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41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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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調井部曲 |
영어의미역 | Lowest-class People’s Town in Jojeo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부산광역시 금정구 두구동 |
시대 | 고려/고려,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기섭 |
[정의]
고려 시대와 조선 전기 부산광역시 금정구 두구동 일대에 있던 동래현 소속의 지방 통치 구역.
[제정 경위 및 목적]
고려 시대의 향·부곡의 기원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여주목 고적 등신장조에 의하면 “신라가 주군(州郡)을 설치할 때 전정(田丁)이나 호구가 현이 될 만하지 못한 곳에는 향 혹은 부곡을 설치하여 소재 읍에 속하게 하였다”라고 하여 그 연원을 밝히고 있다.
신라의 향·부곡은 토지와 인구수의 규모에 따라 현의 규모가 되지 못하는 곳에 설치되었다. 고려에 들어와서도 기본적으로 그 원칙에 따랐을 것으로 이해되지만, 규모가 큰 부곡이 있는 것으로 보아 또 다른 요인이 있었을 것으로 본다. 그 요인으로 고려 왕조 개창기의 정치적 이해관계와 관련하여 왕건(王建)의 반대 입장에 선 지역에 대해 향·부곡으로 재편하였을 가능성을 고려해 볼 수 있다. 동래현은 후삼국의 쟁패기에 견훤(甄萱)의 세력 아래에 있었기 때문에 고려 전기 지방 제도를 개편할 때 속현으로 편제되었고, 조정 부곡(調井部曲) 역시 군현이 되지 못하고 그대로 부곡으로 편제되었을 것이다. 조정 부곡도 이 같은 연원에 의해 설치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관련 기록]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동래현에 “부곡이 둘이니 고지도와 조정이며, 향이 하나이니 생천이다[部曲二 古智道·調井 鄕一 生川]”라고 기록되어 있고,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동래현 고적조에 “동래현에는 4개의 부곡과 1개의 향이 부속되어 있었다. 고지도 부곡(古知島部曲), 조정 부곡, 형변 부곡(兄邊部曲), 부산 부곡(富山部曲), 생천향(生川鄕)이 그것이다”라고 적혀 있다.
[내용]
고려 전기 동래현은 울주군의 속현으로서 조정 부곡은 동래현에 부속된 부곡 가운데 하나이었다. 조정 부곡은 현의 북쪽 8㎞[20리] 지점에 위치한 것으로 전한다. 오늘날의 부산광역시 금정구 두구동 죽전 마을 뒤쪽에 조정언 비(調井堰碑)라는 비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이 조정 부곡이 있었던 곳으로 비정할 수 있다. 이곳의 주민은 일반 군현민이 내는 기본 세목[租·布·役]을 부담하는 것은 물론, 세포(稅布)·잡물(雜物)·요공(徭貢)을 추가적으로 부담하였다. 또는 집단적으로 특정 지역의 둔전(屯田) 경작에 동원되기도 하였다.
[변천]
고려 시기의 향·부곡은 12세기 이후 서서히 소멸되어 가는데, 15세기 중반에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부산 인근의 향·부곡 가운데 생천향, 고지도 부곡, 조정 부곡은 당시까지 남아 있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이로 보아 조정 부곡은 조선 전기까지 존재하다가 그 이후 직촌화(直村化)되었을 것이다. 지금의 조정언 비가 있는 곳의 지리적 여건으로 보아 조선 후기에는 농경 활동과 관련하여 조정언(調井堰)이 조성되어 농경을 하던 조그만 마을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의의와 평가]
현재 조정 부곡이 자리한 것으로 추정되는 지점에는 연꽃 단지가 조성된 연못이 있고, 바로 곁에는 조선 후기에 작성된 조정언 비가 남아 있다. 부족한 부산 지역의 고려 시대 문화 콘텐츠로 더욱 활용 가치가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