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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산 원효대사가 장군기를 꽂은 자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5253
한자 金井山元曉大師-將軍旗-
영어의미역 Geumjeong Mountain Where Great Master Wonhyo put the General's Flag
이칭/별칭 「장군기와 호로병」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부산광역시 금정구
집필자 신주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설화|전설|신이담|인물담
주요등장인물 원효|효봉|왜병|왜 장군
모티프유형 이인|도술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5년 9월 10일 - 『그 사연이 숨 쉬는 금정 이야기』에 「장군기와 호로병」이라는 제목으로 수록
관련 지명 미륵사 - 부산광역시 금정구 금성동 산1-1지도보기

[정의]

부산광역시 금정구에서 원효(元曉)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금정산 원효대사가 장군기를 꽂은 자리」원효[617~686]가 호리병을 절 마당의 탑 앞에 나란히 세우고 장군기를 꽂아서 왜구를 끌어들이고, 도술로서 왜군의 장군을 죽여 왜구를 물리쳤다는 신이담이자 인물담이다. 「금정산 원효대사가 장군기를 꽂은 자리」는 설화를 소설적으로 각색하여 살생을 해야 하는 원효의 내적 갈등을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당시의 왜와 통일 신라 사이의 군사적 갈등 상황을 역사의 관점에서 접근하여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채록/수집 상황]

2005년 9월 10일 부산광역시 금정구에서 발행한 『그 사연이 숨 쉬는 금정 이야기』의 37~48쪽에 「장군기와 호로병」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제보자는 밝히지 않고 있다. 원효금정산 미륵암에서 도를 닦으며 왜구를 물리쳤다는 전설이 전승되고 있으나 그와 관련된 증거물이 없었다. 하지만 『그 사연이 숨 쉬는 금정 이야기』에 수록되면서, 1990년 주영택이 미륵사[금정구 금성동 산1-1번지]를 답사하고 독성각의 오른쪽에 있는 바위에서 장군기를 꽂았던 것으로 보이는 움푹 파인 자국을 찾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내용]

통일 신라 시절 왜구들이 대마도를 거점으로 하여 한반도의 동해안과 남해안의 약탈을 일삼았다. 그때 5만의 왜구가 동래를 비롯하여 해운대 앞바다에 진을 치고 침략을 준비하고 있었다. 당시 금정산 미륵암에서 수행 중이던 원효는 왜구가 침입했다는 것을 감지하고 왜구를 막을 방안을 강구하였다. 불교의 도를 닦는 몸으로 살생을 해야 한다는 것이 스스로 허락되지 않았지만 더 많은 중생들을 구제할 마음으로 왜구를 무찌르기로 결심을 했다.

결심이 선 원효는 효봉 사미승을 시켜 마을에 내려가 호로병 다섯 개를 구해서 사시(巳時)까지 돌아오라고 시켰다. 원효는 효봉을 마을로 내려 보낸 뒤 동해 바다를 바라보며 명상에 잠겼다. 원효가 갑자기 눈을 떠 바닷가를 바라보니 수평선에 까만 점들이 하나 둘 나타났다. 이미 동해안에는 수십 척의 배가 정박해 있었다. 효봉이 호로병을 구해서 오자 원효는 그것을 절 마당의 탑 앞에 나란히 세우고, 눈에 잘 보이는 곳에다 장군기를 꽂았다. 잠시 뒤 원효는 다시 효봉에게 산 아래에 내려가면 두 길손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니 내려가 보라고 했다. 까닭을 모르는 효봉이 산을 내려가다 보니 두 왜인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은 장군기를 보고 통일 신라의 군대가 여기에 진을 치고 있을 것이다 아니다로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효봉을 발견한 두 사람은 왜인인 것을 숨기고 길을 잃은 척하며 장군기가 있는 곳으로 인도해 줄 것을 부탁했다.

미륵암에 다다라 군사가 없는 것을 확인한 왜인들이 돌아가려고 하자 원효가 나와 절 안으로 잠깐 들어오길 청했다. 왜인들이 절 안으로 들어오자 원효는 둘을 꾸짖으며 왜구들을 데리고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그리고 원효가 호로병의 잘록한 부분에 금을 긋자 두 왜인의 목이 조여 오기 시작했다. 당황해 하는 왜인들에게 원효는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을 경우 이 호로병을 깨뜨려 5만 병사의 목숨을 거둘 것이라 위협했다. 목숨을 구한 두 왜병은 자신의 장군을 찾아가 원효를 본 일을 말하고 본국으로 돌아갈 것을 청했다. 두 사람이 허무맹랑한 소리를 한다고 여긴 장군은 호로병을 단칼에 베어 버렸고, 그 순간 장군은 피를 토하며 쓰러져 죽어 버렸다. 이를 본 왜병들은 혼비백산하여 본국으로 돌아가 버렸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금정산 원효대사가 장군기를 꽂은 자리」의 주요 모티프는 ‘이인(異人)’, ‘도술’등이다. 원효는 역사적으로 실존한 인물로, 실존 인물을 소재로 하는 전설의 경우 그 인물 자체가 증거물이 되어 전설의 진실성을 갖추게 된다. 원효와 관련된 설화의 경우 전국적인 분포를 보이고 있으며, 구비 설화뿐만 아니라 수많은 역사서 등에 문헌으로 정착되어서 전하고 있다.

원효와 관련된 설화는 그의 탄생에 관한 것, 그리고 그가 이인적인 면모를 갖추고 도술을 부리는 것으로 대별할 수 있다. 「금정산 원효 대사가 장군기를 꽂은 자리」는 후자에 속한다. 부산은 지리적으로 일본과 가까워 일본과 관련된 설화를 많이 가지고 있다. 「금정산 원효대사가 장군기를 꽂은 자리」원효의 이인적 면과 일본의 침입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결부시켜 민중의 기억 속의 역사를 만들어 냈다. 민중의 기억 속에 원효는 국난을 극복한 영웅으로 부각되고 있는데, 이는 전쟁이라는 역사적 상흔을 민중의 상상력을 통해 치유하고자 하는 민중의 적극적인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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