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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의 생업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3070
한자 高麗時代-生業
영어의미역 Occupations of the Goryeo Dynasty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고려/고려
집필자 이정희

[정의]

고려 시대 부산 지역 주민들의 생업과 생산 활동.

[개설]

고려 시대 부산 지역민의 주된 생계 수단은 어업과 농업이었다. 바닷가에 가까운 지역에서는 고기잡이, 해산물 채취 등 어업에 종사하고, 내륙 쪽에서는 농사를 지었는데, 이는 세금 징수 품목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당시 부산 지역의 행정 구역은 동래현[현 동래구·금정구·해운대구·수영구·남구·연제구], 동평현[현 부산진구·중구·서구·동구·영도구·사상구·사하구·북구], 기장현 등 3개 지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특수 행정 구역은 동래현에 향 1곳과 부곡 4곳, 기장현에는 부곡 4곳이 있었다.

[수산업]

부산은 해안을 끼고 있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바다와 관련된 생산 활동이 많았다. 고려 시대 부산 지역민이 납부했던 공물은 고려 때 편찬된 서적은 아니지만 1425년(세종 7)의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나 1454년(단종 2)의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를 통해 추측해 볼 수 있다. 부산 주민은 김, 미역, 우뭇가사리, 전복, 말린 조개, 해삼, 대구, 청어, 방어, 상어 가죽, 생선 껍질, 어교(魚膠)[부레풀]과 같은 수산물을 세납하였다. 이를 통해 해안가 주민들은 고기를 잡거나 해산물을 채취하며 살았음을 알 수 있다.

부산에서는 식생활의 필수품인 소금도 생산되었다. 우리나라는 암염이 없는 관계로 소금은 절대적으로 바닷물을 증발시켜서 만드는 해염에 의존해 왔다. 부산 해안에는 예부터 염전이 많아 주민들은 소금을 생산해 생계를 이었다. 15세기 기록에 의하면 동래현·동평현·기장현에 각각 25좌, 40좌, 11좌의 염분(鹽盆)[소금가마]이 있었다. 고려 시대 수공업을 전문으로 하는 특수 행정 구역인 소(所) 가운데 소금을 전문으로 생산하는 곳을 염소(鹽所)라고 하였다. 당시 부산 지역에 염소가 있었다는 기록이 없는 만큼, 부산 바닷가 주민들은 개인적으로 소금을 생산해 세금을 내고, 나머지는 판매하여 생계를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충선왕(忠宣王)[재위 1308~1313] 때 소금 전매제가 시행된 이후 변화가 생겨 주민들은 생산한 소금 전부를 관에 바치고, 땅을 경작하거나 정부로부터 반대급부를 받아 생활하였다.

[농업]

바닷가에서 떨어진 지역에서는 농사를 지었다. 고려 시대 부산의 토지는 『세종실록지리지』의 기록과 비슷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토지의 면적은 174가구가 사는 기장 지역이 730결[1결 1,200여 평], 398가구인 동래현[동평현 포함]은 1,723결 정도였다. 논밭에서 재배한 작물은 쌀, 콩, 보리 등의 곡식과 목면, 모시, 삼베, 종이, 참기름, 들기름, 표고 등의 가공품을 생산하여 생계를 유지하거나 세금을 냈다. 향(鄕), 부곡(部曲)에 사는 주민들은 관청에 딸린 토지를 경작하여 생계를 유지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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