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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부터 1392년까지 고려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부산 지역의 역사와 문화. 고려 시대 부산은 도읍지 개경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동남쪽 변방의 한 지역이었다. 고려 초 부산은 동래현(東萊縣), 동평현(東平縣), 기장현(機張縣) 등 세 지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이들 고을은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은 속현(屬縣)으로, 동평현은 양주[현 양산시]에, 동래현과 기장현은 울주[현 울산광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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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 현존하는 고려 시대의 유물 및 유적. 부산 지역은 고려 시대와는 거리가 있는 곳이다. 그 이유는 첫째 고려의 수도는 신라와 달리 부산과 멀리 떨어진 개성이었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부각이 되지 못하는 위치에 있었다. 이러한 점이 인근의 김해나 울산 지역에 유력한 호족의 출현이 있게 하였지만, 부산에는 그러한 정황도 잘 찾아볼 수 없다. 둘째 고려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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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서 발굴된 고려 시대의 도자기. 부산 지역의 고려 유적인 절터, 성터, 무덤, 생활 유적지, 가마터 등에서 확인된 도자기는 11~13세기에 만들어진 청자가 주류를 이룬다. 그릇의 종류는 완(盌), 대접(大楪), 접시(楪匙), 잔(盞), 주전자[注子], 합(盒), 광구병(廣口甁)[아가리가 넓은 병], 유병(油甁), 향로(香爐), 장구[杖鼓]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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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서 출토된 고려~조선 시대의 도기. 도기(陶器)란 넓은 의미에서 인공 유약이 입혀지지 않는 질그릇을 총칭하지만, 좁은 의미로는 자기가 만들어지는 시기에 자기보다 소성 온도가 낮은 질그릇을 가리킨다. 중국에서는 넓은 의미에서 도기로 부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도기를 토기 및 자기와 구분해서 사용한다. 도기는 입자가 고운 백색의 점토를 바탕흙으로 사용하는데, 두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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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서 출토된 고려~조선 시대의 금속으로 만들어진 화폐. 부산 지역의 동전(銅錢)은 분묘, 성곽, 건물 터 등의 생활 유적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데, 고대의 동전은 아직 확인된 바가 없다. 고려 시대 이후의 동전은 덕천동 유적(德川洞遺蹟)과 만덕사지(萬德寺址)[부산광역시 기념물 제3호], 교리 유적(校里遺蹟), 동래 복천동 도로 개설 구간 내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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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서 출토된 고려 시대의 장신구. 고려는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진보된 사회였으므로 장신구의 패용이 많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신라나 가야와 달리 후장(厚葬)[관에 껴묻거리를 넣음] 풍습이 없어 출토 유물이 적은 탓에 내용을 상세히 파악하기 어렵다. 출토된 유물과 문헌으로 유추해 볼 때 고려의 장신구는 전 시대에 비해 제작 기법은 쇠퇴하였으나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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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부산 지역의 신앙. 고려는 다원 종교 및 다원 신앙의 시대였다. 불교가 국교(國敎)로서 크게 융성하였고, 유교(儒敎)는 정치사상으로 자리를 잡았으며, 불교와 유교에는 미치지 못하였으나 도교(道敎)도 널리 성행하였다. 그 밖에 지리 도참, 천신·산신·수신 숭배와 같은 전통 신앙, 무속 신앙과 성황 신앙도 성행하였다. 부산 지역의 불교는 원효 대사(元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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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에서 발굴된 고려 시대의 무덤 유적. 고려 시대의 부산은 도읍지 개경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이었고, 남북국 시대 때 고려와 대립 관계였던 후백제에 속한 까닭에 개국 초기 정치적으로 소외를 당했다. 그러나 고려 중기 동래 지역의 토착 세력인 동래 정씨(東萊鄭氏)가 중앙 정계에 진출하여 정치적 영향력이 커졌고, 이후 인종(仁宗)[재위 1122~1146] 대에 동래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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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부산 동래 온천의 모습과 휴양 문화. 한반도 동남단 끝에 자리 잡은 부산 지역은 해양성 기후의 영향으로 겨울에는 따뜻하고 온화하며 여름에는 시원한 바닷바람이 부는 등 쾌적한 기후 조건을 갖추고 있다. 바다를 끼고 있어 해수욕을 즐길 수 있고, 질병 치료에 효험이 있다는 동래 온천과 해운대 온천 등이 있어 요양과 휴식이 두루 가능하다. 동래 온천은 신라 때 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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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부산 지역 주민들의 생업과 생산 활동. 고려 시대 부산 지역민의 주된 생계 수단은 어업과 농업이었다. 바닷가에 가까운 지역에서는 고기잡이, 해산물 채취 등 어업에 종사하고, 내륙 쪽에서는 농사를 지었는데, 이는 세금 징수 품목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당시 부산 지역의 행정 구역은 동래현[현 동래구·금정구·해운대구·수영구·남구·연제구], 동평현[현 부산진구·중구·서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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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부산 지역의 농경 기술. 고려 시대의 농경 기술은 논농사와 밭농사의 경지 이용 방식, 농기구, 수리 시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접근할 수 있으나 아직 통일된 견해가 없다. 논농사는 매년 작물을 심는 상경 연작 농법 단계로 보는 입장과 올해 농사를 짓고 이듬해 쉬는 휴한 농법 단계로 보는 입장으로 나누어진다. 논농사는 휴한 농법에서 서서히 상경 농법으로 바뀌어 12세기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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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부산 지역의 수산물 생산과 유통. 고려 시대 수산물의 생산과 가공 그리고 유통은 대부분 소(所)라는 특정 물품을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특수 행정 구역에서 이루어졌다. 소 가운데 수산물 생산과 관련해서는 각각 미역, 소금, 물고기 수집을 전담하던 곽소(藿所)·염소(鹽素)·어량소(魚梁所)가 존재하였다. 곽소는 바위에 생성된 미역밭[藿田]에서 미역을 전문으로 채취하는 지역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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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부산 지역에서 발생한 항쟁과 전쟁. 고려 시대 부산에서는 내적 요인으로 항쟁이 발생하였고, 외침이 있을 때도 전쟁을 겪었다. 내적 요인에 의한 항쟁은 신라 말 고려 초 고려와 후백제 간의 전쟁, 무신 정권기의 농민 항쟁과 삼별초 항쟁 등이다. 외침에 따른 전쟁으로는 11세기 초 동여진(東女眞) 해적의 침입, 고려와 몽골 전쟁, 고려와 원나라 연합군의 일본 정벌, 고려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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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왜구를 막기 위해 쌓은 부산 지역의 국방 시설. 일본의 해적 집단인 왜구는 13~14세기에 고려 및 중국의 해안 지방과 섬들을 침범하고, 때로는 내륙 깊숙이까지 들어와 노략질과 살육을 자행하였다. 왜구는 1223년(고종 10) 금주[현 김해]의 침략을 시작으로 고종 대에 5차례 출몰하였고, 1350년(충정왕 2)에도 우리나라 해안 지역을 침탈하였는데, 왜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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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부산 지역의 수로(水路)와 육로를 통한 인적·물적 교류 활동. 현재의 부산 지역에 해당하는 고려 시대의 군현은 동래현(東萊縣), 동평현(東平縣), 기장현(機張縣)이다. 1018년(현종 9) 군현제 개편을 통해 동래현과 기장현은 울주(蔚州)[현 울산광역시]의 속현(屬縣)으로, 동평현은 양주(梁州)[현 양산시]의 속현으로 편성되었다. 이후 예종·인종 연간에 동래현과 기장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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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바다를 통한 부산 지역과 다른 나라와의 교류 양상. 고려의 대외 교류는 후삼국 통일 전쟁 전후 시기에 시작되었다. 중국과는 919년(태조 2)부터 오월·후량·후진 등에 사신을 파견하였고, 송나라가 중국을 통일한 이후 불편한 시기도 있었지만 1173년(명종 3)까지 교류가 지속되었다. 일본과의 교류는 후삼국 통일 직후에 시작되었다. 11세기 초반 고려가 도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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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부산 지역의 지방 행정 조직. 고려 시대 부산 지역에는 동래현(東萊縣), 동평현(東平縣), 기장현(機張縣) 등 3개의 현이 있었다. 동래현은 1018년(현종 9) 이후부터 인종[재위 1122~1146] 대 이전까지 속현(屬縣)인 시기가 있었으나 나머지 기간에는 주현(主縣)의 위치를 유지하였다. 속현일 때는 울주(蔚州)[현재의 울산광역시]에 속해 있었다. 『고려사(高麗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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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부터 조선 전기까지 부산광역시에 있던 지방 행정 구역. 거칠산국(居柒山國)이 동래(東萊)로 개명된 때는 757년(경덕왕 16) 지방 제도 명칭을 한자식으로 고친 데서 비롯되었다. 이때 세 가지 방법이 사용되었다. 첫째 토속적인 재래의 이름은 그 소리를 따라 한자로 음역한 음역식(音譯式)으로 고친 것, 둘째 그 의미를 한역(漢譯)하여 쓴 훈독식(訓讀式)으로 고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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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부터 조선 전기에 이르기까지 부산 지역에 설치되었던 특수 행정 구역. 향·소·부곡(鄕·所·部曲)은 지방의 특수한 하급 행정 구역으로, 일반 양민이 아닌 노비·천민 등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 모여 살던 촌락 집단이었다. 고려 시대에 향·소·부곡 등의 특수 행정 구역을 설치했던 것은, 국가 운영에 필요한 세금을 효율적으로 거두기 위해서였다. 고려는 전쟁 포로나 범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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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동에 설치된 특수 행정 구역. 고려 전기의 부곡(部曲)은 대개 전쟁 포로나 범죄인을 집단 거주시키거나 반란이 일어난 향읍(鄕邑)의 지위를 떨어뜨리는 데서 생긴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고려는 후삼국 통합 전쟁을 하면서 고려에 저항한 호족 휘하의 주민들을 강제로 부곡민으로 편성하기도 하였다. 후삼국 시대 부산 지역은 견훤(甄萱)의 영향력 아래 있었던 것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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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고촌리 인근에 있던 지방 통치 구역. 고려 전기의 부곡(部曲)은 대개 전쟁 포로나 범죄인을 집단 거주시키거나 반란이 일어난 향읍(鄕邑)의 지위를 떨어뜨리는 데서 생긴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고려는 후삼국 통합 전쟁을 하면서 고려에 저항한 호족 휘하의 주민들을 강제로 부곡민으로 편성하기도 하였다. 후삼국 시대 부산 지역은 견훤(甄萱)의 영향력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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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부산광역시 영도구 동삼동 지역에 있던 지방 통치 구역. 고려 전기의 부곡(部曲)은 대개 전쟁 포로나 범죄인을 집단 거주시키거나 반란이 일어난 향읍(鄕邑)의 지위를 떨어뜨리는 데서 생긴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고려는 후삼국 통합 전쟁을 하면서 고려에 저항한 호족 휘하의 주민들을 강제로 부곡민으로 편성하기도 하였다. 후삼국 시대 부산 지역은 견훤(甄萱)의 영향력 아래 있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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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고촌리에 있던 지방 통치 구역. 고려 전기의 부곡(部曲)은 대개 전쟁 포로나 범죄인을 집단 거주시키거나 반란이 일어난 향읍(鄕邑)의 지위를 떨어뜨리는 데서 생긴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고려는 후삼국 통합 전쟁을 하면서 고려에 저항한 호족 휘하의 주민들을 강제로 부곡민으로 편성하기도 하였다. 후삼국 시대 부산 지역은 견훤(甄萱)의 영향력 아래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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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동에 설치된 지방 통치 구역. 고려 전기의 부곡(部曲)은 대개 전쟁 포로나 범죄인을 집단 거주시키거나 반란이 일어난 향읍(鄕邑)의 지위를 떨어뜨리는 데서 생긴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고려는 후삼국 통합 전쟁을 하면서 고려에 저항한 호족 휘하의 주민들을 강제로 부곡민으로 편성하기도 하였다. 후삼국 시대 부산 지역은 견훤(甄萱)의 영향력 아래 있었던 것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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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과 일광면에 있던 지방 통치 구역. 고려 전기의 부곡(部曲)은 대개 전쟁 포로나 범죄인을 집단 거주시키거나 반란이 일어난 향읍(鄕邑)의 지위를 떨어뜨리는 데서 생긴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고려는 후삼국 통합 전쟁을 하면서 고려에 저항한 호족 휘하의 주민들을 강제로 부곡민으로 편성하기도 하였다. 후삼국 시대 부산 지역은 견훤(甄萱)의 영향력 아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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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과 일광면에 설치된 지방 통치 구역. 고려 전기의 부곡(部曲)은 대개 전쟁 포로나 범죄인을 집단 거주시키거나 반란이 일어난 향읍(鄕邑)의 지위를 떨어뜨리는 데서 생긴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고려는 후삼국 통합 전쟁을 하면서 고려에 저항한 호족 휘하의 주민들을 강제로 부곡민으로 편성하기도 하였다. 후삼국 시대 부산 지역은 견훤(甄萱)의 영향력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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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와 조선 전기 부산광역시 금정구 두구동 일대에 있던 동래현 소속의 지방 통치 구역. 고려 시대의 향·부곡의 기원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여주목 고적 등신장조에 의하면 “신라가 주군(州郡)을 설치할 때 전정(田丁)이나 호구가 현이 될 만하지 못한 곳에는 향 혹은 부곡을 설치하여 소재 읍에 속하게 하였다”라고 하여 그 연원을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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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부산광역시 남구 용당동에 설치된 지방 통치 구역. 고려 전기의 부곡(部曲)은 대개 전쟁 포로나 범죄인을 집단 거주시키거나 반란이 일어난 향읍(鄕邑)의 지위를 떨어뜨리는 데서 생긴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고려는 후삼국 통합 전쟁을 하면서 고려에 저항한 호족 휘하의 주민들을 강제로 부곡민으로 편성하기도 하였다. 후삼국 시대 부산 지역은 견훤(甄萱)의 영향력 아래 있었던 것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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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에 있는 고려 시대에 일본 사신을 접대하던 곳. 김해 명월산 아래의 구랑촌(仇郞村)에 있던 견조암 수참은 조선 1407년(태종 7) 삼포(三浦)[염포, 내이포, 부산포] 개항 이전 시기에 일본 사신인 왜사(倭使)를 접대하던 곳이었다. 견조암 수참은 고려 시대 때 일본과의 외교 및 무역을 담당하던 금주(金州)[김해] 객관(客館)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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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부산 지역에 설치된 육상 교통망. 『고려사(高麗史)』 권82, 병2 참역에 “금주도(金州道)는 31개소를 관할한다. 덕산·성잉·적정·금곡·대역[금주]…… 양주역·황산·원포·위천[양주], 소산[동래], 아등량·기장역, 굴화·간곡[울주], 덕천[언양][金州道掌三十一 德山省仍赤頂金谷大驛(金州) … 梁州驛黃山源浦渭川(梁州)蘇山(東萊)阿等良機長驛屈火肝谷(蔚州)德川(彦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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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 부산 동래에서 울주로 가는 관문에 해당하는 역참. 『고려사(高麗史)』 권82, 병2 참역에 “금주도는 31개소를 관할한다. …… 아등량·기장역, 굴화·간곡[울주], 덕천[언양][金州道掌三十一 …… 阿等良·機長驛·屈火·肝谷(蔚州)·德川(彦陽)]”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울산부 읍지(蔚山府邑誌)』[1832] 역원에는 “간곡역(肝谷驛)은 울산 도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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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부산광역시 금정구 선두구동에 있던 양산·울산 방면 교통로상의 역참. 『고려사(高麗史)』 권82, 병2 참역에 “금주도는 31개소를 관할한다. …… 양주역·황산·원포·위천[양주], 소산[동래], 아등량·기장역[金州道掌三十一 …… 梁州驛·黃山·源浦·渭川(梁州)蘇山(東萊)阿等良·機長驛……]”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권23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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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와 조선 전기 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 월평리에 설치된 역참. 아등량역(阿等良驛)이 위치한 기장군 정관읍 월평리는 신라 초기 우시산국·거칠산국의 정벌 과정에서 군사적 요충지이던 장토지야(長吐之野)에 해당하는 곳이다. 이러한 경상도 동남부 권역에서의 지리적 입지가 계승되어 현종 때 22역도(驛道)가 형성되면서 이 지역에는 금주도(金州道)의 아등량역이 설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