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71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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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의미역 | Bridge of Heaven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희원 |
[정의]
6·25 전쟁 당시 부산의 수용소를 배경으로 최인훈이 1970년에 창작한 현대 소설.
[개설]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난 최인훈(崔仁勳)[1936. 4. 13~]은 6·25 전쟁으로 해군 함정 LST 편으로 전 가족과 함께 월남하였다. 그때 1개월 동안 부산 피란민 수용소 생활을 경험하였다. 이후로 학교와 군대를 오가는데, 군 복무 중이던 1959년 『자유 문학』에 「GREY 구락부 전말기」와 「라울전」이 추천되어 문단에 나왔다. 1960년에 중편 「광장」을 발표하여 이름을 확실히 알린 이후로 1963년에 제대하면서 소설가 겸 희곡 작가로 왕성한 활동을 하게 된다.
「회색인」[1964년], 「서유기」[1966년],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1972년], 「가면고」[1960년], 「구운몽」[1962년], 「열하일기」[1962년], 「우상의 집」[1960년], 「웃음소리」[1966년], 「국도의 끝」[1966년] 등을 대표작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최인훈은 전후(戰後) 최대의 작가이다. 소설과 희곡, 수필, 문학론 등 최인훈의 방대한 문학 작업들은 1979년 문학과 지성사에서 12권의 『최인훈 전집』으로 묶었다.
흔히 ‘관념 작가’라는 말로 표상되는 최인훈이지만, 최인훈의 관념은 현실과의 밀접한 관련 속에 놓여 있기에 현실적이고, 작품들 속에서 끊임없이 진화하면서 현실을 포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러한 최인훈의 작품 세계는 최인훈이 실향민이라는 정서, 그리고 6·25 전쟁 때 부산에서 피란 생활을 하였던 가혹한 경험 등을 그 토대로 하기에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지점의 특성을 잘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인 「하늘의 다리」는 1970년에 『주간 한국』에서 발표하였으며, 1978년에 문학과 지성사에서 출간한 『하늘의 다리·두만강』에 수록되어 있다.
「하늘의 다리」는 최인훈의 대표작은 아니나, 초기작 「광장」이나 「서유기」에서 보여 준 관념적 인물들이 「하늘의 다리」를 결절점으로 해서 이후의 작품인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화두」 등에서는 관념성을 넘어서서 한국의 근대적 삶을 갱신하고자 하는 의지의 인물들로 형상화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작품이다. 특히 주인공이 6·25 전쟁 때 부산의 중앙동 일대에서 피란 시절을 보낸 경험은 전후의 시간을 살고 있는 주인공, 그리고 한국 사회 전체를 관통하는 근저로 작동한다.
[구성]
최인훈은 여러 작품들을 통해 지성인이자 도시인인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데, 「하늘의 다리」의 주인공 ‘준구’ 역시 그러하다. 준구는 미술 학도로서 예술을 하는 지성인이자 서울에 사는 도시인이다. 그런 만큼 작품은 특별한 사건이 기승전결을 이루며 갈등이 짜이기보다는, 준구의 지적인 사색이나 근대 도시인의 내적 독백과도 같은 주절거림들이 많이 형상화되고 있다는 구성적 특징을 가진다. 이러한 주절거림이 작품의 독특한 특징인 환상성과 깊이 연계되어 작품 구성을 주조하고 있다.
즉, 준구 눈에만 보이는 하늘에 둥실 떠 있는 사람의 다리가 그것이다. 준구가 이 다리를 본다는 것 자체, 그리고 그것을 이해하기 위한 준구 나름의 노력들이 계속 독백들 속에서 흘러나온다. 그리고 그 독백은 다분히 지성인의 시각에서 포착하고 있는 자아의 속물성과 한국의 폭력적 근대성에 대한 비판으로 이루어진다.
최인훈이 선호하는 주인공의 특징 중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이들이 6·25 전쟁을 전후로 월남한 인물들이라는 점이다. 전쟁으로 인해 고향도, 가족도, 일자리도 잃고 떠도는 실향민들의 감성은 한국의 근대화를 표상하는 중요한 키워드이다. 자신이 정착해야 할 현실 그 어디에도 안정적으로 소속되지 못한 채 부유하는 김준구는 물론이고, 살기 위해 월남하였으나 모든 가족들을 잃고 자기도 죽어 간 한동순, 술집에서의 삶을 정리하려고 술집을 그만두었지만 다른 삶의 형태를 상상하지 못한 채 홀연히 사라져 버린 한동순의 딸 한성희가 그 예가 될 것이다.
[내용]
미술가 김준구의 고향은 북한 원산이다. 6·25 전쟁 때 단신 월남하여 서울에서 지낸 세월도 꽤 흘렀다. 현재 김준구는 소설가 한명기가 연재하는 소설의 삽화를 그리는 일과, 미술적 재능을 사업으로 확장시켜 승승장구하고 있는 김상현과 함께 일하며 생활을 꾸린다.
하루는 고향 원산에서 김준구에게 미술을 가르쳤던 선생 한동순으로부터 편지가 온다. 한동순은 전쟁 때 가족들과 함께 부산으로 내려와 지금까지 부산에서 살고 있다. 김준구에게 한동순은 자신의 미술적 재능과 그것을 통한 사회적 성공을 보여 주어 인정받고 싶은 존재이다. 하지만 김준구가 도무지 미술계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면서, 그 자격지심 때문에 스승과 인간적인 관계마저 소원해진 상태이다. 이런 한동순으로부터 온 편지 내용은 집을 나가 서울 술집에서 일하는 자신의 딸 한성희를 좀 찾아서 데리고 있어 달라는 내용이다. 김준구는 한동순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김준구는 요즘 하늘에 사람의 다리가 하나 떠 있는 허깨비를 자주 본다. 분명 살아 있는 사람의 다리인 것으로 보이는데, 잘려진 단면도 보이지 않은 채 하늘에 덩그러니 다리가 있는 것이다. 한성희를 만나러 편지에 적힌 술집에 갔다가 허탕을 치고 돌아온 날도 김준구는 하늘에서 다리를 본다. 다음 날 만나게 된 한성희는 아름다웠고, 김준구는 한성희를 술집으로부터 데리고 나와야겠다고 생각한다.
거의 말이 없는 한성희는 크리스마스 이틀 전 김준구의 집에 왔다가 다음 날 메모만 남긴 채 어딘가로 떠나 버리고, 그 이후로 행방이 묘연해진다. 김준구에게 한성희는 하늘에 걸린 다리처럼 모호한 존재로 남는다. 한명기의 말처럼 아버지도 어찌하지 못하는 딸자식을 아무 관계도 아닌 김준구가 어찌할 수 있다거나 어찌해야 한다는 생각은 어리석은 것이 아닌가 고민하기도 한다.
이런 고민을 하는 와중에 크리스마스가 되었고, 한동순의 사망 소식을 접하여 김준구는 부산으로 내려간다. 북적이는 부산행 기차는 피란 시절에 탔던 해군 군함 LST를 연상시킨다. 장례를 다 치르고 영도 다리가 보이는 중앙동 일대를 돌아보며 김준구는 그곳에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는 전쟁의 상흔을 보게 되고, 예술이 이런 현실에서 과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서울로 돌아와 김준구는 호텔 바 설계팀 일을 하면서 생활로서의 미술, 이윤을 만들어 내는 예술에 대해 지지를 보내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대해서도 별 납득을 하지 못하는데, 김상현이 갑자기 전시회를 하자고 한다. 계단에서 넘어져 다리를 다친 이후로 운신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온갖 상념에 빠졌다가 김준구는 전시회 그림으로 자신이 보는 하늘의 다리를 그려 보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아무리 그리려 해도 다리는 잘 그려지지 않는다. 한성희의 얼굴을 아무리 그리려 해도 그려지지 않는 것처럼. 그러던 어느 날 신문에서 한 살인 사건 기사를 읽게 되는데, 피살자를 한성희인 것처럼 느끼게 되는 강렬한 경험을 하고, 마포에 있는 아파트가 무너지는 사건에 충격을 받기도 한다. 이런 비상식적인 일들이 넘쳐 나는 현실 속에서 김준구는 아무렇지 않게 적당한 포즈를 취하는 방법을 찾기가 어렵다. 결국 김준구는 부산으로 내려가, 한명기에게 한동순 일가족과 관련된 사건을 소설로 써서 이러한 일이 버젓이 일어나는 한국 사회를 이해할 수 없는 자신을 납득시켜 달라는 편지를 띄운다.
[특징]
「하늘의 다리」의 특징으로 가장 먼저 지적해야 할 것은 환상과 실재가 섞여 있다는 점이다. 주인공이 하늘에서 살찐 사람의 다리가 둥실 떠 있는 허깨비를 지속적으로 본다는 것은 작품의 의미를 자못 난해하게 만든다. 최인훈은 이미 「광장」이나 「서유기」 등을 창작할 때부터 환상적이고 비사실적인 요소들을 작품 속에 담아 왔다. 「하늘의 다리」의 경우 그러한 최인훈의 실험 정신이 가장 크게 부각된 작품이고, 최인훈 본인도 그러한 지점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최인훈이 환상성을 작품 안에 끌어안으면서 추구하는 의식은 틀에 박힌 사실주의적 서사 방법에 대한 강한 저항 의식이다. 즉 사실주의적 기법에만 매달렸을 때 그 틀로 현실을 재단해서 볼 위험이 오히려 많다는 것이다. 「하늘의 다리」의 경우, 월남한 일가족이 아무도 문제 제기하지 않는 사이에 사라져 버리고, 잔인한 살인 사건이나 멀쩡한 아파트가 하루아침에 무너진다. 작품 속 현실에서 벌어지는 이 일들을 보면, 사실은 하늘에 다리가 덩그러니 걸려 있는 것만큼이나 비현실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결국 최인훈의 이러한 환상성이나 비현실적인 현실에 대한 자각은 당대 한국이 경험하고 만들어 가고 있는 근대 문화에 대한 근본적 의문, 전쟁은 아직 완료·정리되지 않았다는 쓰라린 현실, 그리고 정당한 문화에 대한 상에 대한 질문과 연결된다.
「하늘의 다리」의 두 번째 특징은 예술에 대한 지속적인 메타 비평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최인훈은 「하늘의 다리」를 통해 문학과 예술의 존재 방식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있다. 특히 미술가인 김준구가 부산에서 맞닥뜨린 사람들의 삶은 여전히 전쟁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에 있었고, 김준구는 예술이 이 현실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뇌한다.
상업 예술은 자본 논리에 끊임없이 복속되고, 순수 예술은 현실에 아무런 영향력도 미치지 않는다. 피난살이 이후 사람들의 삶, 특히 성 풍속도, 예술의 정치화, 가족 해체의 현실에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하는 예술에 대한 무능감과 자괴감 속에서, 결국 주인공은 현실을 이해할 수 있는 논리마저 소설가의 영역에 넘기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이러한 고뇌는 그 자체로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내는 중요한 토대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늘의 다리」에서 살펴보아야 할 것은 ‘하늘의 다리’라는 허깨비가 담고 있는 의미이다. 김준구가 보는 이 허깨비는 그 어떤 지식이나 이데올로기, 현실 경험 속에서 확인할 수 없는 존재로서, 해석도 묘사도 불가능하다. 이는 안개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한성희나 현실에 발붙이지 못하는 주인공의 의식에 대한 은유라 할 수 있다. 동시에 예술적 진정성을 성찰하게 하는 내적 상징이자 예술과 현실 두 영역에서 동시에 성숙을 지향하는 바탕이 된다.
[의의와 평가]
「하늘의 다리」는 환상적 기법을 작품 내에 이물감 없이 정교하게 활용하여 전후를 살아 내고 있는 실향민들의 고뇌를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나아가 주인공의 그러한 환상성에서 촉발된 현실에 대한 인식과 이해의 태도는, 폭력적인 한국 근대화가 양산한 현실 비판적 주체로서의 예술가의 한 형식을 보여 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 주체는 예술과 삶의 영역 모두에서 현실을 직시하고자 부단히 노력하고 고뇌하며 질문을 던진다.
작가 최인훈의 작품 세계의 측면에서 볼 때에도, 그의 주제 의식이 가진 관념성이 현실과 조화되는 지점에 대한 탐구와 직결된다는 의의를 가지기도 한다. 또한 당대 부산의 모습에서, 전쟁이라는 것이 얼마나 지속적으로 한국 현실에 지독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는지를 핍진하고 현실감 있게 형상화하고 있다는 점도 전후 문학의 한 획으로서 「하늘의 다리」를 이해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