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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 금강원」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7229
한자 東來金剛園
영어의미역 Dongnae Geumgangwon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안정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현대 소설
작가 이주홍(李周洪)[1906. 5. 23~1987. 1. 3]
저자 생년 시기/일시 1906년 5월 23일연표보기 - 이주홍 출생
저자 몰년 시기/일시 1987년 1월 3일연표보기 - 이주홍 사망
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1969년연표보기 - 『신동아』에 발표
편찬|간행 시기/일시 1973년연표보기 - 『풍마(風魔)-이주홍 단편집』에 수록
배경 지역 금강 공원 - 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동지도보기

[정의]

부산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작가 이주홍이 동래에 있는 금강원과 온천을 배경으로 1969년에 창작한 단편 소설.

[개설]

향파 이주홍(李周洪)[1906. 5. 23~1987. 1. 3]은 경상남도 합천에서 태어났다. 1925년 『신소년(新少年)』에 「뱀 새끼의 무도」를 발표하고, 1929년에 『조선 일보』에 첫 단편 소설 「가난과 결혼」이 입선하여 문단에 나왔다. 대한민국 예술원상, 대한민국 문화 훈장, 대한민국 문학상 및 부산시 문학상을 받았으며, 대표작으로 「메아리」, 「못나도 울 엄마」, 「못난 돼지」, 「피리 부는 소년」 등이 있다.

이주홍은 풍자와 해학, 재치와 상상력이 가득한 옛이야기를 비롯하여 우리들 삶의 진실이 담긴 글을 많이 남겨 아동 문학에 금자탑을 이룩하였다. 이러한 이주홍의 문학적 성과와 부산 발전 기여도를 기리기 위해 1981년에 이주홍 문학상이 제정되었으며, 이주홍 문학관이 2002년에 동래구 온천동에서 개관되기도 하였다. 「동래 금강원」은 1969년 『신동아』에 발표되었으며, 1973년에 을유문화사에서 간행한 『풍마(風魔)-이주홍 단편집』에 수록되어 있다.

[구성]

「동래 금강원」은 미자라는 밤 색시의 자살을 목격한 후 그간에 벌어진 일을 거슬러 올라가 회상하는 형식을 통해 소설을 전개하는 역순행적 구성을 취하고 있다.

[내용]

소설가인 다운은 문예 강연회 참석 차 부산에 내려왔다가 하루 더 쉬고 가기 위해 동래 온천장에 머무르게 되고, 금강 공원을 산책하다가 한 여인의 자살 시체를 보게 된다. 그런데 그 시체의 주인공은 미자라는 밤 색시로 미자의 죽음이 다운과 관련 있음을 미자의 동료들을 통해 알게 되고, 다운은 미자와의 사연을 회상한다. 다운은 1958년 초여름, 신문 연재소설을 쓰면서 요양 차 동래 온천장에 약 1여 년간 머무르게 된다. 그곳에서 만난 지인 미성은 다운에게 토끼탕에 대해 아는가 묻는다. 결국 그 다음 날 토끼탕을 체험하러 온천물 속에서 여인을 기다리던 다운은 중학교 교사 시절 문예반 학생이던 조정숙을, 지금은 ‘토끼탕’의 미자로서 만나게 된다.

중학생 시절의 정숙은 다운을 무척 따르던 여학생으로, 결국 정숙과의 스캔들로 다운은 학교를 그만두게 되었고, 정숙 역시 학교를 그만두고 집을 나와 밤 색시로서의 삶을 살아온 것이었다. 이후 온천장에 머무르는 동안 미자는 자주 다운을 만나러 오고, 자신의 생일날 작은 선물을 해 줄 것을 다운에게 부탁한다. 그러나 갑작스레 바빠진 다운은 서울로 올라가게 되고, 미자의 생일을 잊어버리고 생일잔치에 참석하지 않은 날 미자는 자살에 이른 것이다. 미자의 죽음 후 다시 온천장을 찾은 다운은 장례식에 참석하고 다시금 일상에 복귀한다.

[특징]

「동래 금강원」은 여인의 자살과 그 자살에 이르기까지의 여인의 삶이 주인공 남성의 시각과 회상을 통해 그려지고 있으나, 여인의 수기 원고가 담긴 노트를 통해 그녀의 내면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어 주인공 미자가 자살하게 된 이유를 보여 주고 있다.

[의의와 평가]

「동래 금강원」은 1960년대의 동래 금강 공원과 특히 동래 온천장의 ‘토끼탕’이라는 밤 색시 문화, 그리고 그녀들의 삶의 한 단면과 심리를 비교적 섬세하게 잘 그려 낸 작품으로 보인다. 다만 미자에 대한 주인공의 대응 방식이 연민 내지는 거리 두기에 머물러 있다는 점은 여타 1960년대 소설에서 남자 주인공이 양공주나 창녀를 바라보는 시선과 동일하다고 할 수 있으며, 그녀들을 자신과의 삶과는 무관하다는 배제의 논리로 바라보고 있다는 한계를 보여 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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