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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9027
한자 釜山-海洋文化
영어의미역 The Marine Culture of Busan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구모룡

[해양 문화란 무엇인가]

부산의 해양 문화는 해양이 생활 양식 전반에 끼친 영향이 재현된 도시 공간, 문학예술, 지역 축제와 이벤트 등을 통하여 알 수 있다. 문화는 수준 높은 정신 활동뿐만 아니라 삶의 양식과 사회적 행위와 의미의 소통을 모두 포괄한다. 또한 문화는 과거로부터 잔존하는 양식이 있는가 하면 새로운 사회적 토대 위에서 부상하는 양식도 있다. 부산의 해양 문화는 문학예술을 통한 재현과 더불어 시민의 생활 양식을 형성하는 도시 공간과 해양 문화 활동 등에 잘 나타나 있다. 그런데 부산은 한국이 일제의 식민지가 되면서 도시가 형성되었으므로 해양 문화 또한 근대 세계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점에서 부산의 해양 문화는 해항 도시[Sea Port City]라는 도시적 특성을 감안하여 이해되어야 한다.

그런데 바다와 해양에 해당하는 영어는 sea, ocean, maritime, marine 등 네 가지 정도다. sea는 대체로 바다 일반을 가리키는 말이다. land에 상응하는 개념이라 할 수 있고 가까운 연안에서 대양에 이르는 바다 전체를 포괄한다. 이에 비해 ocean은 연안 역을 벗어난 대양을 지시한다고 할 수 있다. maritime은 항해 기술, 선박, 항만 등 어업 이외의 바다와 관련된 영역을 의미하는 것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구미(歐美)에서 maritime anthropology[해양 인류학]라는 개념이 일반적인 것을 보면 그 의미를 넓게 잡을 수 있는 소지는 많다.

예를 들어 영국 연안의 바다와 관련한 역사와 유산을 흥미진진하게 소개하고 있는 『Maritime Britain』도 maritime의 범주에 연안의 풍경 등을 포함시키고 있다. 하지만 이는 동아시아에서 대체로 해사(海事)로 번역되며 해상 교통, 배와 선박 기술 등을 대상으로 하는 개념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에 비하여 보다 넓은 의미를 함의하고 있는 용어가 marine이다. 가령 marine tourism[해양 관광]이 해안과 해양을 포괄하는 해양 레크리에이션을 뜻할 때 그렇다. 이 경우 일이 행해지는 공간 영역을 의미하는 경향이 크다. 해양 문화는 해사[maritime]를 중심에 두고 연안[coast]과 대양[ocean]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볼 수 있다.

[부산의 문화 정체성, 부산다움의 발견]

부산의 문화 정체성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정체성이 하나의 본질로 전제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과정 속에서 구성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이는 도시의 시공간에 내재한 지속과 변화를 살피는 데서 찾아질 수 있다. 부산의 문화 정체성을 찾는 일은 달리 부산에 내재한 가치인 부산다움을 발견하는 일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부산다움은 무엇보다 해항 도시로서의 해양 문화를 통해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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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항 도시 부산의 변화 양상과 같은 도식에 보듯이 부산은 남항과 북항을 중심으로 성장해 온 해항 도시이다. 일제 강점기와 해방 후 근대화 과정에서 부산의 위상은 항만에 있었고 이 항만을 통하여 해양 문화가 성장해 왔다. 오늘날 해양 문화는 항만 중심에서 해항 도시와 포구, 그리고 연안의 다양한 문화 활동 등을 포괄한다. 이러한 부산의 해양 문화적 특성은 결절성[nodality], 혼종성[hybridity], 네트워크[network], 다문화성[multi-culture] 등으로 이야기될 수 있다.

첫째, 결절성을 살펴보자. 해항 도시 부산은 식민 도시로 출발하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나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왜관(倭館)’의 존재 방식을 생각하면 상당 부분 보충될 내용을 가진다. 왜관이 전근대 교역과 교류의 장이었다는 점에서 부산은 동아시아 지역적 네트워크의 한 결절점[nodal point]임에 틀림이 없다. 여기서 해양교역 도시라는 역사적 정체성을 설정할 수 있다. 이러한 정체성은 21세기가 요구하는 해항 도시의 문화적 특성으로 확대할 수 있다. 인접 도시와의 연계를 강화하기 위해 적응력과 유연성을 발휘하는 해양 문화가 부산의 특성인 것이다.

둘째는 혼종성이다. 식민 도시 이래 여러 계기에 의해 진행된 문화 혼종화는 부산을 다문화 네트워크 도시로 만드는 바탕이 되었다. 식민 시기의 범월(犯越)과 이산(離散), 해방 공간과 6·25 전쟁기의 내국 이민, 근대화 시기의 이촌 향도 등 다양한 역사적 경험들은 부산을 문화적 허브이자 세계로 열린 혼종 문화의 해항 도시로 만들었다.

셋째는 네트워크이다. 해항 도시 부산은 일본과 러시아와 중국을 잇는 네트워크임에 틀림이 없다. 따라서 이(異)문화가 다양한 장소와 공간에 자리 잡고 있다. 차이나타운과 러시아 등 외국인 이주자들이 활동할 수 있는 다문화 공간이 여기 저기 활성화되고 있다.

넷째는 다문화성이다. 해항 도시 부산에는 여러 가지 양상으로 에스닉 스폿(Ethnic Spot)이 형성되어 있다. 부산역 앞 초량이 대표적인데 가게의 간판이나 거리에 있는 언어적 경관이 외국 국적의 사람들의 활동을 반영하고 있다. 중국, 일본, 러시아 그리고 동남아 여러 나라들에서 온 이주자들의 독자적인 생활 세계는 지역적 삶의 변동을 가져오고 있으며 미디어를 통하여 지역에 새로운 문화 회로를 형성함으로써 우리가 사는 도시를 변용한다. 이들의 시야는 몸은 로컬 영역인 부산에 있지만 그들의 국가와 지역을 향한 더 넓은 세계와 네트워크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항구와 포구의 도시, 부산]

1. 부산의 항구와 포구

해항 도시 부산에는 항구와 포구가 60여 개나 된다. 도심에 있는 부산항을 모르는 이 없을 것인데 일제 강점기부터 많은 배들과 사람들이 오갔다. 부산항은 가덕도 신항이 만들어지면서 재생을 기다리고 있다. 북항 일대가 아름다운 친수 공간을 지닌 해양 신도시, 해양 문화 공간으로 거듭나면 부산의 면모가 크게 일신될 것임에 틀림이 없다. 바다가 열린 북항과 달리 가덕도에 가 본 이들은 또 다른 경험이 주는 충격에 휩싸였을 것이다. 바다가 부두가 되었으므로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가 되었다”[상전벽해(桑田碧海)]는 옛말이 어울리지 않는다. 바다가 사라진 자리에 들어선 부산 신항의 위용에 압도당하지 않는 이 없을 것이다. 변화가 현대 도시의 속성이라 하지만 가덕도 일대의 변모는 가히 경이적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부산에는 이처럼 큰 항만만 있는 것이 아니다. 크고 작은 항구와 포구들이 해안선을 따라 즐비하다. 부산항이나 부산 신항이 주는 위압적 느낌이 아니라 포근하고 편하게 우리를 맞거나 아기자기한 모습으로 반기는 포구와 항구들이 많다. 또한 변화의 바람에 새 단장한 항구가 있는가 하면 스펙터클한 도시 공간 속에서 초라한 모습을 감추고 있는 항구도 없지 않다. 경우에 따라 아파트 사이 혹은 공장 건물들 사이를 가르는 항구와 포구도 있다. 크게는 세계적인 항만에서 적게는 옛 정취가 묻어나는 포구가 60여 개나 있으니 우리가 사는 부산을 항구와 포구의 도시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부산은 산과 강과 바다를 다 가진 도시다. 바다에서 볼 때 좌로 낙동강이, 우로 수영강이 흐르고 있다. 태백 산맥의 자락이 남해로 침강하는 끝머리에 위치하고 있기에 구릉지가 많다. 금정산·백양산·엄광산·구봉산·구덕산·천마산 등의 연봉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가운데 낙동강수영강 연안에 비교적 넓은 평야를 끼고 있다. 특히 낙동강 하구는 삼각주가 발달하여 습지와 광활한 평야가 펼쳐진다. 하지만 장산·황령산·금련산·복병산·증산·용두산·천마산 등의 산맥이 바다로 뻗어 내려 바닷가 평야의 발달이 미약하다. 일찍이 수영강 연안의 분지인 동래가 이 지역의 중심을 이룬 것은 산으로 둘러쳐진 지리적 여건을 반영한다.

우암 반도영도 그리고 두송 반도가 천연의 방파제가 되어 부산만, 감천만, 다대만을 이루고 있어 부산은, 일찍부터 포구가 발달하였고 개항과 더불어 부산항이 형성되고 발전하면서 세계를 향한 해항 도시가 되었다. 오늘날 부산은 기장과 낙동강 서안에서 가덕도에 이르는 광역 도시가 되면서 원도심의 항만뿐만 아니라 복잡다기(複雜多岐)한 항구와 포구를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300㎞에 달하는 해안선[자연 해안선 219.5㎞, 인공 해안을 포함한 해안선 306.2㎞]에 배치된 각기 다른 형태와 규모의 항구와 포구, 그리고 해양 경관에 대한 재인식이 요구된다.

2. 부산 항구와 포구에 대해 필요한 재인식

이처럼 필요한 재인식은 세 가지이다. 첫째, 식민 도시에서 출발하여 근대 도시를 경과해 오면서 항만과 배후 산업 중심으로 발달해 온 부산의 공간에 대한 문화적 성찰을 담는다. 1995년 광역화하면서 기장, 강서 지역의 편입으로 대규모 주변부가 형성되면서 이들을 모두 포함하는 인식 지도가 요청되는 한편 산업 중심의 근대 도시를 넘어서 문화와 생태 환경이 조화를 이루는 지속 가능한 해양 문화 도시로 가는 길에 대한 탐문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둘째, 부산의 항구와 포구에 대한 관심은 육역 중심의 시각을 교정하고 해역으로 눈을 돌려 대규모 항만[북항과 신항]~중규모 항구[다대항, 감천항]~어항[도심 어항과 어촌 어항]~포구 등 다층적인 해양 지리를 구성하는 일과 연관된다. 다시 말해서 항구·포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사람들의 삶을 통하여 부산의 다채로운 해양 문화를 이해할 수 있다.

셋째, 항구와 포구에 대한 재인식은 해안의 마을, 장소와 공간, 그리고 경관의 문화정책, 공간 디자인, 장소 마케팅의 가능성을 찾고 미래 지향적인 해양 문화 도시의 밑그림을 구상하는 일과 이어진다. 이리하여 항구와 포구와 더불어 다양한 친수 공간들을 네트워킹하는 방안을 모색함으로써 인간화된 보행 도시에 대한 가능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부산의 해안이 보이는 전체적 특징은 남해동해의 점이 지대[부산항을 경계로 동해의 성격과 남해의 성격이 드러남]로 크고 작은 만과 이들 사이에 반도와 섬들이 분포하며 전체적으로 복잡한 해안선을 형성하고 있다. 파도가 강한 외해에 접한 해안은 해식애나 파식대 등이 발달하였고, 해수욕장이 있는 내만과 낙동강 하구에는 사구가 발달하였다. 본디 천혜의 경관을 지녔으나 개항 이래 물류 중심의 항만 정책에 의하여 매립과 매축이 빈번하였고 근대화 과정에서 공단 조성과 어항 개발 등으로 해안이 크게 변형되었다. 그런데 항구와 포구의 경관은 삶의 터전으로서 역사성과 삶의 역동적 현장성이 드러나는 곳이다.

하지만 매립되고 매축되어 사라진 경우, 쇠락하여 방치된 경우, 재개발로 덧칠된 경우 등 경관과 친수 공간의 기능이 약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개별 항구와 포구를 특성에 맞게 디자인하여 차별화하면서 상호 연계하는 일이 필요하다. 즉 어업 쇠퇴에 따른 어민 공동체 분열과 와해, 개발에 따른 갈등 심화 등 현실적 문제들을 해결하면서 항구와 포구의 경관을 살리고 이를 발전시켜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해양 문화를 진작하는 방안이 절실하다.

3. 여섯 개 권역으로 나눈 부산 항구와 포구

부산의 항구와 포구를 공간적 특성에 따라 크게 여섯 개 권역으로 나눌 수 있다. 기장 권역, 해운대·송정 권역, 광안리·용호 권역, 부산항 영도·송도 권역, 다대·장림 권역, 강서·가덕 권역 등인데 행정 구역을 염두에 두지 않고 순전히 인문 지리적 관계를 고려한 것이다.

기장 권역과 송정·해운대 권역을 나눈 것이 뚜렷한 기준을 찾을 수 없는 것은 송정·해운대 권역과 광안리·용호 권역을 나누는 경계가 분명하지 않다는 사실과 같다. 물론 용호 권역과 부산항의 경계는 비교적 뚜렷하다. 그러나 북항과 남항을 아우르면서 영도와 송도 권역을 함께 묶은 것도 자의적이다.

감천항다대포항을 독립시켜도 무방할 것인데 이들을 낙동강 연안의 장림 권역과 같이 두었다. 낙동강 하구의 여러 항구와 포구와 가덕도를 하나의 권역으로 묶은 것도 무리는 없지 않다. 그러므로 권역에 지나친 의미를 두지 않는 것이 좋다. 이들 항구와 포구들이 각기 고립되지 않고 연계되는 방안을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기장 권역은 효암, 월내, 임랑, 문동, 문중, 칠암, 신평, 동백, 이동, 이천, 학리, 죽성[두호], 월전, 대변항, 신암, 서암, 동암, 시랑리 공수이다. 송정·해운대 권역은 송정, 구덕포, 청사포, 미포, 동백항이다. 광안리·용호 권역은 우동, 민락, 남천, 용호[분포], 백운포이다. 부산항 영도·송도 권역은 북항, 하리, 중리, 대평, 남부민항, 암남이다. 다대·장림 권역은 모지포, 감천항, 서평포, 다대항[다대포], 홍티, 보덕, 장림, 하단이다. 강서·가덕 권역은 진목, 중리, 하신, 동리, 신호, 성산, 대저, 순아, 선창, 율리, 장항, 천성, 대항, 대항 새바지, 외양, 동선 새바지, 눌차, 항월, 정거이다.

한 지역에서 항구와 포구가 우세한 위치에 있는 경우와 부차적인 위치에 있는 경우가 있다. 부산이라는 전체의 관점에서 부산항이나 신항의 지위는 거의 절대적이다. 이와 달리 주변의 관점에서 대부분의 항구와 포구는 개별 지역에서 우세한 지위에 있다. 기장 권역의 대다수 항구와 포구가 그렇고 강서와 가덕 권역이 이와 같다.

그런데 기장 권역이라 하더라도 해수욕장을 옆에 둔 임랑 포구는 매우 주변적이다. 마찬가지로 송정 해수욕장, 해운대 해수욕장, 광안리 해수욕장, 송도 해수욕장의 양단에 존재하는 송정항, 구덕포항, 미포항, 동백항, 민락항, 남천항, 암남항 등은 부차적 지위를 면치 못한다. 이와 더불어 공단이나 아파트 단지 사이에 놓여 있는 하단항, 장림항, 홍티항이나 아파트 단지나 도심에 있는 우동항, 용호항 등도 공간적 위상이 낮다. 그런데 이처럼 공간적 위상이 우세종이 아니라 하여 항구와 포구가 간과될 수는 없다. 오히려 항구와 포구는 해양 도시 부산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해양 문화를 이끌어 가는 지배소가 될 가능성이 크다.

4. 희망의 북항 재개발

“구슬이 서 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은 부산의 항구와 포구를 두고도 해당된다. 부산의 해안은 아름다운 자연 경관이 보석처럼 알알이 박혀 있다. 저 멀리 가덕도의 바닷길을 걸어 보라. 확 트인 바다와 수려한 경관이 피부에 와 닿을 것이다. 다대포에서 바라보는 낙동강 하구는 또 어떠한가? 겨울이라도 좋을 것이다. 노을을 받으며 군무하는 새떼들의 경쾌한 비상과 만날 수 있지 않는가? 몰운대의 바다와 태종대의 바다는 서로 같으면서 다르다. 해안 길이며 등대며 해송 사이로 불어오는 바닷바람은 마치 바위 속에서 솟아오르는 샘물을 마시는 듯 신선하다. 왁자한 자갈치는 고기 냄새처럼 사람 냄새가 나는 곳이다.

남항의 홍등 등대와 남부민 방파제의 백등 등대가 마주보고 있는 모습도 조화롭다. 그 안에서 부산의 활기가 퍼덕인다. 눈을 돌려 백운포에서 바라보는 오륙도는 어떠한가? 이기대 바다를 돌아 광안리며 해운대며 송정에 이르는 바다는 하늘이 내린 축복이다. 그 축복의 길이 삼포를 거쳐 기장 끝에 이르렀으니 세계 그 어느 도시도 부산만큼 많은 해양 생태 문화 자산을 가지고 있진 못할 것이다.

그런데 부산의 해안에 점점이 박힌 보석들은 저마다 빛나고 있으나 서로를 비추는 데 인색하다. 길들은 도심과 공단과 아파트 단지로 자주 끊어진다. 바다로 가는 길들은 더 넓은 자동차도로가 가로 막는다. 그러니 서 말 구슬들이 꿰어지지 못하고 흩어져 있다. 이러한 사정에는 역사적 요인들이 많다. 일제 강점기 항구 도시가 만들어지면서 부산항 중심으로 개발된 것이 그 첫째라면 해방 이후 귀환 동포와 6·25 전쟁 피난 인파의 정착으로 도시가 급속하게 팽창한 원인도 있다. 근대화 과정은 강가와 바닷가를 매립하거나 매축하여 공단을 건립하였다. 그러니 부산은 모자이크하듯 덧붙여간 누적 도시의 모습이 될 수밖에 없었다.

반짝이는 바닷가 보석 풍경들을 제쳐 두고 부산의 해안을 다시 보자. 먼저 도심항만은 고립 단절되어 있다. 그래서 주변 지역과 조화롭지 못할 뿐 아니라 소통을 가로 막는다. 지금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군사 시설이 해안 길을 차단하는 경우도 많다. 이와 더불어 사유지, 국가 시설, 아파트 단지, 호텔, 친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교량, 방파제, 호안 대규모 구조물, 테트라포드 등 경관을 차단하고 풍경을 단순한 공간으로 추상화하는 인공물들이 얼마나 많은가? 또한 도시와 해안의 소통은 어떠한가? 잘 만들어진 친수 공간이 있고 몰운대, 태종대, 이기대 등 경관이 있어도 접근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면 그 또한 그림의 떡이 될 수 있는 법이다.

그러나 희망이 있다. 북항 재개발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신선대 부두에서 감만 부두를 거쳐 허치슨 부두에 이르기까지 컨테이너로 가려졌던 바다가 북항에 이르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북항을 새로 디자인한다고 한다. 그 동안 북항은 폐쇄형 항만으로 운용되었다. 지금 재개발을 기다리며 맨 살을 드러낸 부두뿐이지만 빈 공간이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북항 재생이 특정 공간에 그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차제에 북항을 위시한 부산의 항구와 포구를 연계하여 디자인하고 네트워킹하는 방안들을 모색하는 것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가령 부산 대교 건너 봉래동 창고 지역을 보라. 부산 대교에서 봉래동 물양장과 그 주변 도로를 내려 보다가 그 아래에 서서 낮은 시선으로 해변도로 일대를 둘러보면 확연히 다른 느낌이 온다. 퇴락한 듯하나 색상 표에도 없는 색깔을 띤 배들이며 창고와 거리들이 바다와 어울려 묘한 정취를 선사한다. 부디 바다와 조화된 풍경으로 재생되기를 기대한다. 그런데 북항의 재생은 영도남항 그리고 송도를 배제할 수 없다. 북항과 남항 그리고 영도는 함께 놓여 있다. 더불어 송도의 암남항에서 한편으로 부민항으로 이어지고 다른 한편으로 영도 대평항으로 연결되는 고리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

부산이 근대적인 항구 도시가 되는 것은 개항 이후인데 일제가 용미산 등을 깎아 매축하여 만든 부두가 북항의 원형이다. 북항은 일제 강점기 관부 연락선을 타고 많은 사람들이 서로 다른 의도를 품고 왕래하던 곳이고 해방과 더불어 귀환 인파가 몰려들던 공간이다. 또한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미군과 물자가 수송되어 오고 숱한 피난민들이 밀려든 항구이다. 분단을 맞아 섬이 된 한국이 근대화를 위해 세계로 나아가던 희망의 출구이기도 하다.

이제 북항은 항만 기능을 신항에 이양하고 센트럴 베이라는 이름을 얻으면서 새 단장에 들어갔다. 일제 강점기 부산부였던 구 시청이 헐리고 그 자리에 롯데 백화점과 초고층 롯데 월드가 건립 중에 있다. 근대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영도 다리도 새롭게 태어나기 위한 과정에 들어갔다. 일본이 영도를 배후 공업지로 활용하기 위하여 놓은 다리인데 6·25 전쟁 때는 피난민들이 혈육을 찾아 몰려들었던 애환이 서려있는 장소다. 영도 다리는 40계단과 함께 많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장소에서 장소감[sense of place]을 느낄 수 있는 것은 그것의 역사성이 보존될 때이다. 텅 빈 북항도 허다한 이야기들을 품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두 가지 견해가 있다. 그 하나는 도시의 번잡하고 산만한 다양성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를 창백한 합리주의를 뒤집는 도시의 역동성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둘 다 옳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절충은 좋지 않은 발상인데, 롯데 월드와 봉래동 창고 거리가 공존하는 것을 마냥 역동성으로 예찬할 수만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북항 주위에는 글로벌 도시의 스펙터클한 이미지로 도색될 롯데 월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영도 다리와 같이 잘 알려진 장소와 더불어 정겨운 뒷골목들이 공존하는, 매우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공간과 장소가 있다. 그러므로 북항을 매개로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노래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것은 아름다운 바다와 살맛나는 거리가 어우러져 인간적인 교감이 일어나는 보행 도시를 꿈꾸는 일과 다르지 않다.

이야기하는 도시와 침묵하는 도시가 있다. 전자는 많은 전통과 기억을 보존하고 있어서 장소마다 이야기를 간직한 도시다. 가령 우리가 경주나 파리나 로마에 갈 때 도시가 말을 걸어온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데 그런 도시일수록 걷고 싶고 오래 남고 싶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후자는 개념 도시[concept-city]라고도 불리는 도시로 고층 빌딩에 반듯하게 구획된 도로를 뽐낸다. 자주 자신의 위용으로 사람들을 위압하기도 한다. 이러한 도시는 한번쯤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할 수 있다. 대규모 쇼핑몰이며 어마어마한 테마 파크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랜 추억으로 남지는 않는다. 기억에 남을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한다.

현대의 도시는 보편적인 세계 도시[global city] 이미지와 더불어 장소의 감각이 살아 있는 보행 도시를 동시에 꿈꾼다. 부산도 세계 도시를 지향하면서 보행 도시를 함께 열어가야 하는데 마린 시티, 센텀 시티, 센트럴 베이 등이 세계 도시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다면, 산비탈 주거 지역의 골목길이나 금정산장산황령산 등 숱한 산으로 가는 길들과 도심 하천과 낙동강수영강을 따라가는 수변 길, 바닷가 포구와 항구들에 이르는 길들은 보행 도시의 중요한 자산이 된다. 이러한 점에서 항구와 포구를 이어가는 길을 형성하는 일이 요긴하다. 사실 어항과 포구는 부산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데 뺄 수 없는 요소다. 주변으로 밀려나거나 난개발로 상실되어가는 장소성을 회복하는 재생 플랜이 필요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아침이 아름답고 사철 바다가 다양한 표정으로 우리를 반기는 기장 지역 해안은 아직 살아 있다. 소규모 하천 만나는 포구가 많고 전통적인 어업 마을도 여럿이다. 황학대시랑대 등 유서 깊은 장소도 있고 일광과 학리 등 스토리텔링을 간직한 곳이 많다. 경우에 따라서 고리 원자력 발전소조차 랜드 마크로 디자인되는 것이 좋겠다. 멸치와 미역 등 특산물을 매개로 한 테마 박물관을 만들 수 있고 이를 체험하는 공간도 조성하면 된다. 영도와 송도 못지않게 해녀의 문화가 잔존하는 곳도 기장이다.

송정은 기장과 해운대를 잇는 결절점이다. 그래서 더없이 중요한 공간이다. 어쩌면 해운대보다 더 강조되어야 할 바다가 아닌가 한다. 삼포[구덕포, 청사포, 미포]를 거쳐 해운대에 이르는 길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 지금도 동해 남부선 철길이 있어 낭만이 숨 쉬는 장소이다. 송정역사를 이 지역 네트워킹의 한 중심으로 삼아서 철길의 기억과 해수욕장의 추억을 잘 보존한다면 멋진 장소로 재생할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해운대 마린 시티나 센텀 시티의 이미지를 옮겨 갈 필요는 없다. 지금껏 살아있는 장소감을 유지하는 일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남해동해가 살을 맞대는 부산의 해안! 기암괴석이 즐비하면서 다른 한편 모래사장과 갯벌이 발달한 곳! 낙동강 유역은 그야말로 해양 문화의 보고이자 부산의 미래를 결정할 시금석이다. 무엇보다 유역(流域)이라는 말에 유념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자연스런 물길은 물론 인위적인 도로조차 흐름에 장애가 없어야 한다. 하지만 목표 지향의 근대화 과정에 유역의 아름다움이 크게 훼손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 늦지 않았다. 공단이나 아파트 속에 갇힌 포구들조차 재생의 여지가 많다. 더 나쁜 생각은 포기하는 것. 지속 가능한 개발이라는 모순 형용을 이곳에서는 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제 몸에 비치는 모든 그림자를 끌어안던 강물이 몸을 푸는 곳, 바다. 강, 육지 속의 바다! 강이 바다에 이르는 그 유역은 생명의 활기가 그득하다. 포구는 삶이 가진 꿈과 꿈이 가진 삶의 특성이 어우러지는 생명의 터전이다. 낙동강, 서낙동강, 조만강, 평강천, 지사천, 맥도강 그리고 샛강들. 이 강들이 바다와 만나는 낙동강 하구 삼각주의 남단엔 포구들이 많다. 퇴적으로 형성된 지형이므로 동해안과는 경관이 다르다. 기장의 경우, 산맥이 바다 앞까지 닿아있고, 그 사이로 흐르는 하천이 바다와 만난다. 하지만 강서는 해안 지형이 평평해 비록 어로 활동이 이뤄지고 있지만 기장에 비해 농경의 성격이 강하다. 이곳에서는 민물과 짠물이 섞이면서 하구의 염분 농도는 자주 바뀐다. 때문에 민물고기, 민물과 바닷물이 섞인 곳에 사는 물고기, 바닷고기 등 다양한 어종이 모두 나타난다. 포구와 포구의 네트워킹, 낙동강과 가덕도 바다를 이어야 한다.

[해항 도시 부산의 해양 문화 :근대화, 해양화, 국제화, 세계화]

문화가 생활 양식이고 살아가는 전 과정이라면 해양 문화는 해양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의미를 찾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해양과 관련된 유형, 무형의 문화 자산과 연관된다. 그 동안 해양 문화 자원은 역사적인 관점에서 분류되었다. 해양사와 생활사를 두 축으로 해양사 문화 자원은 자연사 문화 자원, 선사 시대 문화 자원, 해운, 대외 교류, 해전, 도시 등으로 나누고 생활사 문화 자원은 주민[어촌 사회, 어민], 어업[어로 환경 조건, 어로 기술, 항해 기술], 정신[해양 의례, 해양 민요, 해양 설화] 등으로 구분하였다.

이러한 분류 체계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해양 문화 전체를 포괄하려는 방법이 된다. 무엇보다 해양을 단순한 관조의 대상이 아니라 바다와 함께 사는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탐문하는 것이 해양 문화를 이해하는 근간이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해양 문화의 자산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잔존 생활 양식으로서의 해양 문화로는 해양 민속, 해양 설화, 해양 민요 등이 있다. 둘째, 해양 문화 기반 시설-해양 문화 하드웨어로는 해양 박물관, 해양 수족관, 해양 체험관, 마리나와 리조트 등이 있다. 셋째, 해양 문화 콘텐츠-해양 문화소프트웨어로는 해양 문학, 해양 예술, 해양 출판, 해양 영상과 영화, 해양 축제와 이벤트, 해양 관광 콘텐츠, 해양 스토리텔링 등이 있다. 넷째, 해양 문화로서의 연안 공간, 해양 문화 도시, 포구, 어항, 항구, 친수 공간, 등대 등이 있다.

이러한 해양 문화 자산을 생각할 때 항구와 포구는 해양 문화의 주요 거점이 된다. 넓게 연안으로 포괄될 수 있는 지역의 문화가 해양 문화인데 항구와 포구라는 지점을 통하여 살필 수 있을 것이다. 해항 도시 부산에는 아름다운 해안 경관과 등대, 해안 산책로 등 다양한 친수 공간이 있다. 아울러 해운대, 송정, 광안리, 송도 등의 해수욕장이 있고 우동의 마리나가 있다. 다양한 청소년 해양 레포츠 공간이 있는가 하면 해양 관광 공간들이 개발되고 있다. 국제 부두와 연안 부두가 있는가 하면 크루즈 부두가 있다. 이는 감천과 다대포 등의 어항과 더불어 해항 도시 부산의 문화를 형성하는 공간들이다.

그리고 국립해양박물관부산해양자연사박물관 등 해양 문화 기반 시설이 있다. 아울러 한국해양대학교부경대학교에 해양 수산 인력을 양성하는 학과가 있고 다양한 연구 기관과 해양 수산 연수원이 있다. 이러한 연구 기관들이 해양 콘텐츠를 개발하고 해양 의식을 확산하며 해양 문화를 활성화한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 해양의 중요성이 부각된 것은 1960년대이다. 한국의 해운업과 수산업은 일제의 식민적 근대화의 일환으로 성장하나 본격적인 것은 되지 못하였다. 일제 강점기 해운업의 경우 조선총독부가 원산, 목포, 부산의 일본 거류민을 지원하여 경영하거나 일본 본국 자본에 의해 독점되는 양상을 보였다. 아울러 일제는 만주 사변 이후 제2차 세계 대전까지 철저하게 제국주의 정책에 부응하는 해운 정책을 실시하였다. 따라서 본격적인 해운업의 발달은 해방 이후에 시작되었다. 수산업 또한 식민지 수탈 정책의 일환으로 장려되고 일본의 연안 어장보다 어장 가치가 월등히 높았던 우리나라 어장을 우선적으로 개발하는 정책이 실시되었기에 식민지 하에서 급속히 발전하였다.

그러나 해운업과 함께 우리나라 수산업의 발전은 1962년 경제 개발 5개년이 추진되면서 수출 산업으로서의 수산업 비중이 커지면서 나타났다. 부산은 한국에서 해운업과 수산업의 메카이다. 1960년대 근대화 과정에서 해운업과 수산업의 팽창과 더불어 해양 문화도 더욱 확산되었다.

근대화와 해양화를 동일시하는 관점은 가능하다. 김진현은 1945년의 해방을 대륙으로부터의 해방이라 해석하면서 해방이 대륙과의 단절과 강제된 해양화를 불러왔다고 한다. 냉전의 세계 체제 하에서 섬이 된 한국은 해양화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러한 점에서 압축 성장은 곧 압축 해양화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는 경제가 특화된 관점에서 진행된 해양화이다. 근대화에 상응하는 한국의 해양화는 국제화, 나아가서 세계화에 부합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냉전 체제의 와해와 더불어 본격화된 세계화 시대에 한국은 냉전 체제 하에서 강제된 해양화의 단계를 넘어 ‘해양화의 세계화’ 단계를 맞게 되었다. 해양화의 세계화는 유럽의 해양화, 아시아의 해양화가 진전되는 차원이 아니라 전 지구적인 차원에서 ‘해양적인 것, 해양의 가치 체계의 지구촌 시대’가 전개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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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항(海港) 도시 부산은 제2의 해양화 시대를 맞아 이를 적극적으로 자기화해야 하는 단계에 와 있다. 제1의 해양화 시대의 국가 중심적인 정책이나 제도, 그리고 기구들이 세계 체제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문제는 오늘 논의의 범위를 넘어서는 일이다. 다만 오늘날 해양화가 세계화나 월경적인 가치, 다문화주의, 해역 시점 등과 맥락을 같이 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가령 아시아에서 싱가포르나 홍콩이 모델이 되는 것은 이들 도시가 세계를 네트워킹하면서 다문화적 가치를 일반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달리 해양화에 성공하였다는 뜻이다. 이는 제2의 해양화를 성공시키고 해항 도시 부산을 세계와 연계하는 문화 교류의 결절지로 만들어가는 일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문학 예술에 재현된 부산의 해양 문화: 경험의 작품화]

1. 중앙 집권적 산업화로 해양 문화의 활성화 차단

6·25 전쟁 이후 오랜 시간 동안 부산항은 수출입국의 표상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수출입국의 표상이 되었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부산항이 부산의 시민들에게 개방될 수 없고 국가의 집중적인 관리와 통제 하에 놓인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기도 한다. 즉, 부산항은 부산에 소속되어 있으면서도 부산이라는 도시의 삶에 스며들거나 밀착하지 못하고 부산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는 공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달리 말해, 태평양으로 나아가는 한국 전체의 가장 중요한 ‘관문’이면서도 정작 그 바다로 나아가는 것은 불가능하였거나 통제 아래 놓여 있었던 탓에 부산에 해항 문화가 활성화되기는 쉽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바다로 나아가거나 바다 너머를 상상하는 일이 중앙 집권적인 산업화 정책에 의해 실질적으로 차단되었다는 것이다. 1980년대에 들어서기 전까지 노동력 수출이나 베트남 전쟁 참여를 제외하고 실제로 국가적 경계를 이탈하는 일은 국가의 통치 원리에 반하는 것이거나 국가의 토대에 심각한 누수를 일으키는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었다.

이 때문에 부산이 나아가는 관문은 국가의 영토를 건너 다른 국가로 나아가는 일이 아니라 서울을 경유해서만 나아갈 수 있는 것으로 이해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서울을 중심으로 구축된 국토 재개발과 경제 구조의 형성은 강력한 근대화와 그에 따른 불균등 발전을 가속화하였고 한국 사회 전체의 심성 구조를 서울을 통해서만 사고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었다.

그러니까 부산은 바다 너머로 나아가는 관문이 아니라 서울로 거슬러 올라가야만 하는 ‘지방’으로 인식되었다. 지방으로서 부산은 서울에 의해 재발견되어야만 하는 공간이었던 셈이다. 따라서 부산이 더 나은 지방이 되기 위해서는 바다를 버리고 대륙으로 나아가는 것이 훨씬 중요한 것이 되었다. 그러나 해운업과 수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에 의하여 부산의 해양 문학이 형성되었다.

2. 해양 문학의 본격적 형성-김성식과 천금성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해양 문학은 1970년대 김성식과 천금성으로 대표된다. 근대적인 해양 문학이 본격적인 근대화 과정에 형성되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냉전 체제의 축소판인 분단 체제에서 섬이 된 한국 사회의 근대화 출구가 부산이 되었고 이와 더불어 부산 지역에서 김성식과 천금성 등 대표적인 해양 문학 작가들이 등장한 것이다. 김성식은 선장으로서의 해양 체험을 해양 시로 표출하였고 천금성 또한 원양 조업의 체험을 해양 소설로 서술하였다. 모두 선원으로서의 생활 양식을 표현하고 재현하였다. 이처럼 김성식과 천금성의 등장은 해양 문학의 사회적 토대가 형성되었다는 문화 유물론적 설명을 가능하게 한다.

무엇보다 이들의 해양 문학이 내포하는 근대성에 대한 해명이 중요하다. 근대성과 항해의 유비(類比)는 『계몽의 변증법』의 저자들에 의해 오디세우스를 통해 나타난 바 있다. 항해란 무엇인가? 각양각색의 위험과 고난, 유혹과 쾌락을 극복하고 마침내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 아닌가? 이를 근대적인 목적론과 합리성에 견주는 것은 타당할 것이다. 비록 낭만의 채색이 있다 하더라도 이는 근대성의 장식에 불과할 뿐이다.

김성식이 자신의 시적 지향을 보들레르의 『엘바트로스』에 대한 모방적 극복에 둔 것과 천금성이 멜빌의 『모비딕』을 창작의 전범으로 삼되 이를 극복하려 한 것은 비록 우회적 설명이나 이들의 해양 문학이 근대성을 추구하였음을 시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보들레르의 항해는 일반적인 근대에 저항하는 미적 근대성의 실현으로 보아진다. 김성식 또한 항해를 통하여 근대 사회의 모순들을 미적으로 극복하고자 하였다. 멜빌의 『모비딕』이 근대성의 두 측면을 동시에 보여 준다는 견해는 매우 설득력이 있다. 이는 합리성에 대한 지향과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난폭한 불합리라는, 근대의 양면성이다. 천금성의 해양 소설 또한 이러한 양면성을 보이고 있다.

김성식과 천금성의 해양 문학은 근대 세계로서의 해양에 대한 인식과 선원의 생활 양식을 보여 주고 있다는 점에서 육지에 대응하는 의미에서의 바다 문학[Sea Literature]을 넘어서 대양을 향한 해양 문학[Ocean Literature] 혹은 해사 문학[Maritime Literature]을 형성한 것이다. 영미에서 해양 문학은 Maritime Literature이다. 특히 영국의 경우 이의 하위 장르인 해군 문학[Naval Literature]이 매우 발달해 있다. 김성식장보고(張保皐)이순신(李舜臣)을 제재로 삼은 시를 쓴 것이나 천금성이 해군 소설을 시도한 것은 주목의 대상이다. 이들에 의해 제1 해양화 시대의 한국 해양 문학이 정립된 것이라 하겠다.

3. 해양 문학의 지평

제2의 해양화와 더불어 해양 문학의 지평은 열리고 있다. 여기서 해양 문학의 지평을 장르론과 연계하면서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보고자 한다. 그 첫째 유형은 제1해양화 시대의 해양 문학의 주축을 이룬 해양 문학[Maritime Literature]이다. 실제 해양 국가 영국의 경우 근대 소설은 해양 소설 『로빈슨 크루소』[1719년]로부터 시작된다. 이를 필두로 제인 오스틴, 찰스 디킨스, 제임스 F. 쿠퍼, 애드가 알란 포, 허만 멜빌,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R. 키플링, 조셉 콘라드 등으로 이어지는 해양 문학의 역사를 보인다. 뒤늦게 해양을 지향한 우리의 경우 1960년대 이래 꾸준하게 해양 문학이 발달해 오고 있다. 하지만 해양화의 세계화에 상응하는 작품이 생산되고 있지 못하다. 해양을 주 무대로 하면서 해양 도시들을 잇는 거대 공간을 재현하고, 월경적이고 다문화적인 상상력을 내용으로 하는 서사가 요청된다.

둘째 유형은 해군 소설[Naval Novel]이다. 제인 오스틴과 해군의 관련성은 말할 것도 없지만 영국의 경우 넬슨(Nelson) 등 실명의 해군에 관한 소설들이 매우 발달해 있다. 우리의 경우 해군 소설의 전통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순신 서사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가 요청되는 한편 현대적인 해군 소설의 가능성을 탐문해 가야 할 시점을 맞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 유형은 연안역 문학이다. 선진국의 경우 해양 정책의 핵심 가운데 하나가 연안역 관리이다. 연안역 문학은 해양 생태 문학으로 발전할 수 있다. 지구적 시각에서 지역적 연안 문제를 재현하는 해양 생태 환경 문학은 해양 문학의 중요한 하위 장르로 위상을 갖게 될 전망이다. 이 밖에도 연안역 해양 문학은 다양한 해양 문화 콘텐츠를 배경으로 창작될 수 있다. 어촌과 어항, 등대, 항구, 해수욕장 등 바닷가 모든 공간이 작품의 무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그 동안 경험이라는 준거를 강조하는 동안 작가들이 해양 문학의 바탕이 되는 콘텐츠 탐구에 집중하지 않는 측면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해양 문학에 있어 경험의 강조는 해양 문학의 성취를 이끌어 내려는 기본적인 비평 전략에 불과하다. 특히 초기 논의는 해양 문학의 범주를 지나치게 확대하는 데 대한 반담론의 성격이 컸다. 이를 통해 해양 문학의 제 위상을 만들려 하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연구자들이 ‘경험의 작품화’라는 창작 방법론의 측면에서 해양 문학을 논의해 온 것이 사실이다. 말할 것도 없이 경험의 재현이 지니는 문학적 성과는 간과할 수 없다. 이러한 점을 전제하면서 이제 해양 문학은 문화 콘텐츠라는 관점에서 영역을 확장하고 해양 이해력 확대를 위한 과정이라는 점에서 열린 지평에서 생산되어야 할 것이다.

[해양 도시 부산의 해양 문화 축제]

부산의 해양 문화 축제는 부산의 항구와 포구, 이에 인접한 마을과 도시와 시장에서 전개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부산의 특성을 살린 해양 관련 문화제가 있다. 먼저 부산광역시 차원에서 전개하는 해양 관련 축제는 부산 바다 축제, 해맞이 부산 축제, 부산 비엔날레 바다 미술제 등이 있다. 이들은 모두 해양과 연관된다. 여기다 부산 국제 영화제도 해양 문화적 성격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부산이라는 해양 도시적 특성을 바탕에 두고 아시아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16개 구·군에서 진행되는 축제 가운데 해양 문화적 속성을 잘 드러내는 것으로 기장 멸치 축제와 자갈치 축제를 들 수 있다. 기장 멸치 축제는 ‘통통 튀는 생생 멸치! 정 넘치는 기장으로’라는 기치로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대변항 일대에서 열린다. 1997년 최초 개최된 이래 매년 5월 초에 관광 특산물을 배경으로 많은 관광객을 유인하고 있다.

자갈치 축제는 ‘오이소! 보이소! 사이소!’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시작된 자갈치 문화 관광 축제이다. 투박하면서도 정겨운 자갈치 아지매와 수산 시장 특유의 생동감, 다채로운 볼거리와 먹을거리, 살거리가 어우러진 해양 수산물 관광 축제이며 여는 마당, 오이소 마당, 보이소 마당, 사이소 마당으로 구성된다. 여는 마당에는 출어제, 길놀이, 만선제, 개막 축하 공연이 있고, 오이소 마당에는 맨손으로 활어 잡기, 생선회 정량 달기, 장어 이어달리기, 맥주 무료 시음 광장 등의 행사가 펼쳐진다. 보이소 마당은 생선회 요리 경연 대회, 자갈치 아지매 선발 대회 등이 있고, 사이소 마당으로 수산물 깜짝 경매, 자갈치 수산물 장터, 특산물 난전 거리 등이 있다.

자갈치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길놀이이다. 특산품인 다양한 수산물 형태의 각종 캐릭터와 조형물의 행렬, 모형 고깃배와 어부·해녀의 행렬, 전통 혼례 행렬 재현, 6·25 전쟁 당시의 피난 열차 행렬 등이 참가하여 시내를 축제 분위기로 인도한다. 출어제는 출항하는 어선의 안전과 만선을 기원하는 한국 어촌의 전통적인 민속제로, 고유의 춤과 노래가 어우러진 용왕굿이 선보이고, 만선제는 오색의 만선 깃발을 펄럭이며 남항으로 입항하는 고깃배를 맞이하는 행사로 불꽃놀이와 환상적인 레이저 쇼가 펼쳐진다.

이밖에 송도 바다 축제[서구], 절영 축제[영도구], 오륙도 축제[남구], 부산 바다 축제와 송정 해변 축제[해운대구], 광안리 어방 축제[수영구], 다대포 해넘이 축제[사하구], 가덕도 대항 숭어들이 축제와 명지 전어 축제[강서구], 기장 붕장어 축제[칠암리]와 기장 갯마을 마당극 축제[기장군] 등이 모두 해양 축제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유사하거나 중복된 경우가 없지 않으나 60여 개의 항구와 포구를 낀 해양 도시에 어울리는 축제라 할 수 있다. 다만 이벤트 차원을 넘어서 해당 지역의 장소와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것이 과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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