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2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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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機張郡-文化遺産 |
영어의미역 | Cultural Heritages in Gijang-gu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기장군 |
시대 | 선사/선사,고대/고대,고려/고려,조선/조선,근대/근대 |
집필자 | 이종봉 |
[정의]
신라 시대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부산광역시 기장군의 주요한 문화유산.
[개설]
한반도의 동남쪽에 위치한 기장 지역은 예로부터 농업과 어업으로 사람들이 삶을 영위하던 곳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산업화 혹은 도시화의 물결 속에서 반농반어의 모습이 급격하게 약화되었고, 점차 부산의 새로운 주거 단지나 공단 혹은 삶의 안식처로 변모되고 있다. 따라서 기장군의 다양한 문화유산은 지역의 민에게 새로운 정신적·물질적 양식이 될 수 있는 중요한 자산이다.
[불교 문화유산]
기장군의 문화유산으로 먼저 불교문화를 꼽을 수 있다. 조선 시대의 『읍지(邑誌)』에는 소위 기장의 4대 사찰인 ‘선여사(船餘寺)·안적사(安寂寺)·장안사(長安寺)·취정사(鷲井寺)’ 등이 기록되어 있다.
1. 안적사의 불교문화
안적사는 『기장현 읍지(機張縣邑誌)』에 기록되어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절의 유래가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고, 창건을 전하는 설화에 의하면 원효(元曉)를 개산조(開山祖)로 하며 많은 선승들이 머물러 그 이름이 높았다고 한다. 안적사에는 화기를 통해 1919년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는 「안적사 지장 시왕도(安寂寺地藏十王圖)」[부산광역시 문화재 자료 제29호, 범어사 성보박물관 소장]와 화면 하단 좌우에 묵서된 화기를 통해 동치 13년인 1874년(고종 11)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는 「안적사 아미타 극락 회상도(安寂寺阿彌陀極樂會上圖)」[부산광역시 문화재 자료 제30호, 범어사 성보박물관 소장] 등의 문화재가 있었다. 이를 통해 안적사에는 20세기 전후 시기의 문화유산이 고이 간직되었었음을 엿볼 수 있다.
2. 장안사의 불교문화
장안사는 불광산 아래 기장군 장안읍 장안리에 위치하는데, 불광산과 장안사 계곡은 부산 시민들이 휴일의 여가 활동, 등산 또는 마음의 안식을 위해 즐겨 찾는 곳이다. 장안사는 『기장현 읍지』에 기록되어 있는데, 신라 시대인 673년(문무왕 13)에 고승 원효가 척판암(擲板庵)과 함께 창건하여 처음에는 쌍계사라 하였고, 809년(애장왕 10)에 장안사라고 고쳤다고 할 만큼 유래가 오래되었다.
현재 장안사에는 1899년(고종 36)에 건립된 장안사 응진전(長安寺應眞殿)[부산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107호]이 있고, 장안사 응진전에는 강희 23년인 1684년(숙종 10)에 양공(良工) 승호(勝湖)·희연(熙衍)·천휘(天輝)·천담(天潭)·법자(法孖)·법종(法宗)·수종(守宗)·허지(虛芝)·도신(道信) 등 아홉 명이 관여하여 조성한 장안사 응진전 석조 석가 삼존 십육 나한상(長安寺應眞殿石造釋迦三尊十六羅漢像)[부산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85호]과 화승 수룡(繡龍) 기전(琪銓)과 관허(貫虛) 의관(宜官)의 지휘 아래 1882년(고종 19)에 조성된 「장안사 응진전 석가 영산회상도(長安寺應眞殿釋迦靈山會上圖)」[부산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88호]가 있다.
장안사 명부전(長安寺冥府殿)[부산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106호]에는 제10 전륜대왕상의 복장에서 발견된 조성 기문을 통해 1684년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는 장안사 명부전 석조 지장시왕(長安寺冥府殿石造地藏十王像)[부산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86호]이 있고, 19세기 전라도 지역에서 활동한 금어(金魚) 금암(錦庵) 천여(天如)[1794~1878]를 비롯한 여섯 명의 화승이 참여하여 조성한 「장안사 명부전 지장보살도(長安寺冥府殿地藏菩薩圖)」[부산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89호]가 있다.
1654년(효종 5)에 승려 원정(元正)·효능(孝能)·충묵(沖黙)에 의해 중건된 장안사 대웅전(長安寺大雄殿)[부산광역시 기념물 제37호]에는 금어·금암·천여를 비롯한 여섯 명의 화승이 참여하여 조성한 「장안사 대웅전 석가 영산회상도(長安寺大雄殿釋迦靈山會上圖)」[부산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87호]가 있고, 대화원 녹원(鹿元)이 조각승으로 참석하여 1659년(효종 10)에 조성한 장안사 대웅전 석조 삼세불 좌상(長安寺大雄殿石造三世佛坐像)[부산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94호] 등이 있다. 이와 같이 장안사에는 다양한 불교 문화유산이 간직되어 있어 조선 시대 기장의 불교문화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이외에도 장안사에는 조선 후기 사찰에서 제작된 민속자료인 장안사 연(長安寺輦)[부산광역시 민속 문화재 제5호]이 있다. 그리고 척판암에는 척판암 석조 여래 좌상(擲板庵石造如來坐像)[부산광역시 문화재 자료 제41호]이 있는데, 이는 조선 후기 각 지역마다 소규모의 불전에 봉안한 석조 불상으로서의 자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3. 그 밖의 불교문화
기장의 불교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또 다른 곳으로는 해수 관음보살이 봉안되어 있는 해동용궁사(海東龍宮寺)와 20세기 한국의 선승들이 터를 잡았던 묘관음사(妙觀音寺)가 있다. 특히 묘관음사는 화기에 18세기 통도사, 쌍계사, 봉정사, 개심사, 운문사 등의 불화를 제작하기도 하였던 유명한 유성(有性)과 악정(樂淨)이 표기되어 있는 「묘관음사 5여래탱(妙觀音寺五如來幀)」[부산광역시 문화재 자료 제42호]과 개항기에서 일제 강점기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묘관음사 불자(妙觀音寺拂子)[부산광역시 문화재 자료 제46호] 등이 있다.
고려 시대 석탑으로 추정되는 고불사 삼층 석탑(古佛寺三層石塔)[부산광역시 문화재 자료 제57호, 기장군 철마면 고촌리 산21번지 소재]과 통일 신라 시대 석탑으로 추정되는 기장군 정관읍 용수리 석탑사의 석탑 부재는 지역의 석탑 건조 양식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이외에 선여사 터와 취정사 터는 현재 정확하게 사역(寺域)을 알 수 없지만, 조선 시대 기장의 불교문화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이렇듯 기장에는 다양한 불교 문화유산이 존재하고 있다.
[유교 문화유산]
기장 지역 유교 문화의 상징은 향교이다. 기장군 기장읍 교리에 위치한 기장 향교(機張鄕校)[부산광역시 기념물 제39호]는 1617년(광해군 9)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진다. 전학 후묘(前學後廟)의 배치 양식을 취하고 있는데, 이는 사당[대성전]을 높은 위치에 두어 신위에 대한 존엄성을 우선하기 위한 것이다.
기장의 유교 문화로는 양반과 관련이 있는 누정 문화가 있는데, 양반들은 기장의 누정과 명소를 자주 순례하고 그곳에서 여러 문화를 창출하였다. 기장의 누정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과 『기장현 읍지』에 기록되어 있는 척서루(滌署樓)·식파루(息波樓)·공진루(拱辰樓) 등의 경우처럼 관청에 의해 세워진 것이 있고, 수리정(愁離亭)[문세명이 세웠던 집성정이 있던 곳]·소호정(泝湖亭)·백산단(栢山壇) 등과 같이 지역의 양반들이 세운 것도 있다.
기장의 명소로는 대표적으로 시랑대·삼성대·황학대·적선대·태정대 등이 있다. 시랑대에는 기장의 수령이었던 권적(權䙗)의 시를 비롯한 여러 인물의 글이 있고, 황학대에도 양반의 인명이 새겨져 있는 명문이 있다. 적선대 위에는 읍파정(揖波亭)이란 누정이 있어서 명소와 누정의 관계를 알 수 있다. 이러한 장소들은 지역의 양반들이 자주 왕래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해 줄 뿐만 아니라 양반 문화의 정취를 느낄 수 있으므로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기장은 또한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 유배지로 유명한 곳이었는데, 이를 통해 유배 문학을 이해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고려 시대에는 이인로(李仁老)의 아들 이세황(李世黃)이 기장현(機張縣)으로 좌천되었을 때 『파한집(破閑集)』 간행을 위한 작업을 하였고, 조선 시대에는 이선(李選)이 철마의 수리정에서 『송강가사(松江歌辭)』의 이선본을 남겼으며,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도 기장에서 많은 시를 남겼다. 따라서 기장은 다양한 양반의 문화유산이 남아 있는 지역이며, 이를 이해할 수 있는 곳이다.
이 밖에 『박만정 해서 암행 일기(朴萬鼎海西暗行日記)』[보물 제574호, 1책]가 전해 오는데, 『박만정 해서 암행 일기』는 문신 박만정(朴萬鼎)[1648~1717]이 1696년(숙종 22) 3월에 황해도 암행어사의 명을 받고 현지를 시찰한 65일간의 행적을 직접 쓴 수필 고본(手筆稿本)이다. 당시 국민 생활의 빈곤, 관료의 일선 행정 실태 등을 서술한 것으로, 조선 후기의 사회 및 행정 사료로 귀중할 뿐 아니라 조선의 특수 제도인 암행어사의 활동상 실태를 이해하는 데에도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관방 문화유산]
기장군에는 현재 관방의 문화유산이 많이 남아 있다. 성곽으로는 기장읍성(機張邑城)[부산광역시 기념물 제40호]·두모포진성(豆毛浦鎭城)·기장 죽성리 왜성(機張竹城里倭城)[부산광역시 기념물 제48호] 등이 있다. 기장읍성은 기장군 기장읍 일대의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데, 일제 강점기 및 해방 이후 도시화되면서 학교와 주택이 들어서 성벽이 심하게 훼손되었다.
두모포진성은 두모포진(豆毛浦鎭)의 성으로 현재 기장군 기장읍 죽성리에 성벽의 일부가 남아 있다. 기장이 조선 전기에 해군 기지였음을 말해 주는 유적이지만, 임진왜란 후인 1629년(인조 7)에 영을 현재의 동구 수정동으로 옮김으로써 폐지되었다. 기장 죽성리 왜성은 기장군 기장읍 죽성리 마을의 뒤편 해안으로 진출하는 요지에 위치하고 있는데, 마을의 이름을 따서 두모포 왜성이라고도 한다. 기장 죽성리 왜성은 임진왜란 때 축성한 것으로, 1593년(선조 26) 한양에서 후퇴한 왜군이 서생포에서 동래·김해·웅천·거제에 이르는 남해안에 장기전의 태세를 갖추기 위하여 쌓은 성 중의 하나였다.
봉수대로는 기장 남산 봉수대(機張南山烽燧臺)[부산광역시 문화재 자료 제2호]와 기장 아이 봉수대(機張阿爾烽燧臺)[부산광역시 기념물 제38호] 등이 있다. 기장 남산 봉수대는 기장군 기장읍 죽성리 해발 228m의 남산에 위치하고 있다. 기장군 기장읍의 신천 마을에서 등산로를 따라 도보로 약 한 시간 정도면 충분히 오를 수 있다. 기장 남산 봉수대는 대변항과 죽성만은 물론 동으로는 울주군 서생면 간절곶 앞바다까지, 남으로는 송정 앞바다까지 조망할 수 있는 요지이다. 기장 아이 봉수대는 기장군 장안읍 효암리의 봉대산 정상 해발 120m에 위치한다. 아이포의 산 정상에 자리해 사방으로 뛰어난 전망을 보유하여 봉수대로서는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봉수는 보기 드물게 매우 양호한 상태로 잔존하고 있어 학술적인 중요성과 가치가 매우 높다.
그 밖의 관방 문화유산으로 기장 척화비(機張斥和碑)[부산광역시 기념물 제41호]가 있다. 원래 기장군 대변 포구에 세워져 있던 것을 대변초등학교 옆으로 옮겨 놓았는데, 비문에는 ‘양이침범비전즉화주화매국계아만년자손, 병인작신미립(洋夷侵犯非戰則和主和賣國戒我萬年子孫, 丙寅作辛未立)’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기장의 조선 시대 관청 건물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기장 장관청(機張將官廳)[부산광역시 문화재 자료 제47호]이 있다. 기장 장관청은 17세기 후반 이래 관아 건축의 양상을 보여 주는 몇 안 되는 건축 유구일 뿐 아니라, 기장의 역사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문화재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가마터]
기장 지역에서는 근래에 여러 곳에서 도자기 가마터가 새롭게 확인되었다. ‘울산 장흥고(蔚山長興庫)·울산 인수부(蔚山仁壽府)’ 등의 분청사기가 수습되었는데, 이는 기장의 도자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이와 관련한 문화유산으로는 사기장(沙器匠)[부산광역시 무형 문화재 제13호, 기장군 일광면 원리 421-1번지]이 있다. 사기장 김윤태(金允泰)는 경상북도 문경 갈전 가마의 가계를 계승하고 있는데, 김윤태의 할아버지 김일배와 작은아버지 김종성으로부터 조선조 말기의 가마를 계승하였다. 이러한 도자 문화를 계승·발전시키려는 일환으로 기장에서는 도자기 체험관과 도예촌을 건설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의의와 평가]
기장 지역에는 불교 문화유산, 유교 문화유산, 관방 문화유산, 가마터 등 많은 문화유산이 존재하고 있다. 지역의 문화유산은 보호되어야 하고, 이를 계승시킬 의무가 있으며, 이를 통해 기장 지역의 정체성을 확고히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