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4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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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阿等良驛 |
영어의미역 | Adeungryang Statio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 월평리 |
시대 | 고려/고려,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한정훈 |
[정의]
고려 시대와 조선 전기 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 월평리에 설치된 역참.
[제정 경위 및 목적]
아등량역(阿等良驛)이 위치한 기장군 정관읍 월평리는 신라 초기 우시산국·거칠산국의 정벌 과정에서 군사적 요충지이던 장토지야(長吐之野)에 해당하는 곳이다. 이러한 경상도 동남부 권역에서의 지리적 입지가 계승되어 현종 때 22역도(驛道)가 형성되면서 이 지역에는 금주도(金州道)의 아등량역이 설치되었다.
[관련 기록]
『고려사(高麗史)』 권82 병2 참역에 “금주도는 31개소를 관할한다. …… 양주역·황산·원포·위천[양주], 소산[동래], 아등량·기장역, 굴화·간곡[울주], 덕천[언양][金州道掌三十一 …… 梁州驛黃山源浦渭川(梁州)蘇山(東萊)阿等良機長驛屈火肝谷(蔚州)德川(彦陽)]”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내용]
고려 시대 기장현에는 아등량역과 함께 기장역이 위치하였다. 그런데 『고려사』 참역조의 금주도에 기재되어 있는 ‘아등량’과 ‘기장역’은 표기 방식이 일반적인 것과 달리 기록되어 있어 논란의 소지가 있다. 하지만 조선 전기 기장현의 역참 시설 현황과의 비교를 통해 아등량역은 아월역(阿月驛)으로, 기장역은 기장신역(機張新驛)을 거쳐 신명역(新明驛)으로 각각 계승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 시대 아등량역은 동쪽의 기장역[기장], 서쪽의 양주역(梁州驛)[양산], 남쪽의 소산역(蘇山驛)[동래], 북쪽의 간곡역(肝谷驛)[울산]과 연결되어 있는 금주도 내의 주요 역참 시설이었다. 기장현의 아등량역은 동래[소산역]와 울주[간곡역]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였다. 이처럼 동래~울주 내륙 지역에 역참 시설이 발달한 반면, 해안 지역에는 그렇지 못하였다.
기장 읍성에서 북쪽으로 48㎞[120리] 떨어진 울주로의 연해 교통로상에는 역참 시설이 없었다. 그 이유는 신라 초기 장토지야의 존재에서 알 수 있듯이, 신라 때 정립된 경주 중심의 교통망이 고려 시대 역 분포와 역도 형성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또한 고려 시대 주요 영군(領郡)인 양주를 중심에 두고 주현·속현 체제를 기본으로 역도를 편성하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고려 시대 부산 지역의 육상 교통망은 연해 지역보다 내륙 지역을 중심으로 편제된 특징을 보인다.
[변천]
아등량역은 세종 대에 아월역으로 이름을 변경하였다. 물론 조선 후기 고지도에서 신월역(新月驛)·신역(新驛) 등으로 명칭을 달리하여 확인되고 있기도 하지만, 역 업무는 1895년(고종 32)에 혁파될 때까지 지속되었다.
[의의와 평가]
아등량역은 신라 초기 정복 국가 시기의 군사 요충지가 고려 시대 역참 시설이 설치된 정황을 확인할 수 있는 역명(驛名)으로 교통사 연구에 의미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