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30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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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富山部曲 |
영어의미역 | Lowest-class People’s Town in Busa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동 |
시대 | 고려/고려 |
집필자 | 정미숙 |
[정의]
고려 시대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동에 설치된 지방 통치 구역.
[제정 경위 및 목적]
고려 전기의 부곡(部曲)은 대개 전쟁 포로나 범죄인을 집단 거주시키거나 반란이 일어난 향읍(鄕邑)의 지위를 떨어뜨리는 데서 생긴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고려는 후삼국 통합 전쟁을 하면서 고려에 저항한 호족 휘하의 주민들을 강제로 부곡민으로 편성하기도 하였다. 후삼국 시대 부산 지역은 견훤(甄萱)의 영향력 아래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따라서 고려 건국 이후 동래는 울주군의 속현으로 강등되고 동래현(東萊縣)의 영역 안에 4개의 부곡, 1개의 향(鄕), 3개의 염소(鹽所)가 설치되었다.
[관련 기록]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23 동래현 고적(古跡)에 “고지도 부곡(古知道部曲) 즉 고지도(古智島)를 말한다. 조정 부곡(調井部曲) 현 북쪽 20리에 있다. 형변 부곡(兄邊部曲) 현의 남쪽 해안에 있다. 신라 때는 남해신(南海神)을 여기에 모셨다. 중사(中祀)에 실려 있다. 부산 부곡(富山部曲) 즉 부산(釜山)을 말한다. 생천향(生川鄕) 현의 남쪽 20리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내용]
부산 부곡은 부산포(富山浦) 일대로, 지금의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동 부산진 일대로 비정한다. 부산(富山)은 15세기까지 이 지역의 명칭이었으며, 이후 부산(釜山)이라는 지금과 같은 한자로 바뀌었다. 부산이라는 지명의 연원이 되는 곳으로 지금의 증산(甑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