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30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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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三韓時代-地域交流 |
영어의미역 | Regional Trade of the Three Han States Period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고대/초기 국가 시대/삼한 |
집필자 | 이재현 |
[정의]
삼한 시대 부산 지역의 집단이 다른 집단과 물품이나 다양한 정보를 주고받은 행동이나 반응.
[개설]
기원 후 3세기 무렵에 기록된 중국의 사서인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에는 “변한과 진한을 합쳐 24개의 국(國)이 형성되어 있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국은 규모에 차이가 있지만, 대개 현재의 군(郡)이나 분지를 단위로 하는 지역 정치체(政治體)라고 할 수 있다. 이들 정치체 간에는 정치적 또는 경제적 목적에 따라 다양한 경쟁과 교류가 이루어졌는데, 고고학적 자료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철기와 청동기의 교역이다.
철기는 철광산의 지역적 편재 때문에, 청동기는 원료 수급의 외부 의존성 때문에 특정 지역에서 생산되어 유통될 수밖에 없는 물품이다. 철광산은 울산·양산·김해 인근에 발달되어 있으므로, 철 생산도 당연히 이들 지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실제 경주시 황성동에서는 대규모의 삼한~삼국 시대 제철 유적이 확인되었는데, 울산시 달천 광산의 철광석을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 경상남도 창원 다호리 유적의 널무덤[木棺墓]에서는 철광석과 단야 도구가 부장품으로 발견되기도 하였다.
또한 『삼국지』 위서 동이전의 변진조에는 “변진에서 생산된 철기가 낙랑군과 대방군의 두 군과 마한, 동예 등의 한반도 각지 및 일본에까지 공급되었고, 시장에서의 매매에 철을 돈처럼 사용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변진에서 생산한 철이 한반도 전역에 공급되었을 뿐만 아니라 당시 무덤에 다량의 철기를 부장하는 매장 습속을 고려하면 생산량은 엄청났다고 할 수 있다.
청동기는 생산 유구(遺構)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영남 지역만의 특징적인 청동기가 있다는 점에서 독자적인 생산을 추론할 수 있고, 분포 밀도를 통해 생산 중심지를 알 수 있다. 삼한 시대의 청동기는 낙동강 상류의 상주에서부터 대구, 영천, 경주, 창원, 김해 등지에 주로 분포한다. 현재까지 청동기 발견 상황을 보면,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후 1세기까지는 생산 중심지가 대구에서 경주에 이르는 지역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다가 2세기부터는 김해 지역에서만 부분적으로 청동기가 생산되었다.
이들 지역에서 생산된 청동기는 주요 교통로를 따라 여러 지역으로 이동되었을 것이다. 설사 물품의 직접적인 이동이 아니라 하더라도 유사한 제품이 출토되는 것은 모방품의 제작을 통해 동일한 상징체계를 공유할 정도로 서로 활발한 교류가 있었다는 증거이다.
고고학적 발굴과 연구에 따르면, 기원전 1세기 무렵부터 영남 지역에서는 본격적인 정치체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즉, 상주·대구·경산·영천·경주·김해 등지가 국의 중심지를 형성하였고, 각 지역의 정치 세력들은 위세품(威勢品)과 필수 자원을 공유하면서 광역적인 정치적 연결망을 형성하였다. 2세기 중엽 이후에는 이전 시기에 선진 지역이던 경상북도 내륙 지역이 상대적으로 쇠퇴하고, 경주·울산·포항·동래·김해 등 동남 해안 지역이 급성장하였다.
더불어 청동기 문화도 쇠퇴하는데, 그것은 김해·울산·경주를 중심으로 한 철기 문화의 발전에 따른 당연한 결과이다. 또 대형의 덧널무덤[木槨墓]을 조성하여 대량의 철기와 토기, 칠기 등을 부장하는데, 매장 의례에 막대한 기물을 소모함으로써 그러한 기물의 생산과 유통을 장악한 세력이 권력을 더욱 확대할 수 있었고, 철기 생산의 중심지인 경주와 울산, 김해 중심의 유통망이 형성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부산 지역 출토 유물을 통해 본 지역 교류]
부산에서는 중국이나 낙랑에서 직접 수입한 유물이 발견된 예가 거의 없다. 삼한 전기에 해당하는 기장군 정관읍 방곡리 유적 가-1호 구덩무덤[土葬墓]에서 출토된 철검의 청동제 손잡이는 평양 부근 출토품과 같은 형태이지만, 그러한 형태는 경상북도 지역에서도 확인되기 때문에 경상북도 지역과의 교류 결과일 가능성도 있다. 기장군 정관읍 방곡리 널무덤이나 부산광역시 금정구 구서동 유적에서 출토된 토기도 영남의 다른 지역에서 보편적으로 확인되는 형태여서 물품의 교류는 아니라 하더라도 제작 기술과 디자인을 공유할 정도로 교류가 활발하였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노포동 고분군에서 출토된 철기나 토기는 울산, 경주 등 동남부 지역의 공통적인 양식이다. 울산이 대표적인 철 산지임을 감안하면, 철기는 울산 인근에서 유입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 밖에 부산 동래 패총에서는 3~4세기에 해당하는 백제와 대구 지역, 일본 지역의 토기가 출토되어 다른 지역과의 활발한 교류 양상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