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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의 지역 교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3261
한자 高麗時代-地域交流
영어의미역 Regional Trade during the Goryeo Dynasty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고려/고려
집필자 한정훈

[정의]

고려 시대 부산 지역의 수로(水路)와 육로를 통한 인적·물적 교류 활동.

[개설]

현재의 부산 지역에 해당하는 고려 시대의 군현은 동래현(東萊縣), 동평현(東平縣), 기장현(機張縣)이다. 1018년(현종 9) 군현제 개편을 통해 동래현과 기장현은 울주(蔚州)[현 울산광역시]의 속현(屬縣)으로, 동평현은 양주(梁州)[현 양산시]의 속현으로 편성되었다. 이후 예종·인종 연간에 동래현과 기장현은 지방관이 파견되는 주현(主縣)으로 승격하였다.

[행정 업무를 통한 교류 양상]

동래현, 동평현, 기장현이 속현이었을 때 지방관이 파견된 상급 고을인 영현(領縣)과의 행정적인 교류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들 고을 간의 업무상 교류는 22역도(驛道) 중 하나인 금주도(金州道)의 역로망(驛路網)과 역전(驛傳) 업무를 담당하였던 역참 시설을 통해 이루어졌다.

울주의 속현이었던 동래현과 기장현의 명령 하달 체계는 다음과 같다. 계수관(界首官)인 동경[현 경주]에서 울주 치소(治所)로 하달된 행정 업무는 울주의 굴화역(屈火驛)~간곡역(肝谷驛)~기장현 아등량역(阿等良驛)~동래현 소산역(蘇山驛)을 경유하여 동래현·동평현 치소(治所)에 각각 도착하였다. 양주의 속현인 동평현에는 역참 시설이 없어 추측하기 어렵지만, 낙동강 수로나 강변을 따라 형성된 육로를 통해 업무 하달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이러한 명령 전달 노선이 지역 내 교류에 필요한 간선(幹線) 기능을 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조세·공물을 통한 교류 양상]

한편 각 고을에서 거두어들인 조세와 공물을 중앙으로 옮기는 경로를 통해 경제적 교류 양상을 유추할 수 있다. 지방 특산물인 공물(貢物)은 일부 육상 교통로를 통해 개경(開京)으로 운반하였을 가능성도 있지만 부산에서 개경(開京)까지의 먼 거리를 생각하면 곡식, 소금 같은 현물세(現物稅)는 바닷길을 통한 조운(漕運)이 널리 이용되었을 것이다.

조운선(漕運船)은 남해를 거쳐 서해의 연안 항로를 따라 북상하여 예성강 하구의 벽란도(碧瀾渡)를 통해 최종 목적지인 경창(京倉)에 이르렀을 것이다. 부산을 비롯해 인근 양산, 울산 등지에서 거둔 세금은 합포현(合浦縣)[현 마산]에 있던 석두창(石頭倉)에 1차로 취합, 보관하였다가 이듬해 5월까지 경창으로 운반하였다. 13~14세기 우리나라 연근해에 출현한 왜구 집단은 동래현 등의 치소를 약탈하면서 해상에서 석두창으로 향하는 조운선을 약탈 혹은 나포해 갔다. 이런 내용을 통해 대규모 물자 수송이 해운(海運)을 통해 빈번히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대일 무역을 통한 교류 양상]

한편 11세기 중엽~13세기 중엽 고려의 대일 무역이 금주(金州)[현 김해]의 객관(客館)을 통해 진봉 무역(進奉貿易)의 형태로 이루어졌다. 사신의 외교 업무와 공무역(公貿易)뿐 아니라 상인들끼리의 사무역(私貿易)이 함께 이루어졌던 금주 객관은 오늘날의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에 있었다. 단일 대일 외교 창구와 공무역이라고 하면 조선 시대 초량 왜관을 떠올리는 것이 보통이지만 고려 때 이미 유일한 대일 교류의 창구가 부산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낙동강 하구라는 금주 객관의 위치에서 유추해 볼 때 왜(倭)와의 교류를 위한 인적·물적 자원은 낙동강 수로와 연안 해로 그리고 금주도(金州道) 역로망을 비롯한 육상로를 통해 활발히 유통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의의와 평가]

고려 시대의 지역 교류는 부산 지역의 교통 운수 활동뿐만 아니라 대일 관계사를 재조명할 수 있는 중요한 키워드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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