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36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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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船餘寺-浮屠 |
영어의미역 | Stupa of Banyeosa Temple' Site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탑과 부도,유물/유물(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임기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조원영 |
[정의]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임기리의 선여사 터라 추정되는 곳에 있는 조선 시대의 석종형 부도.
[건립 경위]
선여사 터 부도(船餘寺浮屠)는 양식상 조선 시대의 전형적인 것이지만, 건립 경위는 알 수 없다.
[위치]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임기리 임기 3호교에 안치되어 있다.
[형태]
선여사 터 부도는 조선 시대에 유행하던 전형적인 석종형 부도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기단부는 원형의 평면이며 여러 겹으로 된 복련(覆蓮)의 연꽃 문양을 양각하였다. 탑신의 형태는 아래쪽은 직선인데 위로 올라갈수록 둥글게 깎았으며 탑신 위에 1단의 받침을 놓고 그 위에 꽃잎을 다물고 있는 연꽃 봉오리를 표현하였다. 따라서 상륜부는 연봉(蓮峰)의 형식으로 제작되었다. 탑의 높이는 2.4m이고 둘레는 2.9m인데, 높이에 비해 탑신의 지름이 작아서 다른 석종형 부도와 비교하면 날씬한 느낌이다.
[현황]
선여사 터는 기장 지역에서 가장 큰 가람으로서 절에 딸린 전답이 300석을 넘었다고 전한다. 『기장현 읍지(機張郡邑誌)』에도 기장현의 사찰로서 제일 먼저 선여사를 적고 있다. 이러한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당시 선여사의 사역(寺域)이 상당히 넓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까지도 선여사 터의 위치를 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 용수리 일대로 추정하였다. 그 이유는 비록 사역을 확인하지는 못하였지만 부산 지역에서 가장 큰 규모의 탑재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이 지표상에서 확인되었으며, 1981년에 부산광역시립박물관이 이곳에서 석탑의 상륜부 일부를 수습함으로써 이 일대를 선여사가 있었던 곳으로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2000년부터 선여사를 찾기 시작하여 2004년 선여사로 추정되는 대규모 절터와 폐불들을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의 임기천 상류에서 발견하였다. 백운산(白雲山) 서쪽 산록의 해발 350~400m에 해당되는 곳에 위치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선여사 터는 대략 4곳으로 분산되어 있고 산록의 구릉 사이에 건물 터가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지표상에서는 건물 터의 초석들과 경주 옥석으로 제작된 모양이 각각 다른 다수의 불상 조각, 각종 기와편, 귀얄문의 분청사기편, 백자편 등이 다량 확인되었으며, 특히 자연석으로 만든 대형 맷돌이 발견됨으로써 당시에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생활하였음을 짐작케 한다.
선여사 터 부도는 철마면의 선여사 터에서 발견된 것으로 일제 강점기에 일본이 밀반출하려던 것을 마을 주민들이 지켜 내어 현재의 위치에 안치하게 되었다. 지금은 철마면사무소에서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선여사 터 부도는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임기리의 절터가 선여사 터였음을 알려 주는 유물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가 있다. 또한 조선 후기의 어느 시점까지는 선여사가 존속하였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자료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