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생천향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1478
한자 生川鄕
영어의미역 Saengcheonhyang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동
시대 고려/고려 전기
집필자 정미숙

[정의]

고려 전기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동에 설치된 특수 행정 구역.

[제정 경위 및 목적]

고려 전기의 부곡(部曲)은 대개 전쟁 포로나 범죄인을 집단 거주시키거나 반란이 일어난 향읍(鄕邑)의 지위를 떨어뜨리는 데서 생긴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고려는 후삼국 통합 전쟁을 하면서 고려에 저항한 호족 휘하의 주민들을 강제로 부곡민으로 편성하기도 하였다. 후삼국 시대 부산 지역은 견훤(甄萱)의 영향력 아래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따라서 고려 건국 이후 동래군은 울주군의 속현으로 강등되고 동래현(東萊縣)에 4개의 부곡, 1개의 향(鄕), 3개의 염소(鹽所)가 설치되었다.

[관련 기록]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23 동래현 고적(古跡)에 “고지도 부곡(古知道部曲) 즉 고지도(古智島)를 말한다. 조정 부곡(調井部曲) 현 북쪽 20리에 있다. 형변 부곡(兄邊部曲) 현의 남쪽 해안에 있다. 신라 때는 남해 신(南海神)을 여기에 모셨다. 중사(中祀)에 실려 있다. 부산 부곡(富山部曲) 즉 부산(釜山)을 말한다. 생천향(生川鄕) 현의 남쪽 20리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동래현에 “부곡이 둘이니 고지도와 조정이며, 향이 하나이니 생천(生川)이다”라고 되어 있다.

[내용]

동래현 읍치(邑治)는 고려 시대 지금의 부산광역시 수영구 망미동 일대에서 조선 시대 동래구 복천동 일대로 옮겨 왔다.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을 중심으로 남쪽 20리인 생천향의 위치는 남구 대연동 일대로 비정한다. ‘향’은 마을 시골이라는 의미로 부곡의 이두어가 향곡(鄕曲)이므로 향과 부곡은 같은 의미이다. 향의 주민 역시 부곡민과 같이 주현민에 비해 추가적인 세를 부담하거나 둔전 경작에 동원되었다.

[변천]

생천향이 사라지는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12세기 이후 민의 항쟁이 전국적으로 발생하면서 향·부곡 등의 특수 행정 구역은 소멸하게 된다. 생천향도 이 시기 이후 조선 시대에 일반 촌락으로 승격하였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의의와 평가]

고려 시대에 지방을 부곡제(部曲制)라는 특수 행정 구역을 통해 제어하였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