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21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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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仙岩堂明悅大師浮屠 |
영어의미역 | Stupa of Great Master Myeongyeol in Seonam-dang Hall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탑과 부도 |
지역 |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장안로 482[장안리 598]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지현 |
[정의]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장안리 장안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부도.
[개설]
장안사(長安寺)에는 이곳에서 주석하거나 활동 및 입적한 역대 고승 대덕들의 것으로 추정되는 5기의 부도가 있다. 이 부도들은 모두 장안사 주변에 산재하던 것으로 종루 왼편에 모아 두었다가 지금의 장소로 옮겼다. 5기의 부도 중에 1기에만 명문이 새겨져 있는데 바로 선암당 명열 대사 부도(仙岩堂明悅大師浮屠)이다. 장안사 부도밭에는 5기의 부도 외에 석불 좌상 1기와 명문이 있는 비석 2기도 있다.
[건립 경위]
장안사의 선암당 명열 대사 부도는 새겨진 명문을 통하여 대상 인물과 제작 시기를 파악할 수 있을 뿐이지 부도의 구체적인 성격이나 건립 과정 등을 추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부도가 일반적으로 승려의 사리나 유골을 안치하는 묘탑을 의미하므로, 선암당(仙岩堂) 명열 대사(明悅大師)를 기리기 위한 기념비적 조형물로서 건립한 것으로 판단된다.
[위치]
불광산 도시 자연 공원에 위치한 장안사 입구에서 동북 방향으로 난 대나무 숲길을 따라 50m가량 걸어가면 부도밭이 나온다. 5기의 부도는 앞줄에 3기, 뒷줄에 2기가 있다. 이중에서 앞줄의 가장 왼편의 것이 선암당 명열 대사 부도이다.
[형태]
선암당 명열 대사 부도는 높이 134㎝의 종형(鐘形) 부도로 조선 후기에 가장 성행하던 부도 형식이다. 종형은 부도의 몸 부분[탑신(塔身)]이 종(鍾)과 유사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부도의 형식은 탑신의 모습에 따라 전각형(殿閣形)·원구형(圓求形)·석주형(石柱形) 등으로 분류된다. 선암당 명열 대사 부도의 탑신은 타원형에 가까운 종의 형태로 탑신의 폭은 62㎝이다.
탑신의 윗부분에는 2단의 원형 상륜(圓形相輪) 받침을 간략하게 모각하고 연봉형(蓮峯形) 보주(寶珠)를 얹어 상륜부를 표현하였다. 기단부는 상대석과 하대석으로 구성되었는데 단면이 반원형인 상대석에는 단판(單板)의 앙련(仰蓮)을 새기고 하대석은 문양이 장식되지 않은 방형이다. 이러한 기단부의 형식은 조선 후기의 다른 종형 부도와 차별화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단적으로 인근 통도사(通度寺) 부도밭에 있는 조선 후기에서 일제 강점기에 제작된 46기의 부도 중에서 선암당 명열 대사 부도의 기단부 형식을 보이는 예는 2기 정도에 불과하다. 그런데 장안사 부도밭의 경우 5기의 부도 중에서 선암당 명열 대사 부도를 포함한 4기의 기단부가 이와 같은 모습이어서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통도사의 부도들과 장안사의 선암당 명열 대사 부도 외 4기의 부도 모두 원래의 자리에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으므로, 현재의 하대석이 중대석이고 하대석은 결실된 것이라면 3단의 정통적인 기단부 형식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럼에도 탑신과 기단부의 비례와 조형성 그리고 기타 다른 부도의 사례를 통하여 기단부의 또 다른 양식적 특징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본다.
[금석문]
선암당 명열 대사 부도의 탑신에는 해서체로 명문이 음각(陰刻)되어 있다. 탑신 전면에는 ‘선암당 명열 대사(仙岩堂明悅大師)’라고 새겨져 있고, 후면에는 ‘가경 삼년 구월일(嘉慶三年九月日)’이라는 문구가 새져져 있는데 나머지 글자는 판독이 불가능하다. 가경 삼년(嘉慶三年)은 부도의 건립 연대로 1798년(정조 22)에 해당한다. 부도의 주인이 선암당 명열 대사인 것은 확인되나 현재까지 관련 기록을 찾을 수 없어 선암당 명열 대사의 업적 및 활동상 등에 대하여는 알 수가 없다.
[현황]
전체적으로 보존 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의의와 평가]
장안사의 선암당 명열 대사 부도는 1798년(정조 22)이라는 절대 연대를 통하여 정확한 건립 연대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조선 후기 전국에 걸쳐 성행하던 종형의 형식을 선암당 명열 대사 부도에서도 확인할 수 있어 부산 지역에서도 그 흐름을 같이하였음을 알 수 있다. 종형 부도는 기단부에서 그 형식을 세분화할 수 있는데, 당시 경상도 일대에서는 상대석과 하대석을 대칭되게 하여 앙련과 복련을 새긴 형식이 특히 유행하였다. 이와 더불어 일부는 상대석과 하대석이 대칭을 이루지 않고 하대석이 방형 혹은 원형 등으로 연화문을 새기지 않은 단순한 양식이 나타나는데, 선암당 명열 대사 부도가 이러한 양식의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선암당 명열 대사 부도는 같은 유형으로 제작된 부도의 제작 연대를 추정해 볼 수 있는 기준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편 선암당 명열 대사 부도에 기록된 선암당 명열 대사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러나 이를 달리 생각한다면 기록을 통하여 알 수 없었던 장안사의 여러 대사 중 한 명을 확인한 것으로, 이후 꾸준한 자료의 발굴을 통하여 보완되고 발전될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