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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세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7186
한자 萬歲前
영어의미역 Mansejeon[A Story of Japanese Colonial Period]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이희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소설
작가 염상섭(廉想涉)[1897. 8.30~1963. 3. 14]
저자 생년 시기/일시 1897년 8월 30일연표보기 - 염상섭 출생
저자 몰년 시기/일시 1963년 3월 14일연표보기 - 염상섭 사망
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1922년 7월~1922년 9월연표보기 - 『신생활』에 「묘지」로 연재
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1924년 4월 6일~1924년 6월 1일연표보기 - 『시대일보』에 재연재
편찬|간행 시기/일시 1924년 8월연표보기 - 고려공사에서 저자 이름을 양규룡으로 하여 『만세전』 간행
편찬|간행 시기/일시 1948년 2월연표보기 - 개작하여 수선사에서 『만세전』으로 간행

[정의]

개항장 부산을 배경으로 염상섭이 1924년에 창작한 소설.

[개설]

서울에서 출생한 염상섭(廉想涉)[1897. 8.30~1963. 3. 14]은 『삼대』로 우리나라 문학에 한 획을 그은 사실주의 문학의 거장이다. 15세에 일본 유학을 떠났다가 1920년에 귀국하여 동아일보사에서 기자 생활을 하고 『폐허』의 창간 동인으로, 그리고 1921년에는 『동명』의 기자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비슷한 시기에 「표본실의 청개구리」와 「암야(暗夜)」, 「제야(除夜)」, 그리고 「만세전」을 연재하였다.

「만세전」은 이전의 작품들보다 좀 더 사회적으로 확대된 시선을 가진 근대적 지식인이 등장한다는 점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특히 주인공 이인화가 일본에서 식민지 조선으로 첫발을 디디는 부산에 대한 묘사는, 식민지 근대 지식인으로서의 자의식을 피부로 느끼는 결정적인 부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구성]

「만세전」은 3·1 운동이 일어나기 전해에 아픈 아내를 보러 조선에 들르게 된 주인공 ‘이인화’가 동경(東京)~신호(神戶)[고베]~하관(下關)[시모노세키]~부산~김천~대전~서울로 이동하는 기행적 구조로 구성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 흐름 속에서 3·1 운동이 벌어지기 전 조선 사회의 모습이 주인공이 겪는 사건과 내면적 고뇌 속에서 핍진하게 묘사되고 있다.

이인화라는 인물의 몸은 전근대적 문화와 근대적 지식인의 삶이 충돌하는 사건의 현장이다. 즉 이인화의 의식 속에서 조혼과 자유연애, 전근대적 가족 공동체와 근대적 개인이라는 가치가 충돌하고 있다. 게다가 이인화는 단지 근대적 지식인만이 아니라 나라를 잃어버린 민족, 식민지민이기도 하기에 지배와 복종, 친일과 반일 등의 논리도 중첩되어 있다. 그렇기에 근대적 가치는 단순히 새로운 것이 아니라 폭력적으로 자신과 자신이 속한 민족을 억압하는 기제이기도 한 것이다.

이러한 중층적이고 모순적인 가치의 균열들이 당대 조선과 일본의 시공간이 보유하고 있던 실재임을 염상섭은 치밀하게 포착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구체적인 지역들도 역시 조선의 땅이면서도 조선이 아닌 모습으로 형상화되고 있다. 특히 이인화가 들르게 되는 부산항이 왜색화되어 있는 모습은 당대 현실을 잘 포착하고 있는 부분이다.

「만세전」이 사건을 형상화하는 방법도 당대적 시의성을 구체적으로 확보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 준다. 내지와 조선의 경계를 넘을 때 경찰의 시달림을 받는 주인공의 모습이나 갓 장수를 헌병이 체포하는 것, 대전역에서는 조선인들이 결박당해 있는 모습, 일본인이 조선인을 속여서 내지의 노동 시장에 팔아넘기는 현상, 일본인들의 이해관계가 얽힌 공동묘지법, 집을 비싸게 팔려는 김천 형님, 정치열과 명예욕에 들뜬 아버지와 이를 부추기는 김의관, 종손으로 무위도식하는 종형 등의 모습이 그 예가 될 것이다.

[내용]

‘이인화’는 일본 동경 W대학 문과에 재학 중인 근대 엘리트 지식인이다. 3·1 운동이 일어나기 전해 겨울, 시험을 치던 중에 이인화는 조선에 있는 아내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급히 귀국을 결정한다. 이인화는 13세 되던 해에 아내와 조혼하였으나, 15세에 유학길에 올라 7, 8년이 되도록 유학하고 있기에 실상 이인화가 아내와 함께한 시간은 별로 많지 않다. 게다가 근대적 지식으로 무장한 이인화에게 구습의 결과로 맞아들인 아내는 전혀 애틋하지 않다.

그래서 그런지 아내가 죽을지도 모르는 순간에도 이인화는 조선행 배에 쉬이 몸을 싣지 못한다. 이인화는 이것저것 물건들을 사고, 길지도 않은 머리를 정리하려 이발소에 들르기도 하고, 단골 술집에 가서 친한 여급 둘과 농지거리를 하다가 아무 이유도 없이 전차에 몸을 싣기도 한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밤늦게 겨우 기차에 올랐는데, 거기에서도 이인화는 불현듯 ‘을라’를 만날 요량으로 신호에 내려 을라와 의미 없는 대화를 몇 마디 주고받다가 헤어진다.

부산행 연락선에 타는 순간부터 이인화는 조선인이고 사상이 의심스럽다는 이유로 계속 경찰의 검문과 감시에 시달린다. 그것은 이인화가 부산에 도착하고 김천 형님 집을 거쳐 서울에 도착하여 지내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지속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조선인들의 모습은 식민지민이라는 이유로 무조건적인 차별에 노출된 채 비참한 삶을 이어 가고 있으면서도 전근대성을 떨치지 못하여 어리석고 비이성적이며, 또 한편으로는 일제의 힘에 기대어 자기 잇속을 차리기에 급급하다.

게다가 이인화가 만나는 그의 가족들 역시 그러한 상황에서 조금도 나아 보이지 않는다. 일제에 잠식당하고 있는 조선과 조선인의 모습에서 이인화는 구더기가 들끓는 무덤을 연상하며 갑갑증을 느낀다. 결국 아내는 죽고 이인화는 지체 없이 바로 일본으로 향한다.

[특징]

「만세전」의 특징으로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것은 판본이 총 네 가지라는 점이다. 그 과정을 살펴보면, 작품이 처음 연재되었을 때 원래 제목은 ‘묘지(墓地)’로 1922년 7월부터 그해 9월까지 『신생활』에 연재되다가 잡지의 폐간과 함께 연재 3회 만에 중단되었다.

그러다가 1924년 4월 6일에 『시대일보』가 창간되면서 염상섭은 제목을 ‘만세전’으로 바꾸어 그해 6월 1일까지 59회로 연재를 마무리한다. 같은 해 8월에 고려공사(高麗公司)에서 저자 이름을 양규룡(梁奎龍)으로 하여 개작을 거쳐 단행본으로 간행하였으며, 1948년 2월에 다시 개작하여 수선사(首善社)에서 단행본으로 재판본하였다. 따라서 「만세전」은 미완성인 첫 번째 판본을 포함하여 도합 4개의 판본을 가지고 있다. 판본 간에는 시제, 단어, 내용 등의 차이가 있다.

또 하나의 특징은 「만세전」이 성취한 문학사적 의의에 대한 학계의 평가가 극단적으로 엇갈린다는 점이다. 이는 특히 작품이 조선이 처해 있던 당대 현실을 보여 주는 것에 집중하고 있는 지점에 대한 평가에서 강화된다. 즉 「만세전」이 식민지 현실을 핍진하게 재현하고 있는 것에 대해 당대 조선 사회가 처해 있던 억압과 차별의 실상을 비판적으로 보여 준다는 긍정적 평가가 있는가 하면, 그러한 현실을 보여 주는 것에만 그치고 주인공 이인화가 아내의 죽음 이후 ‘무덤’ 같은 조선을 떠나 일본으로 황급히 돌아가 버리는 것에서 당대 현실의 부조리를 외면한 채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에만 머물고 식민주의의 시선을 내면화하였다는 부정적 평가도 있다.

그러나 당대 현실에 대해 객관적으로 그려 내는 시도 자체는 분명 소설가로서의 자의식이 근대적 의미를 확보한 것으로 보이고, 이인화가 ‘청자’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조선인도 일본인도 아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자신이 그것을 부정하지 않고 떠안고 가겠다는 의사를 표시하였다는 점에서는 분명 긍정적 평가를 내릴 만하다.

[의의와 평가]

「만세전」은 3·1 운동 직전 조선의 사회 현실을 당대가 만들어 낸 식민지 지식인의 내적 시선에서, 그리고 구체적인 현실에 대한 핍진한 추적 속에서 포착하고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높은 수준의 작가적 사회의식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그리고 아울러 근대 소설의 면모가 완전히 정착하기 전인 1920년대 초에 근대적 개인으로서의 지식인이 소설화되었다는 점에서 문학사적 의의도 큰 작품이라 하겠다.

주인공 이인화의 행동 노선에 대해 그것이 현실의 핍진한 묘사이냐, 아니면 조선의 현실을 외면한 채 일본으로의 도피냐 하는 지점에 대한 학계의 논의가 지속되고 있는 점은 「만세전」의 생명력이 여전히 강력함을 보여 주는 증거일 것이다. 또한 주인공이 거쳐 가는 부산이라는 관문은 이인화에게 일본의 식민지 조선의 민족 정체성을 구체적으로 처음 느끼게 하는 굴욕의 조선 땅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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