나갈 때마다 “참 대단한 자리인데, 저 영도의 돌무더기 때문에 여기에 묘를 쓰면 전부 역적이 날 것이니 큰일이다.”라고 말하곤 했다.
그 후, 안동 김씨는 다시 서울로 전근을 가고 동래정씨는 계속 그곳에 살았는데, 하루는 들에 나가니 큰 구렁이가 혀를 내고 길에 가로 누워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동래정씨는 “아이구, 이 용님이 이런 귀중한 몸을 인간에게 이렇게 보여서야 되겠습니까. 승천하십시오. 승천하십시오.”라고 하며 구렁이가 하늘로 승천할 수 있도록 연기를 내어 구름을 만들어 주었다. 그리하여 그 구렁이는 하늘의 용이 되었다. 한 사나흘이 지나고, 동래정씨가 꿈을 꾸니 꿈에 용이 나타나 “네 덕분에 하늘의 용이 되었으니 네 소원을 들어주어야 될 것이 아니냐. 네 소원이 무엇이냐?”라고 물었다. 그 말에 동래정씨는 “영도의 돌무더기를 없애주는 것이 저의 가장 큰 소원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자 소나기가 내려 퍼붓더니 벼락이 내리쳐 그 돌무더기를 무너뜨려 없애 버렸다. 동래정씨는 영도의 돌무더기가 없어지자 그 명당자리에 자기 아버지 묘를 썼다. 그랬더니 동래정씨 중에 정승 판서가 나고 그렇게 좋더라고 한다.
[모티프 분석]
「동래정씨 묘터」의 주요 모티프는 ‘풍수지리’, ‘명당 획득’ 등이다. 동래정씨 시조 묘와 관련하여 풍수와 명당 모티프를 담고 있는 풍수 설화는 전국적으로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다. 「동래정씨 묘터」는 두 가지 이야기로 구분되어 있는데, 두 편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내용은 역적이 나오는 바위와 돌무더기 때문에 명당자리에 묘를 못 썼다는 점이다. 그러나 지혜로운 동래정씨가 계란을 잠깐 삶거나 동래 부사의 도움으로 보릿짚을 실로 곱게 엮어 묘를 쓰는 해결 방법을 찾고, 구렁이의 도움으로 돌무더기를 없애고 그 명당에 묘를 써서 명당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이처럼 「동래정씨 묘터」 이야기는 동래정씨가 지략으로서 장애 요소를 극복하고 명당을 쟁취하는 지혜담의 줄거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