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7201 |
---|---|
한자 | 陋巷圖 |
영어음역 | Nuhang-do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희원 |
[정의]
부산항과 영도를 배경으로 소설가 윤진상이 1973년에 창작한 현대 소설.
[개설]
경상남도 김해군 대동면 월촌리에서 태어난 윤진상[1937. 5. 5~]은 1964년 『현대 문학』에 「파편족」으로 1회 추천을 받고, 1971년 『서울 신문』 신춘문예에 「불안한 마당」이 당선되어 등단한 부산의 대표적인 소설가이다. 단편 소설집으로 『하얀 불꽃』, 『구멍 속의 햇볕』, 『목인의 춤』이 있고, 장편으로는 『영혼의 나신』, 『껍질 벗는 여자』 등이 있다. 윤정규과 김종성, 최해군 등과 함께 부산소설가협회의 창립 멤버이며, 부산 지역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는 원로 작가이다.
「누항도」는 1973년에 『현대 문학』에서 발표하였으며, 1981년에 금성출판사에서 출간한 『현대 한국 단편 문학 전집』에 수록되어 있다. 당대 영도 주변에 모여 살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의 출구 없는 삶을 항구 끄트머리에 묶인 폐선에 빗대어 절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구성]
「누항도」의 구성 요소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공간적 배경이다. 부산항과 영도 일대 끄트머리가 공간적 배경인데, 이곳은 근대 이후 개항의 과정에서 부산이 겪었던 아픔의 역사가 아로새겨져 있는 장소이다. 영도 대교는 일제에 의한 조선인의 가혹한 노동 착취의 결과로 만들어져 부산의 관광 명물이 된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또한 이 일대는 6·25 전쟁 시기에 피란민들이 막노동을 하면서 타향살이의 서러움과 고단함을 겪어 내었던 눈물의 장소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이곳은 눈물과 애환, 추억과 상봉의 장소성이 부여되어 있는 질곡의 공간이다. 전쟁 당시 피란민들은 해변가에 움막을 짓거나 폐어선을 개조해서 기식하기도 하였는데, 「누항도」에 나오는 ‘설미집’이 바로 그러한 종류의 폐선 개조 술집인 것이다.
이러한 장소에 모여 살고 있는 인물들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주요 인물인 ‘변씨’와 ‘춘희’, ‘민씨’, ‘설미집 주인’, ‘명준’ 등은 모두 자신만의 소유권을 내세울 만한 것이 없는 지독하게 가난하고, 가난하기 때문에 삶에 대한 의욕도 가지지 못하는 인물들이다. 그들이 가진 것은 자기 몸뚱이뿐인데 그마저도 경제적 가치로 환원되지 못하기에 무가치할 뿐이다. 그래서 그들이 생각할 수 있는 삶의 형태는 불법 행위나 자해 공갈, 술집 작부 등의 일뿐이다.
이처럼 역사적 질곡을 품고 있는 영도 언저리를 살고 있는 가진 것 없는 인물들의 조우는, 이 지역이 오롯이 보여 주고 있는 한국 근대화 과정의 상처들이 극복되지 못한 양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처럼 「누항도」는 장소성에 대한 작가의 천착과, 그 장소성과 유기적으로 얽혀 있는 인물 형상화가 돋보이는 구성 요소를 가지고 있다.
[내용]
영도 대평동 축항 끄트머리에는 폐선들이 많다. 그곳에는 갈 곳 없는 폐선 같은 사람들이 모여 얽혀 산다. ‘설미집’은 이 폐선들을 개조해서 만든 술집이다. 그곳에는 늙은 주인 부부와 눈물마저 마른 작부들, 밀수품 운반이나 자해 공갈 등으로 돈을 벌려 하는 명준, 기억 상실증에 걸려 자기를 알아봐 주는 누군가를 기다리기만 몇 달째인 민씨 등이 얽혀 산다.
그곳의 단골인 ‘나’ 역시 좌초된 인생이다. 살길을 찾아 시골 전답과 집을 팔아 도시로 흘러들어 왔지만 우연히 만난 고향 친구에게 사기당하고, 아내는 남자로서 아무런 능력을 보여 주지 못한 채 의처증 증세까지 보이는 ‘나’를 견디지 못하고 떠나 버렸다. ‘나’는 몇 달간의 수소문 끝에 집 나간 아내를 찾았지만, 거기에서 행복해 하는 아내에게 나서지 못하고 돌아와 설미집 작부 춘희가 따라 주는 소주를 마실 뿐이다.
내가 아내를 찾는 동안 춘희는 나를 찾아다녔다고 한다. 그리고 나에게 어디론가 데려가 달라고 한다. 그러나 좌초한 배와 같은 인생인 춘희나 나나 어디론가 갈 희망은 없다. 가난에 매몰된 이들이 인간답게 사는 길은 아무리 기를 써도 요원할 뿐이다.
[특징]
「누항도」에서 중요하게 부각되는 제재는 폐선이다. 항구의 끄트머리에는 배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폐선이 옹기종기 매여 있다. 가진 것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주인 없는 이 폐선들 곳곳에 스며들어, 그곳을 술집으로 개조하기도 하고 숙소로 만들기도 하여 그곳에서 술을 팔고 기거한다.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아무도 아닌 자들은 그곳에 의지하고 모인 사람들과 일말의 정을 나누며 살고 있다. 배이지만 출항할 수 없는 배와, 사람이지만 사람다운 삶을 꿈꿀 여력이 없는 사람들의 모습은 상당히 유사하다. 폐선은 그곳 사람들의 절망적인 삶을 은유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누항도」는 ‘빈곤’을 첨예하게 다루고 있는데, 빈곤을 형벌처럼 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절망이 ‘빈곤한 자를 형사 처벌하지 않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자조하는 ‘변씨’의 말 속에서 잘 드러난다. 상황이 이러하기에 인물들은 공동체적 감각을 유지하는 것도 쉽지가 않다. 개인들이 아무리 선하다 해도 구조적으로 먹고살 길이 없는 사람들이 타인을 감싸 안을 수 있는 길은 전무하기 때문이다. 이는 빈곤이 구조화된 사회의 변두리 지역 문제는 단순히 개인적인 문제로 풀어 낼 일이 아니라는 작가의 예리한 사회 비판 의식을 보여 준다.
[의의와 평가]
「누항도」는 가난함이 미덕일 수 없는 현대 사회의 빈곤함을 핍진하게 추적하고 있다는 점에서 형상화가 잘되었다. 특히 역사적으로 수탈과 억압의 대상이었으며, 지금도 여전히 사회적 보호 장치 없이 내동댕이쳐진 자들이 모여 살아왔던 영도를 공간적 배경으로 형상화한 점도 설득력이 있다. 즉, 그러한 역사적 질곡의 공간이 당대에는 어떤 식으로 구성되고 있는지를 보여 준다는 점에서, 그리고 사회 비판적 시선도 개연성 있게 확보되고 있다는 점에서 「누항도」는 문학사적 의의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