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43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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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古知島部曲 |
영어의미역 | Lowest-class People’s Town in Goji Island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부산광역시 영도구 동삼동 아치섬 |
시대 | 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정미숙 |
[정의]
고려 전기 부산광역시 영도구 동삼동 지역에 있던 지방 통치 구역.
[제정 경위 및 목적]
고려 전기의 부곡(部曲)은 대개 전쟁 포로나 범죄인을 집단 거주시키거나 반란이 일어난 향읍(鄕邑)의 지위를 떨어뜨리는 데서 생긴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고려는 후삼국 통합 전쟁을 하면서 고려에 저항한 호족 휘하의 주민들을 강제로 부곡민으로 편성하기도 하였다. 후삼국 시대 부산 지역은 견훤(甄萱)의 영향력 아래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따라서 고려 건국 이후 동래는 울주군의 속현으로 강등되고 동래현(東萊縣)의 영역 안에 4개의 부곡, 1개의 향(鄕), 3개의 염소(鹽所)가 설치되었다.
[관련 기록]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23 동래현 고적(古跡)에 “고지도 부곡(古知道部曲) 즉 고지도(古智島)를 말한다. 조정 부곡(調井部曲) 현 북쪽 20리에 있다. 형변 부곡(兄邊部曲) 현의 남쪽 해안에 있다. 신라 때는 남해 신(南海神)을 여기에 모셨다. 중사(中祀)에 실려 있다. 부산 부곡(富山部曲) 즉 부산(釜山)을 말한다. 생천향(生川鄕) 현의 남쪽 20리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동래현에 “부곡이 둘이니 고지도와 조정이며, 향(鄕)이 하나이니 생천(生川)이다”라고 되어 있다.
[내용]
고지도 부곡은 부산진 앞바다에 있던 고지도라는 섬에 있었다. 고지도는 일제 강점기 부산진 매축 때 없어진 곳이다. 고지도 부곡의 주민은 일반 군현민이 내는 기본 세목[租·布·役]을 부담하는 것은 물론, 세포(稅布)·잡물(雜物)·요공(徭貢)을 추가적으로 부담하였다. 또는 집단적으로 특정 지역의 둔전(屯田) 경작에 동원되기도 하였다.
[변천]
고지도 부곡이 사라진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12세기 이후 민의 항쟁이 전국적으로 발생하면서 향·부곡 등의 특수 행정 구역은 소멸하게 된다. 고지도 부곡도 이 시기 이후 조선 시대에 일반 촌락으로 승격하였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의의와 평가]
고려 시대에 지방을 부곡제(部曲制) 라는 특수 행정 구역을 통해 제어하였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